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덕도에서 내려다본 신항 일대 전경. 제2신항은 기존 신항 서쪽 바다를 매립해 조성된다. ⓒphoto 이동훈
부산 가덕도에서 내려다본 신항 일대 전경. 제2신항은 기존 신항 서쪽 바다를 매립해 조성된다. ⓒphoto 이동훈

오거돈 부산광역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5월 3일 ‘부산항 미래비전 실천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서에 따르면, 부산항 제2신항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덕만(灣) 일대를 우선 개발하고, 부산 가덕도 동안(東岸)은 ‘장래 항만시설 설치 예정지’로 향후 ‘신항만건설기본계획’에 반영키로 했다. 또 제2신항의 명칭은 ‘부산항’으로 하되 하위 항만명으로 ‘지역명’을 사용하고, 영문 명칭은 ‘Busan New port(부산신항)’로 사용하기로 양 지자체 간에 합의를 봤다.

이번에 양 지자체 간에 체결된 ‘부산항 미래비전 상생협약’은 지난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부산항 미래비전 선포식’의 후속 조치다. 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거돈 부산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는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입회한 자리에서 ‘상생협약서’를 교환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부산항 제2신항은 오는 2040년까지 약 12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경남 창원시 진해구 제덕만 일대에 21선석(船席)의 항만을 새로 조성하는 ‘메가포트(Mega Port)’ 프로젝트다. 제2신항이 조기 완공되면 동북아 허브항만을 놓고 경쟁 중인 세계 1위 상하이항과 3위 닝보·저우산(寧波·舟山)항을 추격할 기틀이 비로소 마련된다. 한때 세계 3위까지 올랐던 부산항은 지난해 컨테이너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6위에 머물러 있다.

부산·경남 ‘7년 전쟁’의 악몽

하지만 화기애애하게 끝난 것처럼 보인 상생협약을 놓고 정작 지역에서는 다른 말들이 나오고 있다. 겉으로 보면 부산이 제2신항을 경남에 건설하기로 하는 등 통 큰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부산항’이란 이름을 따내가는 등 실속을 챙겼다는 말이 나온다. 경남 지역 정치권에서는 뒤늦게 “경남의 해양주권 포기선언”(김성찬 자유한국당 의원)과 같은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제2신항 예정지인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는 13년 전인 2006년 부산과 경남에 걸쳐 있는 기존 ‘신항’을 개항하기 전 부산과 치른 ‘7년 전쟁’의 악몽을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06년 ‘신항(공식명칭)’ 개항 당시 해수부 장관이었던 오거돈 현 부산시장은 역시 해수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함께 신항 개항을 주도했었다. 신항 개장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바로 옆에서 신항 개장을 알리는 하역 크레인 레버를 들어올린 사람도 오거돈 당시 해수부 장관이다.

하지만 오거돈 당시 해수부 장관은 경남 땅에 대부분 지어지는 항만에 ‘(부산)신항’이란 이름을 붙여 경남 지역 각종 단체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다. 일부 시민단체는 ‘신항 탈취범 오거돈 상륙’이라고 적힌 근조 현수막을 달기도 했다.

이번 상생협약 역시 해수부 장관, 해양대 총장을 지내 ‘해양수산계 대부(代父)’로 불리는 노회한 오거돈 시장의 전략에 김경수 경남지사가 당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이번 상생협약 직전까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돼 법정구속돼 있었다.

사실 ‘상생협약’이라고 하지만, 제2신항은 부산과 경남 땅에 나누어 지은 기존 신항과 달리 100% 경남 땅을 이용해 짓는다. 해양수산부 항만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송도와 연도 두 섬을 기준으로 동쪽은 기존 신항, 서쪽은 제2신항으로 구분되는데 제2신항 부지는 100% 경남 땅이 맞는다”고 밝혔다. ‘신항만건설기본계획’에도 창원시 진해구 쪽에 신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이미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부산시 측은 제2신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2신항 위치를 부산에 속하는 ‘가덕도 동안(東岸)’에 건설할 것을 돌연 주장하고 나섰다. 사실 가덕도 동안 일대는 오거돈 시장이 해상신공항 후보지로 줄곧 밀던 곳이다. 이 때문에 “신공항도 가져가고 신항만도 가져가려는 무리한 심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결국 기피시설로 지목된 LNG 벙커링 터미널의 위치, 제2신항 명칭 등도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다시금 부산과 경남 사이에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결과적으로 제2신항은 이미 오래전에 입안한 ‘신항만건설기본계획’에 원래 계획되었던 것처럼 창원시 진해구에 들어오기로 됐다. 하지만 오거돈 시장은 제2신항의 위치와 명칭을 쟁점으로 띄운 결과 제2신항의 상위명칭에 ‘부산’이란 이름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제2신항의 상위명칭을 ‘부산항’에 넘겨주고 하위명칭으로 남겠다고 의외로 쉽게 양보하면서다.

상생협약서는 “부산항 제2신항 명칭은 세계적 항만경쟁력과 브랜드를 가진 ‘부산항’에 하위 항만명으로 ‘지역명’을 사용하며, 영문 명칭은 부산항의 새로운 항만을 뜻하는 ‘Busan New Port’를 사용한다”고 못 박았다. 이 밖에 부산은 당초 신항 개발에 따른 피해보상 차원에서 진해 쪽에 짓기로 했던 해양문화공원을 부산 가덕도 쪽에도 나눠 갖는 성과도 부수적으로 거뒀다.

‘신항’에서 ‘부산항’으로

2005년 ‘신항’이란 괴상한 명칭이 정해진 후 14년 만에 다시 정해진 제2신항의 이름은 과거보다 부산에 더 유리하게 정해졌다는 평가다. 1997년부터 7년 넘게 지속된 명칭 전쟁은 2005년 한글명은 ‘신항’, 영문명은 ‘Busan New port’라는 이름으로 결론났다. ‘부산신항’도 아니고 ‘진해신항’도 아닌 이상한 명칭이었다. ‘속지주의’ 원칙에 입각해 명쾌하게 결론을 못 내리고 이쪽저쪽 눈치를 보다가 만들어진 이름이었다.

당시 명칭 결정에 관여했던 진해시(현 창원시)의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이란 이름을 관철시킨 인천에 비해 우리는 힘이 약했다”고 했다. 당시 인천공항은 2001년 개항 당시 ‘세종공항’ ‘서울공항’ ‘새서울공항’ 등 서울의 견제를 뿌리치고 지역명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2005년 ‘신항’ 명칭 결정 당시부터 “부산이 사실상 승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결국 경남의 우려대로 ‘신항’이라고만 돼 있던 공식명칭이 영문표기뿐만 아니라 한글표기마저 ‘부산신항’이라고 굳어져버린 셈이다. 이번 상생협약서에 ‘상위명칭’을 아예 ‘부산항’이라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부산은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절반 정도에 ‘부산’이란 이름을 붙이게 됐다.

지금 경남에서는 제2신항의 상위명칭을 부산에 내어준 채 그 아래 붙는 ‘지역항’ 이름을 두고 아웅다웅하고 있다. 황기철 민주당 진해지역위원장은 지난 5월 7일 창원시청에서 “제2신항의 명칭을 진해신항으로 해달라”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경남도와 창원시에서는 ‘창원항’ 같은 이름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창원시(창원·마산·진해)를 이룬 세 도시 중 마산항, 진해항은 이미 존재하지만 ‘창원항’이란 이름은 아직 없다.

경남도 항만물류과의 한 관계자는 “지역명을 사용하기로 협의가 됐다”며 “창원시에서 이름을 정해서 제시하면 그렇게 정할 것”이라고 했다. 창원시 창원신항사업소의 한 관계자는 “시·도 지사 간 상생협약은 체결했는데, 정부의 항만기본계획으로 확정되는 것이 내년 말”이라며 “여론 형성을 거쳐 내년 말쯤 이름이 정해질 것”이라고 했다.

‘상생협약’에서 배제된 허성무 창원시장의 강경한 입장도 ‘상생협약’ 지속의 변수다. 창원시는 제2신항 건설 시 실제로 땅과 공유수면을 제공하고 어업권 피해보상 등을 떠맡아야 하는 행정주체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부산대 운동권 출신으로 노무현 청와대에서 김경수 경남지사와 한솥밥을 먹었다. 허성무 시장은 노무현 정부 때 해수부 장관을 지낸 허성관 현 광주전남연구원장의 동생이기도 하다.

하지만 허성무 창원시장 측은 ‘상생협약’에 창원이 배제될 조짐을 보이자 지난 2월 같은 민주당 소속의 오거돈 부산시장과 김경수 경남지사를 겨냥해 ‘창원 빠진 제2신항 상생협약은 주인 없는 손님들 잔치’란 보도자료를 내고 “제2신항의 유력 후보지는 100% 창원 땅”이라며 “창원의 참여가 배제된 3자 협약(부산시·경남도·해수부)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상생협약을 체결한 김경수 경남지사, 문성혁 해수부 장관, 오거돈 부산시장(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상생협약을 체결한 김경수 경남지사, 문성혁 해수부 장관, 오거돈 부산시장(왼쪽부터). ⓒphoto 뉴시스

신항 경쟁력 저해하는 행정관할

오는 2040년까지 2만TEU급 선박이 드나들 국내 최대 항만으로 태어날 제2신항의 입지와 명칭이 일단 결정되면서 이참에 신항의 경쟁력을 좀먹는 관할권 문제를 재정리해야 할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부산항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기존 부산 북항과 신항의 항만 이원화에 따른 항만 운영의 비효율이다. 앞으로 제2신항까지 조성되면 항만이 사실상 3개(북항·신항·제2신항)로 분산되면서 운영의 비효율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신항은 ‘1977년 해상경계선’을 기준으로 삼도록 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2013년 행안부의 행정구역 조정이 이뤄지면서 같은 항만임에도 관할 주체가 부산과 경남으로 이원화됐다. 대외적으로는 ‘Busan New Port’란 이름으로 통일됐지만, 기존 신항의 남컨테이너부두와 북컨테이너부두 일부(6선석)는 부산, 북컨테이너부두 일부(7선석)와 서컨테이너부두(예정)는 경남으로 관할 주체가 나뉘어 있다. 부산시와 경남도 외에도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BJFEZ)’이란 별도 조직까지 시어머니가 무려 세 명이나 된다.

특히 13개 선석을 갖춘 북컨테이너부두와 그 배후부지의 경우 행안부 경계조정 과정에서 지그재그로 행정관할이 그어졌다. 북컨테이너부두는 동일한 안벽을 끼고 있는 항만이지만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6개 선석(船席)은 부산, 7개 선석은 경남으로 관할권이 나뉘어 있다. 심지어 ‘부산신항만(PNC)’이 운영하는 제2부두는 같은 부두임에도 동쪽 3선석은 부산, 서쪽 3선석은 경남으로 행정관할이 나뉘어 있다.

물류창고가 모여 있는 북컨테이너부두 배후부지는 사정이 더 복잡하다. 같은 도로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건물은 부산, 어떤 건물은 경남으로 나뉘어 있다. 전화 지역번호도 부산(051)과 경남(055)이 뒤섞이는 등 중구난방이다. 부산과 경남의 경계에 있는 ‘칼트로지스부산’이란 물류창고의 주소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지만, 업체명과 지역번호(051)는 부산인 식이다. 한 업체가 부산과 경남 지역번호를 동시에 쓰는 사례도 있다.

이 밖에 항만 전체를 관할하는 부산항만공사(BPA)는 ‘Busan’이란 명칭을 쓰는 데 반해, 각 부두 운영사는 이미 사라진 ‘Pusan’이란 과거 표기법을 고수하는 등 외국 선주와 화주들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실제 신항 북컨테이너부두에 있는 1부두는 부산신항국제터미널(PNIT), 2부두는 부산신항만(PNC), 남컨테이너부두에 있는 4부두는 현대부산신항만(HPNT) 등으로 영문명에 ‘Pusan’이란 옛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영문만 놓고 보면 ‘Busan’과 ‘Pusan’은 엄연히 다른 곳이다. 해외 컨테이너선박이 정확히 항구를 찾아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신항과 그 배후부지의 뒤죽박죽 표기 문제는 행정구역(경남 창원시)과 이름(부산항 지역항)이 또다시 괴리되어 버린 제2신항에서도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항, 부산 편입 요구 거세질 듯

제2신항의 상위명칭이 ‘부산항’으로 결정되면서 신항 인근 주민들의 부산광역시 편입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신항 일대는 실제 생활권(부산)과 이름(부산신항)이 행정구역(경남)과 불일치하는 데서 오는 불편이 크다. 행정구역만 경남(창원시)일 뿐이지 실제 생활은 부산에서 하는 사람이 상당하다. 신항 일대를 오가는 버스도 부산 쪽이 월등히 많고 심지어 부산 강서구 마을버스까지 다닌다.

신항 배후부지에 조성된 대단지 아파트들도 주소는 ‘경남’에 속하지만 아파트 이름에는 대부분 ‘부산’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다. 신항 배후부지에 사는 주민들 역시 부산 북항에서 신항으로 옮겨온 사람들이 많아 정서적으로도 부산과 더 가깝다. 2026년까지 부산시에서 계획한 지하철 ‘하단녹산선’이 신항 코앞인 녹산국가산업단지까지 밀고 들어오면 신항 일대의 부산 편입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진해를 부산에 편입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경남 창원시의 일개 행정구로 머물러 있기보다 광역시인 부산에 편입돼 구청장을 직접 뽑는 등의 자치권을 얻자는 주장이었다. 이런 공약은 부산에 가까운 신항 일대 주민들로부터 제법 호응을 얻었다. 부산 역시 낙동강 서쪽의 경남 땅을 야금야금 편입하는 식으로 시세(市勢)를 키워온 전례가 있다. 신항 남컨테이너부두가 있는 가덕도 역시 1989년 부산 강서구에 편입되기 전까지 경남 땅이었다.

행정구역 조정 요구는 내년 총선에서도 언제든지 또다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다. 한때 컨테이너 물동량 기준 세계 3위까지 올라갔던 부산항은 상하이항, 닝보·저우산항 등 중국 항만의 급부상으로 6위까지 내려갔다. 항만운영사인 국내 최대 선사 한진해운의 부도, 현대상선의 세계 3대 해운동맹 정회원 가입 실패 등으로 한국의 항만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신항 관할권을 둘러싼 부산과 경남의 소모전까지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키워드

#지방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