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영화감독인 카롤린 푸레스트(46)를 영상 인터뷰했다. 작가이기도 한 푸레스트는 언론의 자유와 세속주의의 옹호론자로 유명하다. 그는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론자여서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20여편의 기록영화를 만든 푸레스트는 자신이 감독한 첫 극영화 ‘무장한 자매들(Sisters in Arms)’을 소개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이 영화는 이슬람국가(ISIS)에 저항하는 쿠르드족 여전사들의 활동을 그린 액션영화다. 야무지게 생긴 푸레스트는 질문에 정열적으로 대답했다.

- 언제 당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발견했는가.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동성애자임을 깨닫고 나 같은 페미니스트와 동성애자들을 싫어하는 사람과 싸우기로 작심했다. 극단주의를 파헤치는 전문기자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그러다 생명의 위협을 받아 경찰의 보호를 받기도 했다. 내가 동성애자여서 네오-나치들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내 목표는 평등과 다양성을 창조적인 길로 인도하는 것으로 이를 성취하기 위해 영화감독도 됐다. 어렸을 때 두 가지의 꿈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는 먼저 꿈을 이루었고 나머지 꿈은 이제 이루어 나가고 있다. ‘무장한 자매들’은 페미니스트 전쟁액션영화다.”

- 이 영화는 여러 나라에서 상영됐지만 미국에서는 아직 상영되지 않았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내 영화는 프랑스와 일본,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이라크와 레바논 등지에서는 상영됐지만 아직 미국에서는 배급사를 못 찾고 있다. 지금 배급사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의 관객들이 보면 큰 감동을 느낄 것으로 확신한다. 이슬람국가에 의해 납치돼 겁탈을 당하고 노예가 됐다가 탈출한 뒤 복수하기 위해 이슬람국가에 저항하는 쿠르드족 여전사들에게 합류한 나디아 무라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다. 무라드는 이라크 등지에 사는 소수계 야지디족으로 실제 노벨평화상을 탔다. 나는 지금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이라크를 방문해 이 영화를 2000여명의 쿠르드족 관객들에게 소개했을 때 느낀 진한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 얼마 전 텍사스주 법원이 내린 극단적인 반(反)임신중절법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기독교적 극단주의와 임신중절 반대운동에 관심이 있어 그에 관한 책도 썼다. 미국 여성들이 그 판결로 자신의 선택권을 잃을 것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다. 미국의 종교적 우파는 오래전부터 임신중절에 대한 반대운동을 펴왔는데 그런 움직임은 비단 미국뿐 아니라 점차 세계화하고 있다. 극단주의는 이슬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밖의 여러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여성 영화인으로서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여성 예술인에 대해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그곳 사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아직 그곳을 탈출해야 할 여성 예술인과 영화인, 그리고 저널리스트들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 이제 군사행동으로 그들을 돕기에는 늦었으니 전 세계 문화계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탈레반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서방세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하고 있다. 탈레반은 평등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선전에 불과하다. 이미 많은 여성이 극심한 차별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절대로 그들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영화 ‘무장한 자매들’ 포스터
영화 ‘무장한 자매들’ 포스터

- 앞으로 만들 영화를 구상 중인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번 영화처럼 액션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액션영화를 만드는 여성 감독이 많지 않은데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액션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두 번째는 TV 시리즈다. 시리즈는 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인물의 성격도 영화보다 깊숙이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 둘 중에 어느 것을 먼저 할까 생각 중인데 문제는 제작비 조달이다.”

-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닫고 목소리를 발견하는 데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주의 사상가들이다. 그들은 인간이 단순한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과감히 자신의 복합성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살만 루슈디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루슈디는 내 책을 칭찬해주기도 했다. 영화인으로는 리들리 스콧과 액션영화를 잘 만드는 캐서린 비글로이다. 그들은 모두 강렬한 감정의 소유자들이다. 나는 비글로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영화인들과의 경험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책을 20여권이나 썼다고 하는데 다방면으로 활동하면서 언제 책을 쓸 시간이 있는가. “아침이다. 나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10시까지 글을 쓴다. 11시가 되면 쓰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래서 아침시간을 책을 쓰기 위해 늘 저장해두고 있다. 의문사항이 있으면 나의 훌륭한 반려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 어떤 책들이 당신에게 짙은 영향을 주었는가. “시도니 콜레트를 비롯한 프랑스 문학과 고전문학들이다.”

- TV작품 중 인상 깊게 본 것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시리즈 ‘핸드메이드 테일’이다. 여성에 대한 위선적인 사고방식과 기독교적 극단주의에 관한 내용인데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연상케 한다. 마치 지금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 같다.”

- 당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히자 어머니가 크게 반발했다고 들었다. 지금 둘의 관계는 어떤가. “지금 우리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여년 전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어머니는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참 후 어머니와 새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전까지 나는 수년간 어머니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나를 서서히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이 나를 존경하게 하려면 우선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도 알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이 상처를 주는 말을 할지라도 참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다. 나는 성적 소수계로 태어난 것을 특혜라 생각한다.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존경이나 동등이라는 것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를 이루고자 한다면 유머가 있어야 한다. 유머는 투쟁에 있어 산소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코미디 각본을 써놓았는데 막상 만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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