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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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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희의 혁신노트]평생직업 시대 ‘퇴사학교’로 오세요

박란희  ‘더퍼블리카’ 대표 

▲ ‘퇴사학교’ 장수한 대표(책상에 걸터앉은 인물)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14일 저녁 7시 서울 서초동 로아인벤션랩 지하 1층 입구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와인과 맥주가 있는 스탠딩파티처럼 50여명의 게스트가 모인 공간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신혜성 대표, 발달장애인을 고용한 커피로스팅 사회적기업 ‘커피지아’ 김희수 대표, 희귀난치성 환자의 정보비대칭을 IT기술로 해결하는 ‘프라미솝’ 이준호 대표 등 스타트업·소셜벤처 대표들을 포함해 투자자, 전문가 등 게스트 면면이 화려했다.
   
   곧이어 이날의 호스트인 정재호 전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 이사가 “여러분, 퇴직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라며 운을 뗐다. 정 이사는 지난 20년 동안의 대기업과 창업투자사 인생을 회고하며 “퇴직 이후 영화 ‘인턴’에서 나오는 벤(로버트 드니로 분)처럼 청년창업가들의 멘토 역할로 새롭게 일하겠다”며 PPT를 마무리했다. 이날 저녁 필자의 페이스북 담벼락엔 이 특별한 퇴사파티에 대한 사진과 글이 곳곳에서 화제가 됐다. 정재호 이사는 왜 시끌벅적한 퇴사파티를 열었을까.
   
   “다들 입사는 현수막 걸고 축하하면서, 퇴사는 뻔한 감사패나 회식뿐인 게 너무하다고 생각했어요. 퇴사도 일종의 졸업이고 새 출발인데…. 사실 청년창업가들에게는 사회문제 해결과 가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해놓고, 제가 돈벌이에만 한눈팔까봐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선언했어요. 그래야 딴짓을 안 하거든요.”
   
   일을 직장 중심으로 바라보던 기존 패러다임에 금이 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회사를 넘어 지속가능한 ‘업(業)’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퇴사를 준비하는 학교도 생겨나고 직업을 여러 개 갖고 사는 ‘엔(N)잡러’들도 늘고 있다. 엔잡러란 여러 개의 숫자를 의미하는 N과, 잡(job), er(~한 사람)의 합성어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다. 관련 포럼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지난 3월 글로벌 공유사무실 위워크(Wework)에서는 ‘일의 판이 바뀐다’는 주제로 콘퍼런스가 열렸다. 또 이달 23일엔 스파크포럼에서 ‘일과 직업 변화가 시작됐다’는 주제로 ‘퇴사학교’ 장수한 대표와, 직업을 7개 지닌 ‘히플(Hipple)’ 전제우 대표가 연사로 나섰다.
   
   퇴사학교 장수한(34)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5년 동안 전략기획, 해외영업, 사내벤처 등을 담당하다 무작정 퇴사 후 1년 동안 백수로 지냈다. “한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는데, 자꾸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글쓰기를 시작했고, 날마다 서점으로 직행해 100권의 책을 읽었다. 카카오 브런치에 ‘퇴사의 추억’이라는 글을 썼는데 직장인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의 글은 브런치 대상을 수상하고 책으로도 출간됐다. 그는 2016년 5월, 퇴사학교라는 스타트업까지 창업했다.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글쓰기와 기획, ‘퇴사의 시대에 행복한 일을 고민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접점을 살리기 위해 직장인 교육업 모델을 생각했고, 첫 번째 타깃 고객이 저였습니다. 저한테 필요한 교육서비스를 기획하고 준비했습니다.”
   
▲ ‘퇴사학교’ 장수한 대표가 펴낸 퇴사 관련 책들.

   
   2년간 5000명 몰려
   
   문을 연 지 2년 만에 5000명이 퇴사학교를 거쳐 갔다. 그 배경엔 고용불안과 ‘덜 행복한’ 조직문화 등의 세태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 글로벌 리서치기업 유니버섬(Universum)이 전 세계 57개국 20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인 행복지수에서 대한민국은 49위로 최하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경우 입사 후 3년 이내 퇴사율이 80%, 20~50대의 경우 퇴사율이 60%가 넘는다.
   
   퇴사학교엔 매달 30여개의 수업이 이뤄진다. 대표적인 수업은 4주 코스로 이뤄지는 학기제 수업이다.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을 실행하는 ‘사이드비즈니스’, 회사 다니며 창직(創職) 활동을 경험하는 ‘퇴근 후 크리에이터’, 자아탐색 기반으로 다양한 커리어를 찾아보는 ‘커리어 터닝포인트’, 회사생활을 의미 있는 학교처럼 다니기 위한 ‘슬기로운 직장생활’ 등이 있다. 모든 수업은 10~12명 소수정예로 실행과 실습 중심이다. 이외에도 원데이수업, 퇴사포럼, 릴레이특강 ‘토요 브런치’ 등 다양한 행사도 많다.
   
   “인기 과목 중 하나인 ‘월급 외 10만원 벌기’에서는 내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아이템 선정부터 비즈니스 기획·실행까지 해야 합니다. 목표는 한 달 동안 매출 10만원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겨우 10만원?’ 할 수 있지만, 막상 내 손으로 직접 10만원을 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직접 경험해보면 배움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재미있는 점은 기업체에서 퇴사학교에 교육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퇴사가 일반화되다 보니, 직원들의 퇴사를 방지하고 더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퇴사학교는 직장인의 생애주기에 맞춘 진로탐색 교육과 코칭을 진행한다고 한다.
   
   장수한 대표는 무작정 퇴사를 권하지 않는다. “예전에 대기업 다니던 시절을 빗대 ‘30%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주말 2일을 위해 평일 5일을 버티며 사는 삶이라는 뜻에서였죠. 100% 인생을 살고 싶어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 후 일과 삶이 100% 일치되는 삶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내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일과 삶의 분리가 없어진 것은 단점입니다. 어찌 보면 내 시간이 없는 0% 인생으로 볼 수 있기도 하지요. 퇴사를 할 때에는 지금의 일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충분히 고민해봐야 하고 특히 창업을 할 때는 자신의 핵심역량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퇴사 트렌드와 관련해 ‘내 가게로 퇴근합니다’의 저자인 이정훈 주체적삶연구소장은 요즘은 직장인 성공모델이 깨지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좋은 대학-안정적 직장-저축 후 주택마련-자산가치 상승-여유로운 노후로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직장인 성공모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고 이 모델조차도 깨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장수한 대표는 “퇴사라는 트렌드는 상징적이고 표면적인 화두일 뿐, 본질은 행복한 일과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세대적 갈망을 대변하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일자리 전환기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나’를 아는 것, 둘째는 회사 밖에서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재학습 역량’, 셋째는 지식근로자의 시대를 대비해 ‘자신만의 차별화된 콘텐츠·강점 개발’이죠.”
   
   
   작가·사진가·앱개발자 등 직업 7개
   
   이민주 버핏연구소장에 따르면, 근 100년간 지속되었던 고용사회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1910년 포드주의에 의해 시작된 고용사회의 모델이 100년 뒤 아이폰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 석학인 토머스 프레이는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80억 인구 중 50%가 지금의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어쩌면 밀레니얼 세대들이 ‘직업=직장’이라는 예전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데는, 이 같은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변화의 시대를 특이하게 돌파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엔잡러’들이다. 전제우(34) 히플 대표의 경우 직업이 7개다. 작가, 사진가, 에어비앤비 공식앰배서더, 강연자, 앱 개발자, 프리랜서 IT 기획자, 여행칼럼니스트 등의 일을 동시에 한다. ‘디지털노마드’ 혹은 ‘엔잡러’라고 불리는 그의 첫 직장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SK텔레콤이었다. 2015년 회사를 그만두고 사내커플이던 아내와 함께 1년 동안 25개국 117개 도시를 도는 세계일주를 했다. 최근엔 ‘시작은 언제나 옳다’란 책도 냈다.
   
   “원래는 아내와 둘이서 앱을 개발해보려고 ‘에어비앤비’를 써보다가 집에 빈방이 있으니 직접 호스트를 하기로 했어요. 저희 집에 왔던 외국인 게스트가 ‘왓두유두(What do you do)?’ 하더라고요. 저는 ‘네가 로밍해온 휴대폰 회사인 SKT 다녀’라고 했죠. 그 친구가 ‘네 직업을 물어봤는데, 너는 직장을 얘기하는구나’라고 말해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고민을 했어요. 저는 원래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입사했는데, 당시 인사팀에서 교육업무를 하고 있었고 내년에는 또 뭘 할지 모르니까요.”
   
   그때부터 천직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직은 있어도 없다”였다고 한다. 천직이 되려면 4가지 조건, 즉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 돈 버는 일,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일이 되어야 하는데, 그걸 모두 만족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유니콘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지만, 좋아하는 일은 좋아하는 대로, 잘하는 일은 잘하는 대로 하나씩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멀쩡한 대기업을 포기하려는 부부를 안타까워하는 양가 부모님을 앞에 모시고 전 대표는 회사에서처럼 2시간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세계경제의 흐름과 대한민국의 경제 흐름, 각 직종별 근속연수를 보여줬어요. IT기업의 경우 40대 중반이면 대부분 퇴사해요. 자영업 창업 및 폐업 비율을 보여주면서, ‘10년 버티고 치킨집 차릴까요, 한 살이라도 어리고 일어설 힘이 있을 때 도전할까요’라고 여쭤봤어요. 그후 직접 에어비앤비를 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을 100명 넘게 만났어요. 세상의 직업군이 150만개라는데,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직업은 열 손가락 안에 들잖아요. 그러다 독일에서 온 커플을 만났죠. IT업종에 종사하는 이 커플은 여행을 하면서 돈을 벌더라고요. 우리도 세계일주를 하면서 여행자를 위한 여행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보기로 했죠.”
   
   이후 이들은 아예 ‘히플’이라는 사업체도 냈다. 히플은 자유로운 히피(Hippie)와 평범한 사람(people)의 합성어다. 자유와 안정 사이를 오간다는 의미다. “다들 회사를 그만두고 뭔가에 올인하잖아요. ‘회사 밖은 전쟁터라 하나에 올인해도 될까 말까인데, 여러 곳에 찔끔찔끔 해서 뭐가 되겠어’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한 번’이잖아요. 다 잃으면 누가 책임지나요. 여러 가지 일을 하면 한 번에 망할 일이 없죠. 개인적으로 책을 내고 사진 찍는 창작활동을 좋아하는데, 그 덕분에 강연 요청이 많아요.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미래를 위한 일이에요. 에어비앤비를 계속 하니까 이것으로도 수익을 내고요.”
   
   퇴사 이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전 대표는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얻었는데, ‘소속감’이나 매일 누군가를 만나는 루틴(routine)함을 잃었다”고 했다. “저희 아기가 세상에 나온 지 33일밖에 안 됐어요. 아이가 생겼으면 한 명은 정신 차리고 회사에 가야 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둘 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부모가 항상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들어와서 희생의 아이콘처럼 산다고 해서, 아이가 그걸 행복해할 것 같지는 않아요.”
   
▲ 7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전제우 히플 대표의 사진들. 맨 위와 아래는 SK텔레콤을 다니다 함께 퇴사한 아내와 찍은 사진이다.

   전 대표는 강연 요청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막상 퇴사 이후의 삶을 고민만 하지 실행으로 옮기기엔 불안함이 많은데, 그걸 어떻게 실행에 옮겼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각자 모든 삶의 방식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저처럼 사는 인생을 모두에게 권유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만두고 싶어하는데 용기를 못 내는 분들께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한 번에 인생을 바꿨어요’라고 묻는데, 저는 1년 동안 여러 개의 끈을 붙잡고 있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에어비앤비로 수익을 내는 실험을 하는 등 서서히 비중을 옮겨왔죠.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그만두는 게 아니라, 주말마다 꽃을 만들어서 SNS에 올려서라도 팔아보거나 주말마다 꽃집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합니다. 큰 시작은 하나도 없어요. 꿈은 크더라도 시작은 작은 것부터 해야 합니다. 작은 실패는 충분히 딛고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전 대표는 “외국에선 정규직이나 계약직의 차별이 없는데, 우리는 정규직 트랙에서 벗어나는 순간 수익활동이 있음에도 마이너스통장도 만들기 어려워지는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차별이 생긴다”며 “다양한 직업적 흐름에 맞게 제도가 뒷받침된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굳이 한 직장만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일하는 식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후, 20년 후를 말하는데 그걸 쪼개보면 하루의 연속이잖아요. 대학 가면 놀 수 있다고 고등학교를 버티고, 대학 가서는 취업을 위해 버티고, 결혼하면 집 사느라 버티고, 노후엔 자식 뒷바라지로 버티고. 시간은 연속적인 것인데, 오늘 힘든 상황에서 내일 행복해지기 쉬울까요. 오늘 행복해야 내일, 모레, 10년 후에도 행복할 확률이 높죠.”
   
   “IT 쪽 개발이나 다양한 전문직을 가진 이들이나 가능한 이야기 아니냐”는 부정적 댓글에 대해 물어보자 전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작가나 사진가 집단에서 저는 초보작가라 돈을 별로 못 벌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IT 쪽 개발도 완전 베테랑은 아니죠. 하나에서 1000만원 벌 수 있는 재능은 없지만, 조금씩 100만원 벌 재능은 가졌기에 이걸 시도하는 거예요. 여행 갈 때 나침반이 아니라 계산기가 필요하듯이, 꿈이 있어도 현실적인 문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돼요.”
   
   장수한 대표와 전제우 대표가 퇴사한 이유엔 공통점이 있었다. ‘회사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점과 ‘닮고 싶은 미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최근 발표한 한국의 기업문화 보고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청바지 입은 꼰대’다. 습관적 야근, 비효율적 회의, 불통의 업무방식 등 후진적 기업문화가 여전히 낙제 수준이라는 것이다.
   
   장수한 대표는 “이 시대엔 좋은 대안이나 솔루션 등 ‘인풋’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행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진짜 변화하는 ‘아웃풋’을 만들어내기 위해, 진짜 니즈와 대안을 찾기 위해 실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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