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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24호]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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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인류사]‘철의 왕국’ 가야의 전혀 다른 두 얼굴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가야는 도대체 어떤 나라였을까?”
   
   지난 겨울, 국립중앙박물관의 가야사 특별전 ‘가야본성’을 다녀온 한 기자가 쓴 기사는 이런 의문문으로 끝난다. 지금까지 가야에 대해 밝혀진 모든 것을 담았다고 자부하는 전시회를, 기자의 훈련된 날카로운 눈으로 보고 나서도 여전히 가야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 가야의 여러 얼굴. 왼쪽 위에서 아래로, 낙타형 도기, 다양한 도기들, 철정, 갑옷과 투구, 순장 유골, 가야금

   좁은 국토에서 생산된 거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高)퀄리티 부장품, 음악을 사랑하는 평화로운 이미지와 대조적인 무기와 갑옷들, 그리고 눈으로 확인되는 순장 풍습, 작은 나라들의 연명체였다는데 강력한 왕권과 엄격한 신분 질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 동아시아 전체, 그리고 그 너머에까지 활발히 교류했던 흔적들…
   
   가야에 대해 더 많은 자료가 나오면서 일반적으로 알려졌던 가야란 나라에 대한이미지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것 같다. 마치 구성 조각이 더 많이 채워지는 데도 전체적인 모습 알기가 더 어려워지는 퍼즐 그림처럼. 그것은 그림 자체가 낯선 것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즉 가야는 현재 우리의 사고방식에는 익숙지 않은 독특한 국가와 문화 형태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야의 특이성은 두 가지 축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철(鐵)’, 또 하나는 ‘해양국가’다. ’철’ 부분부터 살펴 보자.
   
   가야에 대해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가야 철기 문명의 특징을 의미 있게 논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배운다”는 만고진리의 지침을 따라 다른 고대 철기 사회의 역사를 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이 분야의 연구가 많이 진척된 유럽의 철기시대 역사를 살펴보자.
   
   유럽 철기시대 역사 전문가인 마리루이스 쇠렌슨(Marie-Louise Sørensen)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에 의하면 고대사회에서 철기 생산에 제일 중요한 조건은 목재와 노동력이었다. 철을 생산하려면 우선 숯을 대량으로 만들어서 철광석을 넣은 괴로를 높은 온도로 가열해 선철을 만들어낸다. 선철을 계속 가열해가면서 무거운 망치로 계속 두드리면 내부의 분자 결합 구조가 바뀌면서 단단하고 탄력 있는 강철이 된다.
   
   
▲ 폴란드 스위토크르지스키 고대 야금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제철 작업 현장의 재현 입체 이미지 사진. 온 산이 헐벗도록 베어내는 나무와 여러 사람들의 고된 노동은 제철의 필수 조건이었다. 출처: 스위토크르지스키 고대 야금 박물관 홈페이지

   엄청난 양의 목재와, 힘든 노동을 감내할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런 특성은 철기 사회의 형성에서 쇠망까지, 빠른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인이다. 보통 철기 문명은 삼림이 풍부한 큰 산의 기슭에 있는 비옥한 평야에서 시작한다. 넉넉한 목재와 충분한 노동력이 확보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철기를 만들어내려는 욕심은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금방 넘어선다. 한 곳의 목재를 모두 소진해 삼림을 황폐화시키고 나면, 이들은 목재가 더 많은 곳으로 이동한다. 철제 무기를 앞세워 그곳을 장악하고 또 제철 작업을 시작했다.
   
   고대 제철 집단은 이처럼 목재에 기반한 자신들의 생존 전략을 쫓아 빠르게 움직였다. 구체적으로는 각 사회에 따라 기후 지리 인문 환경의 다양한 조건이 합쳐지면서 독특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유럽의 경우에는 지중해 연안 지역과 그 밖의 지역, 이 두 범주가 서로 다른 시기에 뚜렷이 다른 역사적 과정을 보였다.
   
   이번 회와 다음 회에 걸쳐 이 두 가지 상이한 철기시대의 모습을 들여다보려 한다. 미리 앞당겨 말하자면, 가야 철기 문명의 특성은 이 두 가지 유럽 철기시대의 특성을 함께 고려해서 가늠할 수 있다.
   
   유럽 철기 제작인들의 급속한 확산은 지중해 연안에서 먼저 시작했다. 이 과정은 기원전 1200년대에서 기원전 900년대에 걸쳐 일어났던 ‘청동기 붕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크레타 섬의 미케네,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 바빌로니아의 카시트 등 쟁쟁한 청동기 왕조를 차례로 쓰러뜨린 것은 당시 ‘바다 사람(sea people)’이라고 불리던, 철기를 사용하는 집단이었다. 화려한 왕궁 중심의 문화를 자랑하던 지중해 청동기 사회는 작은 규모의 종족 마을이 서로 각축하는 철기 사회로 바뀌게 된다.
   
   종전까지는 이 바다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그들이 지중해 연안의 다양한 지역 및 섬들로부터 왔으며, 거대 왕국들을 집요하게 흔들어 붕괴시켰다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이 해적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는가 하는 추측이 많았다.
   
   
▲ 왼쪽: 바다 사람들의 활동 시기(지중해역 청동기 붕괴)의 기후변화, 오른쪽: 다양한 곳에서 유래한 바다 사람들의 경로 제공: 이진아

   최근 기후변화에 맞추어 세계사가 재조명되면서 이들의 복합적인 구조가 재해석되기 시작하고 있다. 지중해 중서부 해안 및 도서의 수몰지역에서 온 환경 난민과 소아시아 쪽에서 온 제철 집단이 모두 이 시기 지중해역에서 무법자로 설쳤고, 이집트와 같은 육지 기반 사람들은 이들을 뭉뚱그려 바다 사람이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소아시아 쪽에서 온 바다 사람들은 다른 철기 제작 집단과 비슷하게, 그곳의 삼림이 황폐화되어서 새로운 목재와 땅을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베리아 반도, 사르디니아 섬 같은 데서 온 바다 사람들의 경우는 좀 다르다.
   
   기후변화 온난기에는 해수면이 상승해서 해안가 저지대나 섬 같은 데서는 수몰지역이 생기는데, 특히 지중해에선 이런 과정이 더욱 두드러진다. 온난기에 대서양의 바닷물이 팽창하는데, 그곳으로부터 좁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지중해의 해수면이 빠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서쪽 해안과 도서 지방 수몰지역의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가족 전체가 배에 몸을 싣고 떠돌며 다른 살만한 땅을 찾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 이집트 람세스 3세 신전 벽에 새겨진 바다 사람들과의 전투 부조의 양각 탁본 일부. 바다사람들이 수레에 가족과 가축, 가재도구를 싣고 다니다가 전투가 시작되자 한 어머니가 황급히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출처: Public Domain

   소아시아 쪽에서 온 바다 사람들은 앞선 철기 제작술을 갖고 있었고, 그 밖의 지역에서 온 바다사람들은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빠르게 그 기술을 흡수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철기 제작은 급속히 지중해 전역에 퍼져나갔다.
   
   생존의 근거를 확보해야 할 절박성과 철기 무기의 조합은 파괴력이 엄청났다. 발칸 반도의 경우 바다 사람들의 침략이 횡행했던 3세기 동안, 해안 지역 인구가 이전 시대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한다. 성공적으로 육지의 웬만한 땅을 확보한 바다 사람들은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의 서막은 그렇게 해서 열렸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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