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털리 우드 기록영화 ‘내털리 우드: 왓 리메인즈 비하인드’의 제작과 해설을 맡은 내털리 우드의 딸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와 기록영화 감독 로랑 부즈로. ⓒphoto 뉴시스
내털리 우드 기록영화 ‘내털리 우드: 왓 리메인즈 비하인드’의 제작과 해설을 맡은 내털리 우드의 딸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와 기록영화 감독 로랑 부즈로. ⓒphoto 뉴시스

‘이유 없는 반항’ ‘초원의 빛’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에서 주연을 맡은 내털리 우드의 딸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49)와 영상 인터뷰를 가졌다. 최근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는 어머니의 추억을 다룬 ‘모어 댄 러브’를 출간했고, 어머니에 관한 HBO-TV의 기록영화 ‘내털리 우드: 왓 리메인즈 비하인드’의 제작과 해설을 맡기도 했다.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와의 인터뷰는 이런 최근의 이벤트가 계기가 됐다. 얼굴에서 어머니의 인상이 느껴지는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는 활기차고 간단명료하게 질문에 답했다.

내털리 우드는 43세이던 1981년 11월 29일 LA 인근의 휴양지 산타카탈리나섬 연안에 정박한 요트에서 실종된 뒤 익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요트에는 내털리 우드의 남편이자 배우인 로버트 와그너와, 촬영 중이던 ‘브레인스톰’에 출연한 크리스토퍼 월켄이 타고 있었다. 사고 후 남편 로버트 와그너는 내털리 우드를 살해한 용의자라는 소문에 휩싸이면서 경찰 조사까지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내털리 우드: 왓 리메인즈 비하인드’에 나오는 젊은 시절 내털리 우드와 딸 와그너. ⓒphoto 뉴시스
‘내털리 우드: 왓 리메인즈 비하인드’에 나오는 젊은 시절 내털리 우드와 딸 와그너. ⓒphoto 뉴시스

- 어머니에 관한 기록영화를 만든 소감은. “100% 마음이 정화된 기분이다. 어머니에 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더 좋았던 것은 어머니가 생전에 한 일들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남녀 간 임금차이와 동성애자의 권리 및 정신건강 문제 개선 등에 관해 맹렬한 운동을 펼쳤었다. 따라서 이번 작품으로 사람들이 어머니를 재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영혼을 치유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공부했는가. “어머니가 잡지 ‘레이디스 홈 저널’과 가진 인터뷰가 작품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많은 인터뷰를 연구했다. 어머니가 영화제작에 직접 참여한 것처럼 만들고 싶었다. 결정적 자료는 내가 보지 못했던 16㎜ 필름이었다. 필름에는 화장을 안 한 어머니가 집에서 웃고 이야기하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동물들과 노는 모습이 기록돼 있는데 이런 모습은 나는 기억하지만 시청자들에겐 전연 새로운 면모일 것이다.”

-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현 코로나19 사태에 어떤 조치를 취했으리라 생각하는가. “어머니가 함께 있으면서 자녀 양육과 엄마의 역할에 관해 가르쳐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한다. 어머니는 이런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독서를 적극적으로 권했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책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게 피아노 교습을 받게 했는데 내 딸 클로버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 딸에게 피아노 교습을 시키고 있다. 어머니가 지금 살아 있다면 삶의 값진 예지를 듬뿍 가지고 계실 텐데…. 그것을 물려받고 싶다.”

- 아버지 리처드 그렉슨(영국인 영화제작자로 작년에 사망)을 인터뷰한 느낌은. (와그너는 내털리 우드가 남편 로버트 와그너와 이혼한 뒤 재혼한 리처드 그렉슨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내털리 우드는 후에 로버트 와그너와 다시 결혼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리처드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이혼해 난 이혼부부의 딸처럼 느껴본 적이 없다. 그 후 어머니는 로버트와 재혼했기 때문에 난 자라면서 아버지가 둘이라고 생각했다. 리처드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그에게 영상인터뷰와 음성인터뷰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아버지가 영상인터뷰를 골랐는데 그가 살고 있는 웨일스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인터뷰 전날 밤 침대에서 떨어져 팔목이 부러져버렸다. 아버지가 이를 숨기고 인터뷰를 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어머니의 얘기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아버지가 내 영화를 하늘에서 내려다보시리라 믿는다.”

- 어머니에 관한 가장 좋은 기억은. “많다. 그러나 가장 많이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매우 따스하고 친근하며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포옹했다는 것이다. 늘 접촉할 수 있고 나를 채워주던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선 늘 시간을 내어 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늘 웃었다. 내겐 큰 존재였는데 한편으론 매우 엄격했다.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내게 피아노와 잘 못하는 수학을 따로 공부시켰다. 어머니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날 사랑하고 잘 키워준 것에 대해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

- 어머니의 영화 중 제일 먼저 본 것은 무엇인가.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34번가의 기적’을 보여줬다. 그때 난 영화 속의 어린 어머니가 내 어머니인지 의아해했다. 또 어머니가 참석한 행사를 TV로 봤을 땐 어머니가 통 속에 갇혀 있는 줄 알고 무서웠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선생님이 가져온 필름으로 교실에서 급우들과 함께 ‘초원의 빛’을 난생처음 끝까지 봤다. 그것은 계시적인 순간으로 깊은 감동과 함께 내가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 어머니의 사망을 어떻게 알았는가. “불행하게도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이어 아버지 와그너한테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는데 난 아버지가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생전 처음 봤다.”

내털리 우드와 워렌 비티 주연의 1961년 영화 ‘초원의 빛’.
내털리 우드와 워렌 비티 주연의 1961년 영화 ‘초원의 빛’.

1961년 내털리 우드 주연의 뮤지컬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해 올해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61년 내털리 우드 주연의 뮤지컬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리메이크해 올해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어머니 사망 후 어머니 얼굴과 몸에 타박상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가 폭력적으로 다퉜다는 것은 낭설이다. 관 속의 어머니를 봤는데 가정싸움으로 인한 흔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 후론 그에 관해 일절 얘기를 안 했다.”

- 스티븐 스필버그가 당신의 어머니가 나온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다시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 영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최근에 여덟 살 난 내 딸의 눈을 통해 새로 발견했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머니가 노래하는 ‘아이 필 프리티’ 장면이다. 스필버그가 영화를 다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에 붕 뜬 기분이었다. 스필버그와 같은 완전한 영화인에 의해 어머니의 이름이 세상에 다시 알려진다는 것이야말로 감사할 일이다. 어서 보게 되기를 갈망한다.”

- 크리스토퍼 월켄이 영화를 위한 인터뷰에 응하지 않은 것이 사실인지. “그렇다. 그의 에이전트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는 처음에 응할 생각이 있었으나 그 후 다시 곰곰 생각해보고 나서 거절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지금까지 전연 언급을 안 하면서 우리 가족의 사적인 일을 잘 보호해준 사람이다.”

-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동기가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온갖 낭설을 잠재우기 위해서인가. “그렇다. 그런 낭설이 주는 부담을 어머니의 유일한 손녀인 내 딸에게까지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모든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과 함께 어머니의 찬란한 삶을 조명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삶을 감싸고 있는 그날 밤 비극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이와 함께 아버지 와그너가 올해 90세가 되는 것도 동기 중 하나였다. 난 미디어가 그를 부당하게 다룬 것에 대해 전연 관심이 없다.”

-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입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했는가. “어머니를 잃은 후 몇 년간 깊은 슬픔에 젖었다. 그와 함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은 여러모로 날 보다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매일 내 삶과 내 삶 안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어려서 귀중한 무언가를 상실하게 되면 삶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느끼게 되면서 그것이 결코 거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

- 어머니의 비극 후 산타카탈리나섬을 찾아간 적이 있나. “우리 가족 누구도 거기에 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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