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성 A씨.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정보가 세 가지 있다. 일기예보와 미세먼지 농도, 그리고 ‘클루’다. 나의 생리 주기를 분석해 생리 기간과 생리통, 기분, 피부 상태, 수면, 체력, 식욕 등 ‘오늘 내 몸’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앱이다.

#요가학원에서 요가를 하며 건강관리도 하고 힐링도 하는 20대 여성 B씨. 원래 오늘처럼 생리를 하는 날이면 요가학원을 아예 안 가곤 했다. 생리대를 착용하고 요가복을 입으면 얇은 요가복 아래 생리대가 비춰 부끄럽기도 하고, 혹여 생리가 샐까 걱정돼 움직일 때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을 통해 구입한 미국 스타트업 띵스(Thinx)의 제품을 착용한 뒤론 달라졌다. 띵스는 생리대가 필요 없는 기능성 생리용 속옷을 개발했다. 4층구조로 된 속옷은 생리대가 보일 염려도 없고, 하루 착용한 뒤 빨면 된다.

1893년 9월19일, 전 세계에서 최초로 뉴질랜드 여성들이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 여성들의 권리와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하지만 일부 산업 분야, 특히 우리의 ‘몸’과 관련한 의료산업과 건강 분야에선 여성 문제가 줄곧 외면 받아왔다. 심지어 여성용품 시장에서도 여성은 생산의 기준이 아니라 그저 판매 대상으로만 여겨지곤 했다.

이런 흐름에 반해 여성을 중심에 둔 시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여성 건강이나 생활 개선에 초점을 맞춘 ‘펨테크(Femtech)’다. 펨테크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의 합성어로, 여성 건강을 위해 인공지능(AI)과 3차원(3D) 프린팅, 생명공학, 신소재 기술 등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말한다. 덴마크 출신 창업가 아이다 틴이 2013년 처음 제안한 말이다. 틴은 앞서 언급한 생리 주기 추적 모바일 앱 ‘클루’를 개발한 스타트업의 창업자다.

발암물질 없는 콘돔, 오가닉코튼 생리대, 생리주기 추적 앱 등이 대표적인 펨테크 제품이다. 미국에서 먼저 성장하기 시작한 펨테크 분야는 2019년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가장 유망한 기술 분야 중 하나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이머전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187억5000만달러(약 21조원)였던 펨테크 시장 규모는 2027년 600억1000만달러로 매년 15~20%씩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은 세계 펨테크 기업에 대한 투자액이 2019년 5억9200만 달러로, 3년 간 2.6배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또다른 시장조사업체 프로스트&설리번은 펨테크 시장 규모가 2025년 500억 달러(약 557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펨테크 시장을 이끌고 있는 건 주로 미국 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아시아 지역에서도 그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일본을 선두로 최근 한국에도 펨테크 스타트업들 등장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펨테크 기업으로 꼽히는 ‘단색’은 2019년 시리즈A 투자를 성공적으로 유치하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단색은 기능성 여성 의류를 제작‧판매하는 기능성 여성 의류 전문 브랜드로, 패드 없이 팬티만 입어도 질 분비물이 새지 않는 ‘논샘팬티’를 개발했다. 여성을 위한 콘돔을 개발한 스타트업 ‘인스팅터스’도 대표적인 펨테크 기업이다.

미투운동 계기로 펨테크 시장 성장

처음 팸테크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때는 비교적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여성을 위한 기술’로 사용됐다. 그러다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미투운동이 확산하면서 펨테크 시장도 빠르게 성장했다.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여성의 구매력이 신장되면서, 그리고 여성 리더들이 직접 여성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등장하면서 여성의 헬스케어 의식, 행동, 소비, 생활 등 모든 측면에 대한 접근법을 포괄하게 되었다.

이제 펨테크가 다루는 분야는 기본적인 헬스케어뿐 아니라 출산, 여성 유전학, 월경과 폐경 등 다양해졌다. 펨테크 분야의 성장세를 분석한 피치북 애널리스트 앤드류 아커스는 “펨테크는 여전히 틈새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기술 분야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증가하고 있고, 여성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과 수용도가 높아지고 있어 성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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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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