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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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펠레’(Pelle the Conqueror·1987)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덴마크 감독 빌레 아우구스트(73)를 영상으로 인터뷰했다. 아우구스트는 최신작 ‘더 팩트(The Pact)’를 소개하기 위해 현재 차기 작품을 찍고 있는 덴마크의 한 작은 섬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더 팩트’는 노년기에 접어든 덴마크의 저명한 여류작가 카렌 블릭센(필명 이삭 디네센)과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시인 토르킬드 비욘비그와의 애증관계를 아름답고 깊이 있게 그린 영화다. 실존인물인 작가 카렌 블릭센의 얘기는 그녀의 아프리카에서의 삶과 사랑을 그린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1985)로 잘 알려져 있다. 시드니 폴락이 블릭센의 동명 전기를 바탕으로 만든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귀족 부인인 블릭센으로는 메릴 스트립이,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냥꾼 데니스로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탔다. 품위 있는 노신사의 모습을 한 아우구스트는 질문에 신중하고 자상하게 대답했다.

- 카렌 블릭센의 어떤 점을 알려주고 싶어 ‘더 팩트’라는 영화를 만들었는가. “나는 언제나 카렌 블릭센의 소설들과 함께 비범한 인간인 그녀를 사랑했다. 물론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의해서도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 젊은 시인이 쓴 전기 ‘더 팩트’를 읽고 단번에 반했다. 책에는 왜 블릭센이 아프리카에 갔으며, 또 그녀가 매독에 걸려 다른 사람들과 육체적 접촉을 못 하게 된 후 악마와 계약을 맺은 얘기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블릭센은 앞으로 자기가 겪는 모든 일들을 자기 소설의 일부로 삼기로 악마와 계약을 하고 덴마크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얘기들을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을 허구와 마구 뒤섞는다. 어떤 때는 현실을 지나치게 조작해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나는 오직 자기 얘기와 악마만을 곁에 둔 고독한 여인으로서의 카렌 블릭센을 보여주고 싶었다.”

- 메릴 스트립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표현한 카렌 블릭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릴 스트립은 블릭센을 참으로 아름답고 깊이 있게 묘사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의 얘기다. 영화는 블릭센과 데니스의 얘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나는 메릴 스트립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의 블릭센보다 늙고 달라진 카렌의 얘기를 담은 이 영화를 속히 보게 되기를 학수고대한다.”

- 카렌 블릭센은 토르킬드 비욘비그의 창조적 영감을 자극한 스승이자 지도자인데 당신은 누구에 의해 창조적 영감을 전수받았는가. “한 두어 명이 있지만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사람은 스웨덴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다. 그의 삶을 다룬 영화 ‘베스트 인텐션’을 감독할 때 그와 만났는데 그는 영화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믿지 못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가 죽기까지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했었다.”

‘더 팩트’의 한 장면.
‘더 팩트’의 한 장면.

- 영화에서 블릭센은 비욘비그에게 창조적 목적을 위해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하는데 유부남에게 이런 조언을 해도 좋다고 보나. “블릭센이 그런 말을 한 것은 매독으로 인해 자신이 그 누구와도 육체적 관계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비욘비그에게 창조적 명분하에 사랑이 아니라 외도를 해보라는 조언을 한 것인데 후에 비욘비그가 외도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면 그것으로부터 성적 만족을 취하고자 했다.”

- 덴마크의 여왕 마그레테 2세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고 들었다. “여왕과 함께 카렌 블릭센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에렌가르드’를 지금 몇 년째 준비 중이다. 여왕은 다 알다시피 저명한 화가이자 의상 디자이너이다. 영화에서도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다. 여왕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미술에 관심이 깊은 유일한 왕족일 것이다. 여왕은 문화와 예술을 매우 사랑한다. 이렇게 저명한 화가이자 왕족인 사람과 함께 일함으로써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믿는다. 내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가려고 한다.”

- 여왕이나 카렌 블릭센이나 둘 다 위대한 여인인데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둘 다 위대한 예술가요 개성이 강한 여인이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매우 강렬한 창조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문화에 그렇게 관심이 깊은 사람을 여왕으로 둔 것은 그저 경탄할 일일 뿐이다.”

- ‘더 팩트’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 이런 예술적인 영화는 미국에서 배급사를 찾기 힘든가. “영화가 완성된 지 얼마 안 돼 지금 제작자들이 미국의 배급사를 찾는 중이다. 내 영화 중 어떤 것은 미국에서 상영됐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의 미국 배급사를 찾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 왜 작가로서의 카렌 블릭센을 좋아하는가. “그녀는 인간으로서도 대단한 사람일 뿐 아니라 뛰어난 얘기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된 까닭은 이 영화에서 비욘비그가 그녀에게 매료된 까닭이 대변해주고 있다. 블릭센이 아프리카에서 귀국한 1950년대는 전쟁 등으로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기가 힘들었을 때였다. 그런 때에 아프리카로부터 돌아온 블릭센을 만난 비욘비그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매우 이국적이요 모든 것이 색달랐다. 그녀는 그들에겐 세계를 대표하는 월드스타였다. 그녀는 마법적이요 모든 것이 너무나 특별해 사람들이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그녀는 위대한 작가였기 때문이다.”

- 이 영화는 예술적 위대성과 행복이라는 두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 둘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가. “나는 우리가 창조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뜨거운 정열에서도 그것의 의미를 찾고 있다. 즉 사랑과 창조 그 둘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이 둘을 잘 조화시키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영화에서 비욘비그는 가정과 예술 두 가지를 놓고 어느 것을 선택할지 몰라 갈등하는 반면 가족이 없는 블릭센은 비욘비그보다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직업과 개인적 삶 간의 조화를 찾는 일은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이다. 나도 젊었을 때는 이 둘의 균형을 찾기가 힘들어 애를 썼지만 이제는 창조와 개인적 삶 간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만든 작품들 중에 특별히 자랑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또 후회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까지 21편의 영화와 많은 TV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중 어느 것은 성공했고 또 어느 것은 실패했다. 그러나 성패 여부에 관계없이 이들은 모두 내 자식들이다. 그래서 난 그들을 모두 지켜주고 있다. 작품을 만들면서 성패 여부를 예견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실패의 경험을 잘 깨달아 다시 같은 실패는 하지 않는 데 능하다.”

- 만약 카렌 블릭센이 매독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녀와 비욘비그가 성적관계를 가졌으리라고 생각하는가. “가능한 일이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해 카렌 역을 할 배우를 찾았다. 그래서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도 성적 매력과 선정성을 지닌 배우인 비르테 노이만(74)을 고른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의 얘기로 다루려고 했다. 그래서 관객들이 한편으로는 둘이 성적관계를 맺길 바라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비욘비그가 아내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드라마이지 않겠는가.”

- 카렌 블릭센이 어떻게 해서 매독에 걸렸는지 아나.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남편으로부터 얻었다고 한다.”

- 위대한 예술가가 되려면 가정과 같은, 때로는 따분한 환경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젊었을 때 그 어느 한곳에서 평화를 찾지 못하고 늘 이동하고 있다고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이 있어도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블릭센은 가족은 모든 예술을 파괴한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래서 비욘비그도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가족으로부터 떠나기를 바란 것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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