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에 신사인 조지 클루니(58)는 수퍼스타인데도 매우 겸손하다. 언제 봐도 밝고 명랑해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다. 최근 비벌리힐스의 포시즌스호텔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그는 위트와 유머를 섞어가면서 질문에 진지하고 자상하게 대답했다. 잿빛 머리에 잿빛 수염을 했지만 마치 장난기 짙은 소년 같았다.

그는 매우 정치적인 배우로 인권변호사인 아내와 함께 세계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인터뷰 후 사진을 찍을 때 그는 필자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북한의 핵 개발을 염두에 둔 듯 “한국 사람들 괜찮냐? 걱정들 안 하냐?”고 묻기도 했다.

스트리밍업체인 훌루(Hulu)가 제작한 반전(反戰) 풍자영화 미니시리즈(6부작) ‘캐치-22’를 제작·감독하고 이 작품에서 호전적인 장군 샤이스코프로도 출연한 클루니와 인터뷰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에 주둔한 미 폭격기 부대원들이 주인공인 ‘캐치-22’ 시리즈는 조지프 헬러의 소설이 원작으로, 1970년 마이크 니컬스 감독(영화 ‘졸업’ 감독)에 의해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 ‘캐치-22’라는 제목은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을 뜻한다.

- 시리즈를 제작·감독하고 출연도 했는데 셋 중 어느 역할이 가장 힘들었는가. “물론 감독이다. 감독이란 얘기 전체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에 충실하기 위해 2차대전 기록영화 ‘세계대전’을 열심히 보며 연구했다.”

- 아버지이자 남편, 사업가로서 몹시 분주할 텐데 영화에 대한 정열은 여전한지. “이 시리즈를 위해 2년을 매달렸다. 나의 영화에 대한 정열은 변함없다. 그러나 그 정열은 작품의 질에 달렸다. 정열을 느낄 수 없는 작품에 시간을 쓸 수는 없는 일이다.”

- 시리즈의 원작인 조지프 헬러의 소설을 봤나. 이미 만들어진 영화도 봤는가. “책은 고등학생 때 읽었다. 고전 명작과도 같은 작품이어서 처음에 내게 시리즈를 만들 의향이 있느냐고 제의가 왔을 때 ‘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각본을 읽어보고 너무 멋있어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도 봤다. 과거 영화를 만든 니컬스 감독과는 잘 아는 사이다. 책에는 나오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 각색하기가 아주 어렵다.”

- 부인 아말(알라무딘)이 당신이 오토바이 타는 걸 금지한 것으로 아는데 그 밖에 또 다른 금지사항이 있나.(클루니는 오토바이 타기를 즐긴다.) “아내가 내가 하는 일을 금지시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토바이 타는 것도 막지 않았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를 낸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이래도 오토바이 또 탈래요?”라고 묻더라. 난 지난 40년간 오토바이를 탔기 때문에 이젠 그만둬도 섭섭할 것 없다. 이제 쌍둥이를 둔 아버지로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만든 ‘캐치-22’ 시리즈처럼 우리는 과거 역사를 통해 지나간 실수나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깨닫는데, 요즘 미국 학교에서는 이런 역사 공부를 소홀히 하고 있다. 과거를 아는 것이 지나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가. “요즘 미국 학교들이 역사나 교양과목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과거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알 수가 없다. 나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차대전을 정의로운 전쟁이라고들 말하지만 그 정의로운 전쟁이 일어난 까닭은 그전에 누군가가 터무니없고 가공스러운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지금 전 세계는 미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브라질 등이 다 독재주의 쪽으로 쏠리고 있다. 매우 염려되는 일이다. 이런 때일수록 배타적이 아니라 끌어안는 포용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시리즈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애벗을 완전 나체로 나오게 한 장면이 있는데 짓궂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극적 사실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다. 그의 나체를 촬영지 주변 언덕에 잠복한 파파라치들이 망원렌즈로 많이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애벗은 자기 나체 장면에 대해 선선히 응했다. 그의 나체는 정말 훌륭했다. 내 나체 장면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캐치-22’의 한 장면.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캐치-22’의 한 장면.

- 당신은 정치적으로 바른 소리를 잘해 적도 적지 않을 텐데 외국에서 호텔에 묵을 때 누군가를 시켜 안전 상태를 점검하는지. “내 아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 재판에 검찰 측 일원으로 나가기 때문에 안전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우린 또 한편으로는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주위에 나를 외부와 차단시키는 경호원들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때론 안전 때문에 호텔을 옮길 때도 있지만 그건 그저 사전 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 이제 아이들(두 살짜리 남매 알렉산더와 엘라)이 곧 말을 하기 시작할 텐데 영어 외에도 아말의 조국인 레바논어를 비롯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도 가르칠 예정인가. “우리는 이탈리아(클루니의 별장이 있다)에 많이 머무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칠 것이다. 둘은 지금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알파벳을 할 줄 안다. 이탈리아어로 20까지 셀 줄도 안다. 난 못 하지만. 두뇌 면에서 아이들은 내가 아니라 아내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다. 아이들은 아주 웃기고 영리하다. 아들은 벌써 날 닮아 나와 같이 짓궂은 장난도 한다.”

- 얼마 전 아기를 낳은 영국의 해리 왕자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아는데. “그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다. 우린 서로 가까운 곳에 살아 해리와 그의 부인 메건을 집으로 초청해 저녁을 같이 먹기도 한다. 그들은 매우 재미있고 친절한 사람들로 아름다운 한 쌍이다. 훌륭한 부모가 되리라고 믿는다.”

- 영화 매체가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영화는 정치와 사회현상에 때론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반면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인종차별을 찬양한 ‘국가의 탄생’이나 1970년대 베트남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좋은 예다. 그러나 영화는 역사처럼 실제 상황이나 사건이 다소 지난 후에야 그것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저널리즘에 영향을 미친 것도 워터게이트사건이 터진 지 2년이나 지나서였다. 난 배우와 일반인들이 중요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기쁘다. 그런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난 민권운동과 여권운동 및 반베트남전의 열기가 한창일 때 성장해 늘 그런 것들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 올해가 결혼 5주년인데 소감이 어떤지. “두 아이가 있기 전에는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아이들에게 매달려 사는 지경이다. 오늘 새벽에만 해도 딸아이가 아파서 우리 침대에 누이고 잠든 아이가 깨지 않도록 난 아이 방 카우치에서 잤다. 여하튼 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모자라고 또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는 사람을 뒤늦게 만났으니 말이다.”

- 당신이 아내와 세운 정의구현재단 일을 하는 데 애로가 많은가. “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내가 관심을 가진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난 정부 관리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을 세울 수는 없지만 나쁜 정책을 드러내 그것을 시정하고자 노력한다. 어느 정도 성공할 때도 있지만 크게 만족할 만큼 좋은 성과를 얻기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나쁜 것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일은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나쁜 것을 보고도 시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내겐 범죄행위나 마찬가지다.”

- 전쟁과 삶, 그리고 정치의 어리석은 점에 대해서 조롱하고 풍자하기를 즐기는데 유머가 당신의 활력소 중 하나인가. “유머는 신통력을 지닌 묘약이라고 생각한다. 유머는 좋은 것이다. 그것으로 사람을 풍자할 경우 독침보다도 더 아프게 찌르고 들어온다.”

- 이번 시리즈에서처럼 미군 장성으로서 북한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북한이 좋지 않은 행동을 버리고 정상적인 나라로 돌아가는 문제에 대해선 나도 깊은 관심이 있다. 매우 위험한 나라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보다 훨씬 더 세계 정세에 정통한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 2020년 미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용의가 있는지. “난 정치에 직접 개입할 생각은 없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현재의 삶을 정말로 즐기기 때문에 정치무대에 나설 생각이 없다고 대답한다. 정치란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위해선 자신의 무언가를 양보해야 하는 직업이어서 그럴 자신이 없다. 난 내가 믿는 일을 양보하지 않고 굳건히 지키고 싶다.”

- 당신은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지만 그를 어겼는데. “오래전 첫 결혼에 실패하고 나서 결혼이 내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필사적으로 결혼을 회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다시 결혼해 아기 낳을 생각을 한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어느 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여자가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그와 같은 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 민주당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로 무려 20여명이 출사표를 냈는데 그중 지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저 민주당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하겠다. 난 조 바이든(오바마 대통령 시절 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그는 진짜로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밖에 훌륭한 다른 후보들도 잘 알고 있다. 민주당 예비선거에는 깊이 개입하지 않고 본선 때 본격적으로 도울 예정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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