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노매드랜드’의 여주인공 프랜시스 맥도먼드(왼쪽)와 감독 클로이 자오. ⓒphoto 뉴시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노매드랜드’의 여주인공 프랜시스 맥도먼드(왼쪽)와 감독 클로이 자오. ⓒphoto 뉴시스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프랜시스 맥도먼드(63)는 큰 미소를 지으며 밝고 활기차게 질문에 대답했다. 맥도먼드는 중국계 미국인 여류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한 ‘노매드랜드’에서 낡은 밴에 가재도구를 싣고 미 서부를 횡단하는 펀으로 나온다. 펀은 경제난으로 살고 있던 마을이 황폐화되자 새 삶을 찾아 나선다. 맥도먼드는 이 영화로 지난 4월 25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 ‘노매드랜드’는 작품상과 감독상도 수상했다.

맥도먼드는 오스카상 수상 소감에서 “우리의 영화를 가능한 한 가장 큰 화면으로 봐 달라”면서 “언젠가 당신이 아는 사람을 극장으로 데려가 어둠 속에서 어깨를 맞대고 오늘 밤 소개된 영화들을 다 보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어 “우리는 이 상을 우리의 늑대에게 준다”라고 말한 뒤 공중을 향해 늑대 울음소리를 한껏 내지르기도 했다. 이는 올 초 자살한 ‘노매드랜드’의 음향 담당자 마이클 울프 스나이더의 죽음에 바치는 제스처였다. ‘노매드랜드’는 지금까지 총흥행수입 610만달러를 올렸는데 이는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영화로서는 최저 액수다.

맥도먼드는 ‘파고’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을 만든 형제 감독 조엘, 이산 코헨 중 형인 조엘의 부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자택에서 영상 인터뷰에 응한 맥도먼드는 아카데미 시상식 때 보여준 수수한 차림새처럼 연기도 자연스럽고 수수하다. 그런 점에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과 닮았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장면.
영화 ‘노매드랜드’의 장면.

- 당신은 많은 영화에서 시골 출신의 강한 성격을 지닌 여성으로 나왔다. 그런 역이 자신의 성장배경과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 나는 미국의 근간인 근로자 가족 출신이다. 우리 가족은 대부분 농촌이나 공장지대에서 살았다. 나는 영화에서 내가 알고 또 나를 키운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노매드랜드’로 그런 역을 마감하고자 한다. 앞으로 외국어를 말하는 사람으로 나오기 위해 여러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멋있는 여자 스파이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 펀은 사랑하는 사람과 집을 모두 잃고 외톨이가 되는데 그런 역에 어떻게 감정적으로 접근했는가. “다행히 장수한 부모를 잃은 것 외에는 가까운 사람을 잃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나와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나를 믿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배우로서 내 일이다. 클로이와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을 그들이 전에 가보지 못한 곳으로 안내하고자 했다. 펀처럼 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실제 존재한다. 그들이 불안하고 스트레스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목민의 삶을 선택한 것은 일단 정부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나와 오래 살아온 남편과의 경험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좋다. 그를 잃고 갑자기 나 혼자가 되면 어떨 것인지 생각해 봤다. 영화 속 떠도는 사람들처럼 공포와 자유와 슬픔, 그리고 혼자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자립정신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 펀은 생계를 위해 잡일을 하는데 당신도 배우로서 성공하기 전에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난 15살 때부터 식당에서 접시를 닦았고 남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구내식당과 의상실, 세트제작실에서 일했다. 늘 일하면서 공부했다. 예일대학원에서 드라마를 공부할 때는 세탁소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세탁뿐 아니라 다리미질, 세탁물 접는 일도 했다. 그리고 이사할 아파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거리에서 물건을 팔기도 했다. 이 밖에도 식당 계산대에서 일했고 가수의 팬레터도 대필했다. 그러다가 배우로서 자립하게 된 것이다. 나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 밴에서 살면서 떠도는 사람들을 만난 경험은 어땠는지. “우린 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고 지금 있는 집도 크지 않다. 늘 규모가 작게 살아왔다. 역을 위해 차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작은 승용차를 식당과 침실로 사용하면서도 안을 우아하게 꾸민 사람들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다. 그것을 보고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선 별로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우리가 자본주의의 노예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보다 많은 것을 원하면서 적은 것을 두려워 하지만 사실은 적을수록 삶은 더 좋아진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펀 역을 하면서 당신의 과거 삶과 어느 점이 다르다고 느꼈는가. “난 펜실베이니아주의 공장지대에 살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공장에서 일을 했다. 월급으로 차도 사고 집도 샀다. 결혼해 가정을 가질 수도 있었다. 퇴직할 때까지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집에서 살았다. 사람들은 그 이상 더 바라지 않았다. 그때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밴에서 사는 사람들은 한 달에 500달러로 살아야 하는데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집은 물론이고 한 달 생활비로도 엄청나게 부족한 액수다. 그래서 은퇴란 생각할 수도 없고 계속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에서 펀도 ‘나는 일이 필요해’라고 말하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오른쪽)과 함께 시상식 후 포즈를 취한 맥도먼드. ⓒphoto 뉴시스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오른쪽)과 함께 시상식 후 포즈를 취한 맥도먼드. ⓒphoto 뉴시스

- 당신은 상실에 가슴 아파하고 고독한 여자 역을 많이 했는데 이런 역을 위해서 어떤 준비라도 하는가. “아니다. 지난 40년간 배우생활을 하면서 역을 위해 나만의 감정과 심리적 삶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울러 그것이 나의 실제 개인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게 하려고 애썼다.”

- 세계에서 가장 잘산다는 미국에 홈리스가 많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강조하는 바는 영화에서 차를 타고 방랑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홈리스(가정 없는 사람들)가 아니라 하우스리스(집 없는 사람들)라는 점이다. 떠도는 삶은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스스로 잡고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아파트 월세를 내거나 집을 사는 데 필요한 융자금을 갚기 위해 쓰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다. 영화에서도 이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밴을 타고 방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먹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또 일하며 번 돈을 집을 위해 쓰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차를 타고 자기 나라를 구경하겠다면서 방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은 미국인들의 기본 정신 자세이기도 하다. 미국에 장수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확산하고 있다.”

- 촬영을 하면서 펀처럼 밴 안에서 자고 생활했는가. “아니다.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28명이 밴과 승용차 등 12대의 자동차로 이동했는데 소규모 유목민 집단을 이뤄 촬영지를 옮겨 다녔다. 가끔 밴 안에서 자긴 했지만 대부분 호텔에서 밤을 보냈다. 촬영장비를 보관한 밴 안에서 자면 마치 세트장에서 자는 기분이 들어 우리 영화 분위기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밴 안에서 자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했다.”

- 예일대학원에서 드라마를 공부하게 된 이유는. “대학교수들의 조언 때문이었다. 나는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인문대학을 다니면서 연극을 전공했다. 그때 꿈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뉴욕에 올라가 가능한 한 빨리 극단 단원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학교수들이 내게 그러지 말고 공부를 더 하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내가 너무 순진해서 곧바로 뉴욕의 극단에 들어가면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때 나는 세상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풋내기였다.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연기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당신이 클로이를 감독으로 선택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클로이는 누구에 의해서도 선택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제작자로서 할 중요한 일은 작품 감독으로 하여금 자기가 선택을 받았다거나 고용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클로이와 일하게 된 이유는 그가 2017년에 만든 독립영화 ‘라이더’를 보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영화야말로 내용과 연기, 편집과 촬영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작품이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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