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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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교수: “뭐라고 들립니까?”

기자: “‘다’(da)라고 들립니다.”

이 교수: “좋습니다. 이번에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지 말고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화면 속 사람의 입 모양을 보지 마세요. 자, 이제 어떻게 들립니까?”

기자: “‘다’라고 들리나… 아니, ‘바(ba)’, ‘바’라고 들립니다.”

이 교수: “아까와 다르게 들리죠? 성인 대부분은 다르게 듣습니다. 컴퓨터 동영상 속 말하는 사람은 두 번 모두 ‘바’라고 발음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입 모양을 볼 때는 ‘다’라고 듣습니다. 왜냐면 그의 입은 ‘바’ 소리를 낼 때의 모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 모양은 ‘가’ 발음 때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는 정보와 귀로 듣는 정보가 달랐습니다. 두 가지 정보가 충돌한 것이지요. 동영상은 실험을 위해 편집한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킵니다. ‘바’가 아니고, ‘다’라고 듣습니다.”

‘맥거크 효과’를 실험하다

지난 7월 21일 카이스트 E3-6 건물 1층 이승희 교수 연구실에서 이 교수로부터 ‘맥거크 효과(McGurk Effects)’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맥거크 효과는 영국 서리대학의 인지심리학자 해리 맥거크와 그의 조수인 존 맥도널드가 1976년에 알아냈다. 눈으로 보는 소리 정보와 귀로 듣는 청각 정보가 동시에 뇌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뇌가 두 개의 다른 외부 정보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이론이다. 특히 두 정보가 충돌하는 경우 뇌가 어떻게 두 가지 정보를 처리하는지를 보여준다. 뇌가 ‘바’ 소리를 ‘다’로 듣는 이유는 아직 모른다.

이승희 교수는 신경과학자이고, 그의 실험실 이름은 ‘감각 처리 연구실(Sensory Processing Lab)’이다. 감각 정보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정보를 모두 가리킨다. 외부 정보를 정확하게 받아들여야 혼돈이 없고 최적의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뇌질환 중에서 자폐, 조현병, 치매 환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 정보 인식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감각 정보들을 뇌가 어떻게 통합 처리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걸 알아내면 뇌질환자의 경우 어디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알아낼 수 있고,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승희 교수는 서울대 생물교육과 98학번. 학부 3학년 때 생물학과 강봉균 교수 강의를 들은 게 신경과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학부 4학년 여름방학 때 강 교수 실험실에 들어갔고 6년이 지난 2007년 8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과정 때 이승희 교수는 최상위 생물학 학술지 셀(Cell)과, ‘신경과학저널(Journal of Neuroscience)’에 논문을 발표했다. 셀에 논문을 썼으면, 그것도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하면서 썼으면 상당한 연구 성과를 올린 것이다. 연구는 군소(Aplysia)라는 바다 생물을 갖고 했다. 당시 셀에 실린 연구 주제는 장기기억 형성 관련이다. 논문을 찾아보니 논문 제목이 ‘군소의 장기기억을 만들기 위해 핵으로 이동하는 건 CAMAP(단백질)이고, 이 단백질이 전사를 활성화시킨다(Nuclear Translocation of CAM-Associated Protein Activates Transcrption for Long-Term Facilitation in Aplysia)’쯤 된다. 이 연구 토픽은 강봉균 교수가 오래도록 풀고 싶어 했던 문제였다.

박사학위를 받고 1년 반 정도 지나 미국 버클리-캘리포니아대학으로 갔다. 그곳에서 중국계 여성인 단양(Yang Dan·丹揚) 교수 실험실로 들어갔다. 단양 교수는 중국 베이징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신경생물학으로 분야를 바꿔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양 교수는 2018년 미국 국가과학자에 해당하는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임된 바 있고, 하워드휴즈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중국 신경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푸무밍(Mu-ming Poo·蒲慕明)이 그의 남편이다. 단양은 컬럼비아대학에서 푸무밍의 제자였다.

버클리대 단양 교수 실험실에서 배우다

이승희 박사는 버클리의 단양 교수 랩에서 지각(perception), 그중에서도 시각을 연구했다. 시각 정보가 대뇌피질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연구했다. 눈의 망막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뇌가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 데이비드 허블(David Hubel)과 토르스텐 비셀(Thorsten Wiesel)이 고양이를 갖고 시작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두 연구자는 이 연구로 1981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허블과 비셀은 고양이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실험을 했다. 이어 고양이 시선이 향하는 곳에 슬라이드를 띄웠고, 화면에는 특정 각도로 있는 고정돼 있는 선(orientation)과, 특정 방향으로 이동하는 선(direction) 패턴을 돌아가면서 보여줬다. 고양이 두개골을 일부 열고 대뇌피질의 신경세포에 전극을 꽂았다. 이제 확인할 건 고양이가 눈으로 특정 패턴을 볼 때 대뇌피질의 어떤 신경세포가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다. 특정 패턴에 고양이의 해당 신경세포가 예민하게 반응한다면 그 세포는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를 만들고, 전극에 연결된 장치에서는 탁탁 소리가 난다.

실험 결과, 고양이의 특정 시각 신경세포는 특정한 방향각과 특정 이동 방향을 가진 시각 자극에 민감했다. 이는 뇌가 눈으로 시각 정보가 들어오면, 그걸 각각 특화된 다수의 시각 신경세포들을 갖고 분해해서 처리하며 이후 이 정보를 다시 결합해 사물의 시각적인 특징을 인식하는 걸로 해석됐다.

그 뒤로 뇌의 시각 정보 처리에 대한 연구가 봇물을 이뤘다. 이승희 박사가 버클리에서 한 연구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승희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2012년 최상위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으며, 후속연구도 2014년 네이처에 보고했다. 첫 번째 논문이 네이처에 나온 뒤 이승희 박사는 카이스트에서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다. 네이처 논문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허블과 비셀의 연구 뒤에도 뇌의 시각 정보 처리 이해에 미지의 영역은 많았다. 그들은 시각피질세포가 특정 시각 패턴에 민감해질 수 있는 신경회로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승희 박사후연구원이 2012년 네이처 논문에서 풀어낸 과학적인 질문은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교수의 2012년 네이처 논문 제목은 ‘특정 연합신경세포(interneuron)의 활성화가 1차 시각피질의 방향 선택성과 시각 인지를 향상시킨다’이다. 여기서 ‘특정 연합신경세포’란 ‘GABA 억제성 연합신경세포’라고 불리는 신경세포를 말한다. GABA 억제성 연합신경세포는 GABA라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억제성 연합신경세포는 흥분성 신경세포의 바로 옆에 있고, 그쪽을 향해 축삭을 뻗어 이 신경세포의 활성화를 억제한다.

대뇌피질의 억제성 연합신경세포에는 PV+(Parvalbumin-positive)신경세포, SOM+(somatostatin-positive)신경세포, VIP신경세포 등이 있다. 이 교수는 PV+신경세포와 SOM+신경세포의 작용이 흥분성 신경세포의 방향 선택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절한다는 것을 연구했다. 예컨대 SOM+신경세포는 흥분성 신경세포가 다른 신경세포로부터 정보를 받는 문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정보 수신을 통제한다. PV+신경세포는 흥분성 신경세포가 다른 흥분성 신경세포에 자신이 가진 정보(membrane potential)를 보내는 문턱 값을 높이는 일을 한다.

감각 정보 통합 연구 파고들어

이 교수의 연구 결과, PV+는 흥분성 신경세포의 활성을 뺄셈하듯이 억제하여 1차 시각피질 신경세포들의 방향 선택성을 더욱 날카롭게(sharpening) 했다. 우리가 신경을 집중하면 대상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섬세하게 지각하게 되는데, 이는 PV+신경세포가 활성화되어 시각피질 세포들이 모두 날카롭게 자극에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반면 SOM+는 흥분성 세포의 활성을 나눗셈 방식으로 억제하여 방향 선택적 반응이 둔해지게 하였다.

당시 실험은 생쥐를 갖고 했다. 실험은 끔찍하게 어려울 듯했다. 쥐 뇌에 전극을 꽂아 신경세포들의 활동전위를 측정하는 건 물론이고, 당시 막 개발된 광(光)유전학(optogenetics)을 써서 ChR2라는 단백질이 특정 세포 유형에만 발현되도록 하는 바이러스 벡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뒤 ChR2가 들어가 있는 특정 타입의 신경세포에 빛 자극을 주면서 주변 신경세포들이 시각 자극에 반응하는 정도가 강화 혹은 약화되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신경세포 반응 변화가 시각 인지 과정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 위해서는 ‘행동 실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쥐가 특정 시각 자극을 구별하여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광 자극으로 특정 타입의 신경세포를 활성화시킨 뒤 시각 자극을 식별하는 능력 변화를 측정 기록했다.

이승희 교수는 이후 카이스트에 교수로 부임하면서 감각 정보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파고들었다. 박사후연구원 때는 시각 연구만 했으나, 외부 세계에서 오는 정보는 시각 말고도 청각, 촉각, 후각 등 다양하다. 이런 다양한 감각 정보가 뇌에서 연합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연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교수는 “시각과 청각의 연합을 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촉각과 후각의 연합도 조금씩 보고 있고 앞으로 확대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감각피질에서 나온 회로들이 만나 연합되는 대뇌피질 영역이 있는데 이곳을 ‘연합피질(association cortex)’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이곳에서 시각과 청각 정보가 어떻게 연합되는지 신경회로 작동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카이스트에서 처음 쓴 논문은 2016년 ‘신경과학저널(Journal of Neuroscience)’에 나왔다. 시각, 청각, 촉각의 서로 다른 ‘1차 감각피질’로 유입되는 아세틸콜린과 노르에피네프린 신경조절 회로의 해부학적 구조와 그 기능을 규명했다. 2017년 2월에는 학술지 ‘뉴런(Neuron)’에 시각에 비해 청각이 우세하다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논문 제목은 ‘청각이 시각 인지에 비해 우세한 신경회로’이다. 이 논문의 하이라이트는 쥐가 청각과 시각 정보를 인지하면서 의미의 충돌이 일어날 때 청각 정보가 우세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이 교수는 “두 가지 감각 정보가 통합되는 연구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주도했다. 그간에는 시각 또는 청각 정보를 뇌가 어떻게 각각 처리하는지에 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나는 연합피질에서 시청각 정보가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보였다. 이 연구가 어려운 건 생쥐와 같은 모델 동물을 훈련시켜 뇌에서 일어나는 지각 과정을 행동 관찰과 생체 내 신경 측정을 통해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예일대 30억 제안 거절

학술지 ‘뉴런’에 보고한 이 연구는 ‘창의적인 연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연구 이후 미국 예일대학으로부터 이직 제의를 받았다. 연구비 30억원을 지원해줄 테니, 카이스트를 떠나 옮겨오라는 제안이었다. 2017년 논문 결과를 미국 뇌신경과학회에 가서 발표한 게 계기였다. 발표를 들은 사람 중에 예일대 교수가 있었고, 그는 자기 학교에 와서 발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교수는 “여성 연구자라고 해서 한국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때 차별을 느꼈다. 그래서 어딜 가나 소수(minority) 처지라면 차라리 연구비나 많은 미국으로 갈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고 학교와 동료 교수들이 붙잡았다. 결국 미국행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교수의 연구 이야기는 낯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의 설명은 빨랐고, 용어가 낯설어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간 알고 있던 뇌의 정보 처리보다 훨씬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접했다. 신경과학자가 한 걸음 한 걸음씩 더 깊숙한 곳까지 뇌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확인했다.

최준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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