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어버드’ 감독 페터 르반느. ⓒphoto kroonika.delfi.ee
영화 ‘파이어버드’ 감독 페터 르반느. ⓒphoto kroonika.delfi.ee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작 영화 ‘파이어버드(Firebird)’는 냉전시대인 1970년대 에스토니아에 주둔한 소련 공군기지에 배치된 사병 세르게이와 전투기 조종사 로만 간의 위험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파이어버드’에서 세르게이로 나온 영국 배우 톰 프라이어(30)와 이 영화로 데뷔한 에스토니아 태생의 페터 르반느(48) 감독을 공동으로 인터뷰했다. ‘파이어버드’는 스릴러 분위기를 지닌 금지된 사랑 드라마로 두 사람은 영화의 각본을 함께 쓰고 제작도 함께했다. 두 사람은 영화 선전차 들른 LA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모두 침착하고 차분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배우 톰 프라이어 ⓒphoto fmovies.cab
배우 톰 프라이어 ⓒphoto fmovies.cab

- 페터, 당신은 하버드대에서 경제를 공부했는데 그것이 첫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이라도 되었는가.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의 스케줄을 짜고 제작비를 계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난 하버드대에서 시각예술도 공부했다. 그것이 내 첫 영화를 만드는 데 여러 면에서 기여를 했다.”

- 톰, 당신은 영화의 실제 인물인 세르게이를 만났는데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가. “모스크바에서 그를 만난 것은 큰 선물이요 명예였다. 그러나 다소 압력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사랑과 정열로 가득 찬 사람으로 내게 정치가 아니라 사랑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영화가 정치적 색채를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당부에 따라 로만에 의해 참사랑을 깨닫는 세르게이를 정열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그는 매우 관대한 사람이었다. 용감하고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그는 이런 사랑의 메시지를 영화에 담아 달라고 부탁했다.”

- 이 영화를 미 서부의 두 카우보이의 사랑을 그린 ‘브로크백 마운틴’과 비교하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둘 다 금지된 사랑 얘기라는 점에서 그럴 만하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를 흥분시킨 것은 어떻게 냉전의 기운이 고조된 1970년대 소련의 공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소련이 점령한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동성애자여서 그 점이 더욱 궁금했다. 그래서 영화를 위해 여러 면으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로부터 에스토니아 군에서도 동료 군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번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르게이와 로만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지된 사랑을 한다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얘기다.”(페터)

- 톰, 동성애자가 아닌 당신이 동성애자 역을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런 일방적인 고정관념을 싫어한다. 반드시 배우의 성적 기호에 따라 역을 맡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일은 역차별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동성애자 배우는 이성애자 역을 할 수가 없다는 이치나 마찬가지다. 살인자 역을 진짜 살인자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배우로서 늘 진실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느 역이든지 그것이 진실을 추구할 수 없는 역이라면 난 스스로 그것을 포기한다.”

- 톰, 영화의 각본을 페터와 함께 쓴 동기가 무엇인가. “지난 2014년 한 제작자가 런던에서 나를 페터에게 소개했을 때 페터는 영화의 각본 초본을 완성했을 때였다. 나는 늘 군부대 얘기를 좋아했는데 페터의 글을 읽고 큰 호기심을 느꼈다. 드라마학교를 나온 나는 원래 배우보다는 작가가 될 생각이었다. 페터를 만났을 때 글을 쓰고 있던 나는 그의 글을 읽고 우정이 애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겪은 두 사람의 얘기에 동참하기로 했다. 요즘과 달리 자신들의 진실에 대해 아무 표현도 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사랑 얘기에 큰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를 믿고 함께 글을 쓰게 해준 페터에게 감사할 뿐이다.”

영화 ‘파이어버드’의 한 장면.
영화 ‘파이어버드’의 한 장면.

- 영화는 섹스보다 감정에 중점을 두었는데 의도적이었나. “우린 언제나 이 영화를 사랑에 관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감정 위주가 된 것은 의도적이라고 하겠다. 두 사람 간의 정열적인 성애 장면을 찍을 때도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육체의 결합이 아닌 영혼의 결합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평범치 않은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다. 영화를 통해 사랑의 결합이라는 보편적인 얘기를 들려주려고 했다.”(톰)

- 영화를 만들면서 놀라기라도 한 점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냉전시대에도 이런 동성애 관계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 영화를 러시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하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 얘기가 그들 역사의 한 부분이며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멸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모스크바영화제에 출품했는데 첫 시사회 후 두 번째 상영은 표도 못 팔고 관객 초대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내게 특히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의 여름 별장이 소련 공군기지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트기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페터)

- 에스토니아에서 동성애자로 성장한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 “소년으로서 남자들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완전히 옳지 못하며 비정상이라고 느꼈다. 당시는 이런 문제를 그 누구와도 얘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인 26세 때 가족에게 처음으로 밝혔다. 나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오랫동안 믿지 않으며 분노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내 성적 기호를 수용했지만 그 후에도 나를 치료하려고 했다. 그것이 몹시 힘들었고 나를 슬프게 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고, 실제의 자신이 되는 것을 거부당하며, 또 이로 인해 핍박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플 뿐이다. 이 영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많은 연민의 감정을 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람들이 동성애 문제에 대해 다시 깨달을 수 있는 작은 불빛이 되기를 바란다.”(페터)

-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학대와 차별이 심한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를 모스크바에서 찍을 때 동성애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면 동참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진보적인 나라들과는 달리 러시아에서는 동성애자들이 공격을 당해도 보호해줄 장치가 없다. 과감히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없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세르게이가 사랑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세르게이가 자신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진실을 밝히라고 허락하는 것이다. 수천 년간 공포 속에서 고정관념화해온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그들에 대해 보다 관대하고 따스한 마음을 품게 되기를 원한다.”(톰)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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