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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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극이 위기입니다.”

신봉승(80) 작가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사극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사극은 당연히 ‘대하사극’이다. 그는 대하역사드라마 ‘조선왕조 500년’(1983년부터 7년9개월간 방영)의 극작가이자 역사소설가다.

그는 요즘 대하사극은 실종되고 이른바 ‘퓨전사극’이 유행하는 게 못마땅하다. “역사드라마라는 게 재미만 따지면 안 됩니다.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인간을 배우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 사극은 엉터리가 많아 위험하고 아슬아슬해서 못 보겠어요.”

그가 예로 든 장면은 종편에서 방영한 사극에서 딸이 마당의 나무 위에 앉아 있는데 아버지가 “어흠” 하고 헛기침을 해도 안 내려오는 장면이다. “요즘 세상에서도 부모가 이러면 자식이 얼른 내려와야 할 텐데 이 사극에서는 안 내려와요. 이런 오류가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쳐요.”

역사학자 뺨치게 공부했다

그는 고증을 몹시 중시한다. 그는 사극의 힘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팩트(fact·사실)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다. “연개소문이 외아들인데 형제가 있는 걸로 그려놨고 화가 신윤복은 여자라고 설정해 1년간 방송했잖아요.”

그는 국문과 출신이다. “(현역 시절) 고증 틀렸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역사학자 뺨치게 공부했습니다.” 어떻게 공부했냐 하면 이런 식이다. 1980년대 MBC에서 역사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방영할 때의 일이다.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을 쓰면서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일은 1866권·887책이나 되는 ‘조선왕조실록’을 정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때는 아직 국역(國譯)이 완결되지 않은 때라서 한문으로 된 원전을 읽어야 하는 고통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서(草書)로 된 문건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무릎에서 천자문을 배운 것이 네 살 때의 일이라고 집안의 어른들로부터 들은 일은 있지만, 그런 한문 지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어른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때로는 과일 상자를 들고, 때로는 술을 사들고, 또 어느 때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응석과 투정을 함께 부리고 다닌 것이 부지기수였어요. 그분들의 헌신적인 협조와 격려가 없었다면 터무니없는 드라마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신 작가는 이런 식으로 40년 넘게 역사를 공부하면서 내공을 쌓았고 이는 ‘조선왕조 500년’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1983년부터 1990년 12월까지 방영된 MBC 실록대하역사극 ‘조선왕조 500년’의 극본을 쓰면서 조선왕조실록의 최고 권위자로 올라섰다. ‘조선왕조 500년’의 TV드라마 방영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워 보인다.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 중심이었던 안방극장에 사극 붐을 일으켰다.

그의 고증은 이웃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의 다섯 번째 이야기로 1985년에 방영된 ‘임진왜란’은 NHK 의상실 담당자를 초청했고, 세트도 NHK 것을 가져올 만큼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NHK는 6회로 축약한 방송본을 가져갔습니다.”

감독보다 사회 인식 변화가 중요

그는 “사극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감독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가 가장 부러워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나는 평생을 한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바쳐왔어요. 이런 점에서 우리가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가 일본입니다.”

일본은 역사교육이 저절로 되는 나라다. 우리나라는 역사 하면 교과서로나 배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도 없는 분야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역사소설과 대하사극이 시너지 효과를 낳는 선순환 구조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쓴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 ‘료마(龍馬)가 간다’를 쓴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등 뛰어난 역사소설가가 많고, NHK 등 일본 방송은 이를 바탕으로 대하사극을 끊임없이 만들어냅니다.”

일본의 역사소설과 대하사극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영웅 만들기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역사에 긍정적이다 보니 흠보다는 장점을 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영웅도 많이 생긴다. “일본은 센고쿠시대와 메이지유신 때 영웅이 가장 많고 이때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일본 역사소설가들과 방송국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우리나라도 영웅이 많은데 현실은 일본과 정반대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가 예로 든 인물은 고종 때의 개화승 이동인이다. 이동인은 김옥균 등 개화파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는 2001년 12월에 ‘이동인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세 권짜리 역사소설을 펴냈다. “일본에서 존재감이 약하던 사카모토 료마가, 시바 료타로가 1962년부터 4년간 산케이(産經)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면서 재평가받아 일약 일본 최고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일념으로 이동인을 연구해서 역사소설을 썼습니다.”

일본이 부럽다

일본이 대하사극을 잘 활용하는 것도 부러운 대목이다. “일본은 센고쿠시대와 메이지유신 때의 영웅들을 시대 상황에 맞춰 대하사극에 등장시킵니다. 오랜 불황으로 의기소침해지자 2010년에 NHK는 사카모토 료마를 소재로 대하드라마를 만들어 1년 내내 방송했어요. 이런 점은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그는 공영방송인 KBS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대하사극에 인기 배우가 출연 안 한다고 걱정이 많은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방송이 배우를 만드는 것이에요. 1988년에 MBC에서 장희빈 역으로 전인화를 썼는데 그때 전인화는 완전 신인이었습니다. 방송국이 대하사극을 키워 출연 배우를 스타로 만들 생각을 해야지 스타가 출연 안 한다고 한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는 시청률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 NHK를 보세요. 일본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대하드라마로 역사교육을 잘하고 있잖아요.”

그는 KBS 이원홍 사장의 예를 들었다. “흥선대원군을 소재로 1982년 KBS에서 사극 ‘풍운’을 방영할 때의 일입니다. 이원홍 사장이 내 드라마를 보고 열광했어요. 그런데 나는 사극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비용을 아껴주려고 화재 장면을 적당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이 사장이 이걸 알고 난리가 난 거예요. ‘누가 신 선생한테 제작비 절약하라고 했어요?’ 하더니 제대로 하라고 하지 뭡니까? 그래서 실제 나무를 가져와서 화재 장면을 찍었습니다. 그때 이 사장이 드라마를 보고 하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신 선생 봤어요? 역사드라마는 이렇게 하는 거예요.”

박영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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