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버스토리
[2491호] 2018.01.15

건희야, 내 친구라서 행복했다

중학교 동창이 병상의 이건희 회장에게 쓴 편지

조태훈  건국대 경영대 명예교수 johthegreat@gmail.com 

▲ 서울사대부고 2학년생들이 1959년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 첨성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끝이 이건희 학생이다. photo 조태훈
나는 1955년 중학교에 입학해 지금은 70대 중반인 노인이다. 일제강점기 때인 1943년에 태어나 어릴 때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로 출범하였으나 그 역사적인 순간에 대한 기억은 없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50년 동족상잔의 6·25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36년이란 긴 세월 동안 군국주의 일본의 수탈적 식민지배로 인해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전근대적 농경국가가 UN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다. 낙동강에서 압록강까지 밀고 당기는 과정에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초등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북한 인민군이나 중공군에 점령당하지 않았던 낙동강 이남, 즉 부산 인근의 한 줌의 땅에 살았던 나 같은 애들만이 초등학교를 중단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그나마 이 지방 애들도 학교를 군인부대에 내주고 산지사방에 흩어져 동사무소나 가건물에서 공부를 했다. 대부분의 내 또래 아이들은 피란길에 올라 목숨을 잃거나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하지 않았다면 천행(天幸)이요 축복으로 여겼던 때였다. 같은 학년에 나이가 5살이나 더 먹은 아이들이 수두룩했다.
   
   1961년 대학생이 되어서는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6·3항쟁을 주도했고 독재타파와 민주화를 견인한 주력이었다. 졸업 후에는 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하는 고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산업국가로 발전시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제 우리 세대는 OECD 멤버국가로 최첨단 디지털 문화를 일상화된 삶의 일부분으로 향유하는 새로운 시대변화에 낙오하지 않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한평생에 이렇게 많은 패러다임 전환적 시대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세대는 인류 역사상 거의 우리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공업지대로 개발되기 전의 울산 병영에서 태어난 촌놈이었으나 일찌감치 서울로 유학을 왔다. 나는 당시 특차 학교로 ‘천하 부중’이라고 명성이 높았던 서울사대부속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 서울 장충동 집에서 반려견과 함께한 중학생 이건희. photo 조선일보

   틈만 나면 일본 만화책 보던 소년
   
   그러던 2학년 초 어느날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다니다가 바다 건너 바로 왔다고 했다. 얼굴이 뽀얗고 유난히 눈이 크고 동그란 아이였다. 그 아이는 우리 반으로 와 바로 내 뒤에 앉았다.
   
   그 아이는 나와 같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쉬는 시간이나 틈만 나면 일본 만화책을 보는 점이 특이하였다. 삼성 이병철씨의 아들이라고 했다. 당시 우리는 삼성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던 시절이었다. 단지 ‘이병철’이란 이름은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였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도시락 반찬이 좋으면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었다. 도시락을 못 싸 가지고 오는 애들도 있는 시절이었다. 멸치조림, 계란말이, 소고기장조림 반찬은 귀했다. 전학 온 아이는 반찬이 좋았고, 우리와는 반찬을 매개로 쉽게 어울리게 되었다. 건희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은 장난기를 주체할 수 없는 개구쟁이일 수밖에 없었다. 건희는 특히 둘이 서서 겨루다가 한 팔로 상대방 목을 졸라 누르면서 항복을 받아내는 놀이를 좋아했다. 나와는 호적수였다. 서울사대부중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서울대 사범대학과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장충동 건희 집에 자주 놀러도 갔다. 처음 갔을 때 희한한 것을 보았다. 2층에 있는 건희 방으로 올라가기 위해 1층 복도를 지나가는데 거실 한가운데에 초록색 융단으로 윗부분 전체를 감싼 아주 큰 탁자 같은 게 놓여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도대체 저것이 무엇을 하는 책상이냐고 물었다. 아버님이 치시는 당구대라고 했다. 당구대로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
로그인
단일권 결제         기간별 결제
정기독자 확인요청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맨위로

2491호

2491호 표지

지난호보기 정기구독
유료안내 잡지구매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번찾기
호르반
삼성전자 갤럭시 s8
한국수력원자력
조선토크 브로슈어 보기

주간조선 영상 more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