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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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프 파인스(59)는 날카로운 눈매와 달리 수줍은 듯 엷은 미소를 지어가며 질문에 자상히 대답했다. 그는 인기 스파이 액션영화 시리즈 ‘킹스맨: 시크릿 서비스’와 ‘킹스맨: 골든 서클’의 전편 격인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에서 세상을 말아먹으려는 구시대 독재자들과 악인들을 상대로 종횡무진 액션을 구사하는 스파이 옥스퍼드 공작으로 나왔다. 킹스맨 3편에 해당하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최근 한국에서도 개봉됐다. 그는 007 시리즈에서는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는 감독과 제작자이기도 한데 영국인 배우답게 셰익스피어에 능통하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린 ‘햄릿’ 역으로 토니상을 타기도 했다.

- ‘킹스맨’ 최근작에서 당신은 아들에게 신사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당신이 정의하는 신사란 무엇인가. 또 당신이 모범으로 생각하는 신사는 누구인가. “옳고 그른 것의 개념을 가르쳐주려고 한 사람은 내 아버지였다. 올바른 예절이란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돌보는 일이다. 또 결코 자기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배려와 친절과 함께 점잖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의 모범적인 신사는 내 아버지다. 이번 영화 속에서 신사로 나오는 나는 평화주의자이지만 결코 불의에 대항해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 영화에 데뷔한 지 올해로 30년이 되는데 자신의 옛 모습을 볼 때 느낌이 어떤가. “난 늙는다는 것에 대해 괘념치 않는다. 나이 먹는 것이 편하다. 물론 배우란 젊었을 때는 외모와 자기 모습이 어떻게 찍히느냐는 것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생기는 주름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가끔 젊었을 때의 나를 돌아보면 ‘아이고 머니나’ 하면서 옛날의 내가 마치 다른 우주에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 할리우드에서 유럽 배우의 위치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할리우드에서 유럽 배우들은 늘 특별한 부류로 구분돼 성격배우나 주인공의 친구 또는 악인 등 색다른 역만 주어졌다. 특히 영국 배우들은 보통 악인이 아니면 친근한 사람들 역이 단골이었다. 유럽 배우들 중에서 멋진 배우는 악역을, 그렇지 않은 배우는 좋은 사람 역을 맡는 것이 능사였다. 과연 이런 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할리우드의 영화란 과거 스튜디오 시대에 나온 영화들부터 현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창의적인 독립영화들을 망라한다. 요즘 LA에서는 독창적인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긴 하지만 영화사 임원들은 모험하기를 결코 거부한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 당신은 러시아 문화와 문학에 열정적이라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소년 시절부터 배우 초창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러시아 문학과 문화를 사랑했었다. 난 안톤 체호프를 현대의 가장 위대한 인본주의자 중 하나라고 여긴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탁월하고 방대하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투르게네프 등은 모두 인간 조건의 탐구자들이다. 특별히 러시아 문학에 담긴 인본주의를 사랑한다. 1980년대부터 러시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물론 요즘 푸틴의 러시아 정부에 대해서는 염려할 것이 많긴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삶이 감동적이고 자극적이며 충동적인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생각하는 법과 먹는 법, 그리고 축하하는 법 등을 배운 바 있다. 나는 러시아 사람들을 내 친구로 여기며 그들과의 우정과 러시아 문화를 통해 내 삶이 풍요로워졌다. 그들은 내게 살아 있다는 의미를 주고 있다.”

-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본드의 상관인 M으로 계속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당신을 이 영화로 이끄는가.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본드와 함께 성장했다. 영화뿐 아니라 관련 책들도 10대 때 통독했다. 그런데 난 늘 본드 영화가 좀 더 책에 충실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영화들을 매우 즐겼다. 현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가 역에 무게와 복잡성을 모두 부여한 기차게 멋진 본드라고 생각한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본드 역을 믿을 수 있게 해낸 사람이다. 난 샘 멘데스가 감독한 지난 두 편의 영화에서 M 역을 맡은 것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는 강한 힘과 정열을 지녔다. 멘데스가 나를 M 역에 초청했다. 그래서 내가 그 역을 맡기 전에 M으로 나온 주디 덴치가 약간 뿔이 난 것으로 생각한다. 최신 본드 영화 ‘노 타임 투 다이’는 강한 타격의 힘과 감정적 강렬함을 지닌 영화다. 대니얼의 마지막 본드 역으로 알고 있는데 멋진 작별이 될 것이다.”

- ‘킹스맨’ 시리즈의 스파이는 멋지게 옷을 입는데 당신의 패션 감각은 어떤지. “과거에는 신사복과 기타 옷들을 골라 사 입었지만 이젠 그런 때가 지났다.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보통 옷들에 만족한다. 이 영화에선 의상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의상은 뛰어난 디자이너인 미셸 클랩튼이 만들었다. 그와 함께 구시대 의상에 백과사전식 지식을 지닌 존 브라이튼이 합류했다. 존은 의상으로 배우들의 모습을 다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의상은 영화의 이야기 그 자체라고 해도 되겠다.”

- 이 영화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는가. 액션신을 본인이 직접 했는가. “난 ‘킹스맨’ 시리즈를 즐겼기 때문에 처음에 역이 주어졌을 때 다소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각본을 읽고 나서 매튜 번 감독이 시대를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비롯해 과거로 돌려 예전 시리즈와 달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가 이 같은 역사적 얘기를 당초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유머와 다소 황당무계한 독창성, 그리고 믿을 수는 없지만 재미있는 액션과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의 다른 영화들을 보고 나서 나는 그가 자기가 원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그를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액션이 있는 내 역이 극적인 것이어서 좋았다. 난 액션을 즐겼다. 격투 장면은 스턴트 팀으로부터 훈련을 받았다. 그 밖에도 암벽등반 등 여러 가지 액션을 배웠는데 재미있었다. 나를 진심으로 이 역으로 잡아당긴 것은 그것이 감정적·심리적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액션도 있고 이국적인 곳에도 가고 유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내가 역에 이끌린 까닭은 그것이 극적 영역을 지녔기 때문이다.”

- 당신의 영어 이름 ‘Ralph’를 사람들이 레이프가 아니라 랄프로 잘못 발음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고쳐주는가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는가. “이젠 지쳐서 고쳐주는 것을 포기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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