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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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질환이라면 주로 동맥질환을 떠올린다. 실제로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 협심증 등 사망률이 높은 혈관질환은 동맥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나 정맥질환도 동맥질환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

우리 몸의 혈액은 심장의 강력한 펌프질에 의해 동맥을 통해 온몸에 전달된다. 혈액은 모세혈관을 거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수거해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되돌아온다. 정맥질환은 정맥에 혈전이 끼거나(정맥혈전증) 혈류가 원활하지 않을 때(정맥류) 발생한다.

대표적인 정맥질환은 심부정맥혈전증과 하지정맥류다. 심부정맥혈전증은 몸속의 깊은 정맥에 혈전이 쌓이는 질환으로, 혈전이 떨어져 나가 폐동맥을 막으면 급사할 수도 있는 위험한 질환이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지렁이처럼 혈관이 두드러지는 질환으로, 심하면 피부 괴사가 일어날 수 있다.

정맥질환은 혈관외과 의사들이 전문적으로 치료한다. 정맥질환을 비롯한 혈관질환 분야에서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경희의료원 이식혈관외과 안형준 교수를 인터뷰했다. 안 교수는 혈관질환과 장기이식의 대가인 전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김유선 교수에게 혈관수술과 장기이식술을 배운 의사로, 정맥질환은 물론 동맥류 등 동맥질환 치료에도 많은 경험을 쌓았으며 경희의료원 장기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다.

- 심부정맥혈전증은 익숙한 병명은 아닌데 환자수는 얼마나 되나.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환자들이 많아서 유병률과 발병률을 알기가 어렵다. 일반인에서 발병률은 인구 10만명당 69~139명으로 추정되며, 입원 환자의 발병률은 350명으로 높다.”

- 추정 숫자를 국내 인구에 대비하면 2만~7만명으로 적잖은 규모인데. “환자수에 대한 정확한 국내 데이터가 없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심부정맥혈전증 환자가 많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지금은 진단을 못해서일 뿐이며 환자수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장기간 입원하는 암환자, 고령인구가 증가하면 환자도 늘어나는 구조다.”

- 생명을 위협하는 폐색전증 환자도 많은가. “혈전이 떨어져 나가 폐동맥으로 가면 폐색전증(폐의 혈관이 막히는 증상)이 발생해서 위험하다. 유럽에서는 50만명 이상, 미국에서는 30만명 이상이 정맥혈전으로 매년 사망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300만명 이상이 정맥혈전과 관련되어 생명을 잃는다. 우리나라도 혈관질환의 발생 형태가 서구화되고 있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본다.”

- 심부정맥혈전증은 어떤 부위의 정맥에서 많이 발생하나. “대정맥이 배꼽에서 장골정맥으로 갈라져 좌우측 다리로 내려오는데, 허벅지, 종아리 근육 사이 깊숙이 자리한 정맥과 골반에 위치한 장골정맥에 주로 발생한다. 대정맥에 혈전이 있어도 심부정맥혈전증이라고 하지만, 발생하는 케이스가 적다.”

-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정맥 혈류가 정체하거나 선천성 또는 후천성으로 혈액 응고가 필요 이상으로 잘되는 경우다. 후천적 요인으로는 고령, 수술, 외상, 악성질환, 임신, 경구 피임약, 호르몬제 등이 있다. 정맥 손상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 팔이나 복부, 뇌에는 발생하지 않나. “어깨 근육에 눌려 팔에도 생길 수 있고, 장기 입원자인 경우는 수액이 연결된 주삿바늘이 들어가 있는 팔 정맥 깊숙한 곳에도 발생할 수 있지만 일반적이지 않다. 복부나 뇌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역시 흔하지 않다. 혈액응고 인자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복부나 뇌에 발생할 수 있다. ”

안 교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코로나19로 인해 심부정맥혈전증 환자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심부정맥혈전증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가, 백신 후유증 때문인가. “두 가지 모두 작용하는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론 백신 자체가 혈전을 증가시킨다. 미국 CDC(질병통제센터) 가이드라인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에게는 혈액이 엉키지 않게 항응고제를 사용하라고 나와 있다. 사스 때도 그랬다.”

- 코로나19 백신으로 인한 심부정맥혈전증은 어떤 특징이 있나. “일반적인 정맥혈전증도 발생시키지만 특히 장간막 정맥(소장이나 대장에서 나오는 정맥)이나 뇌 정맥에도 혈전증을 일으킨다. 발생하면 시간을 다투는 응급상황으로, 막힌 장기가 썩을 수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이런 환자가 1년에 1~2명 정도로 매우 드물어서 발병하면 관련 학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코로나 백신 접종 후 해외에서 혈전 발생에 대한 보고가 많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적잖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도 다른 병력이 없이 진단 전에 백신을 맞은 환자들을 꽤 만났다.”

- 심부정맥혈전증은 어떻게 치료하나. “심부정맥혈전증의 치료 목적은 폐색전증과 만성정맥부전을 방지하고 재발을 막는 것이다. 치료 방법은 하대정맥 필터삽입술, 항응고제 투여, 혈전용해술, 수술적 혈전제거술이 있다. 하대정맥 필터삽입술은 심장 아래쪽의 대정맥인 하대정맥에 우산 모양의 필터를 삽입해 혈전이 심장과 폐동맥으로 가는 것을 막는다. 항응고제로는 최근 출시된 경구용 노악(NOAC) 등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 심부정맥혈전증의 주요 증상은 무엇이며, 어떤 경우에 시급히 병원에 가야 하나. “갑작스럽게 다리가 부어, 누워서 쉬어도 부종이 가라앉지 않거나 점점 악화되면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 정맥혈전의 진단에는 초음파 검사가 매우 중요하며, 전문성을 가진 혈관검사실에서 혈관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 혈전을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 근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항응고제를 중단하면 재발을 잘하기 때문에 약을 얼마 동안 복용할지, 복용을 중단해도 될지를 가려내는 것도 중요하다.”

심부정맥혈전증은 용어가 어렵고 생소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질환이다. 장거리 비행에서 장시간 자리에 앉아 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도 심부정맥혈전증이다. 안 교수는 “장시간 비행은 심부정맥혈전증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이라며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로 장거리 해외여행이 증가하면 심부정맥혈전증 환자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장시간 비행할 때는 자리에서 자주 일어나서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며 “이미 심부정맥혈전증을 겪은 분은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고 1시간마다 일어나서 걸어다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리 정맥의 혈액은 종아리 근육을 사용할 때 근육이 쥐어짜는 힘으로 심장으로 돌아가면서 혈류 순환이 일어난다. 오래 앉아 있으면 이런 혈류 순환에 장애가 발생하므로 제자리걸음 등을 통해 종아리 근육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거리 여행 후 며칠이 지나도 다리의 부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

- 심부정맥혈전증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고령 환자, 악성종양 환자, 뇌수술이나 정형외과적 수술 등을 받은 환자, 혈액응고 인자에 이상이 있는 경우에 잘 발생한다. 심부정맥혈전증은 기본적으로 항응고제를 사용해 치료하지만, 피를 계속 묽게 하면 장출혈, 뇌출혈 등 심각한 출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평생 쓸 수는 없다. 그래서 대부분 3~6개월 동안 사용하다가 중단해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심부정맥혈전증으로 항응고제를 사용하다가 중단한 경우 5년 후 약 30%에서 재발하기 때문에 한 번 발생했던 분이 고위험군이다. 암환자 등 장기 입원 환자도 조심해야 한다.”

- 동맥혈전의 위험인자인 높은 콜레스테롤과 혈당은 정맥혈전에는 영향을 주지 않나. “직접적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동맥혈전은 고콜레스테롤과 고혈당이 경화반을 만들고 이것이 터져서 혈전이 발생하지만 정맥혈전은 그런 과정 없이 생긴다. 코피가 멈춰 피가 엉키는 것과 비슷하다. 혈액이 잘 응고되는 사람이, 콜레스테롤·흡연 등으로 혈관 내피의 손상을 입은 상태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 조건을 만났을 때 정맥혈전이 생기는 것이다.”

또 다른 대표적 정맥질환인 하지정맥류는 다리의 정맥이 부풀어오르는 질환으로 발생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하지정맥류 환자는 2017년 24만여명에서 2019년 31만3000여명, 2021년 37만7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여성 환자 수가 남성 환자 수에 비해 약 2.5배 많다. 안 교수는 “증가 원인은 다양하지만 여성 환자 증가폭이 더 가파르다”며 “이는 여성호르몬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은 초경과 폐경, 그리고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호르몬 변화로 하지정맥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 하지정맥류는 왜 발생하나. “정맥은 동맥과 달리 압력이 낮기 때문에, 팔다리 근육이 수축할 때 생기는 압력과 정맥 내 판막의 작용으로 심장까지 혈액을 운반한다. 판막은 혈액이 반대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판막의 기능이 원활치 않아, 정맥이 역류해서 혈액이 고여 정맥압이 상승하면 정맥이 늘어나서 하지정맥류가 발생한다.”

- 하지정맥류는 어떤 증상을 보이나. “정맥 혈류가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해 정맥 고혈압이 만성적으로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정맥혈이 많이 고여 다리에 무거움과 통증, 경련, 부종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 하지정맥류는 외관상 보기가 좋지 않은 것 외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나. “드물긴 하지만 하지정맥류로 인해 정맥혈이 오래 정체되어 만들어진 혈전이 심부정맥을 거쳐 폐로 가서 응급상황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피부 염증이 반복되고 피부가 검게 변하게나 궤양이 생길 수 있다. 심해져 뼈까지 노출되면 매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런 환자의 상당수는 피부질환인 줄 알고 몇 년간 피부과 진료를 받다가 병을 키워서 온다.”

- 하지정맥류의 주요 치료법인 압박스타킹요법, 약물경화요법, 레이저요법, 수술요법은 각각 어떤 경우에 선택하나. “역류 없이 혈관만 늘어나 있으면 경화요법이나 압박요법을 쓴다. 역류가 있거나 혈관이 심하게 튀어나오면 역류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다. 수술은 절개법과 비절개법이 있다. 절개법은 수술 도구로 역류 혈관을 뽑아내는 것이다. 비절개법은 혈관 안에 레이저나 고주파를 쏴서 혈관벽에 상처를 입히는 치료인데, 2~3개월이 지나면 혈관이 말라비틀어져 없어진다. 최근에는 인체용 순간접착제를 사용해 혈관을 막기도 한다.”

안 교수에 따르면 정맥판막은 정맥혈류를 심장으로 돌아가게 하고 다리로 혈액이 역류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이 판막이 고장이 나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혈액이 아래로 쏠리면서 정맥 혈압이 올라간다. 그러면 정맥고혈압이 발생하여 피부 주변의 압력이 높아져 정맥의 피가 심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된다. 높은 압력으로 인해 조직이 팽팽해져 모세혈관으로 피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피부에 염증이 반복해서 생기고 심하면 피부가 괴사하기도 한다.

- 압박스타킹은 어떤 원리인가. “압력을 20~30㎜Hg 이상으로 높여주면 피부나 근육 사이로 정맥 혈액이 역류하는 것을 줄여준다. 이렇게 하면 혈류 정체가 완화되어 혈액순환도 좋아진다.”

- 압박스타킹의 치료 효과는. “압박스타킹 치료로 정맥성 궤양이 6개월 만에 40~50%가 치유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압박스타킹을 착용하지 않으면 궤양의 100%가 3년 안에 재발하지만 압박스타킹을 제대로 착용하면 5년 안에 29%만 재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타킹 착용에 환자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착용 시간을 점차 늘리거나, 압력을 초기에는 20~30㎜Hg로 낮게 시작해서 점차 높이기도 한다.”

- 요즘 특히 주목받는 치료 기술이 있다면. “레이저나 고주파를 이용해 정맥을 폐쇄하거나 인체용 순간접착제 등을 이용하여 병든 혈관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 ‘정맥류가 없는 하지정맥류’는 무엇이며 하지정맥류와 어떤 차이가 있나. “정맥 판막이 고장이 나서 정맥 역류만 있는 경우로, 증상이 없고 육안으로 돌출된 정맥이 없는 하지정맥류를 말한다. 임상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수술적 치료는 거의 필요없다.”

- 여성호르몬이 어떻게 하지정맥류에 영향을 주나.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은 정맥의 벽을 늘어나게 한다. 여성 하지정맥류는 보라색 거미줄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여성은 월경 주기에 따라 보라색이 심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혈관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 하지정맥류를 막는 생활요법은 무엇인가. “꽉 끼는 바지를 입지 않는 게 좋다. 오래 서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압박스타킹을 착용하길 권한다. 또 다리근육을 키워주면 정맥의 혈액이 위로 원활히 올라가니까 팁토(tiptoe) 운동(서서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반복하는 동작)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직립을 하기 때문에 예방 효과가 확실하지는 않다.”

안 교수는 정맥질환은 물론 뇌와 심장혈관 외의 모든 혈관질환을 치료한다. 안 교수에게 혈관수술과 장기이식수술을 전수해준 김유선 전 교수와의 인연은 특이하다. 안 교수는 경희대 의대 출신으로 김 전 교수와 인연이 없었지만 군의관 시절 김 전 교수에게 혈관이식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김 전 교수는 이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여 안 교수를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로 채용해 혈관이식술을 전수했다.

안 교수는 하지정맥류, 심부정맥혈전증 등 정맥질환은 물론 동맥류와 혈관폐색에 대한 스텐트 시술뿐만 아니라 혈관 우회로수술까지 직접 한다. 말기신부전 환자의 투석용 혈관수술과 신장이식수술도 많이 집도한다. 또한 당뇨하지허혈(당뇨로 인해 다리와 발 혈관에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로 인해 다리 절단이 필요한 환자에게 하지우회로술을 시행해 다리 절단을 방지한 케이스가 많다. 하지우회로술은 환자의 정맥 혈관 일부를 잘라 동맥에 이식함으로써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해 다리와 발이 썩는 것을 막는 치료법이다. 안 교수는 당뇨발 치료를 위한 대형 국책과제도 수행 중이다.

- 국책과제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하지 중증허혈을 동반한 당뇨발 환자에게 줄기세포 치료가 어떤 효과를 보이는지 연구 중이다. 줄기세포로 신생혈관 형성을 유도하여 기존의 치료법으로 불가능한 당뇨발 환자를 치료해 절단을 예방하는 것이 연구 목적이다.”

- 정맥질환 환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정맥질환은 치료법 개발이 더뎠지만 최근에는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고 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치료법이 많이 업데이트됐다. 그래서 암환자나 장기 입원자들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재발을 잘하기 때문에 이미 경험한 분들은 재발하지 않도록 특히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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