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신입사원 조응연씨는 아들·손자뻘인 동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73세 신입사원 조응연씨는 아들·손자뻘인 동료들과도 격의 없이 지낸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버지는 73세다.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해서 남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직장을 다니고 싶다며, 무려 47곳에 지원하셨다고 한다. 사실 이런 아버지의 도전이 무모해 보였고, 아들로서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아무리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고 계셔도 회사 인사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반응이 뻔했고, 혹시라도 당연한 결과에 실망하실까봐 그게 더 싫었다. 서류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74년생도 취업이 힘든데 47년생을 누가 뽑겠다는 생각을 하겠냐며 이제 편히 손자랑 놀면서 사시라고 아버지를 설득하고 만류하기도 했다. 포기가 없으셨다. 마침내 면접 기회가 오자 직무에 대해서 철저히 분석하고 피칭하여 당당히 1명 뽑는 자리에 최종 계약직으로 합격하셨다.

소식을 듣는 순간, 울컥하기도 하고 너무 죄송했다. 내가 아버지의 꿈을 이미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 그 도전을 적극적으로 막는 역할을 한 것 같아서다. 결국 아버지는 ‘마흔일곱 번의 도전’으로 이겨내셨다. 아버지야말로 인생의 스타트업 창업자 같았다.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미션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내게 이번 일이 많은 것을 시사했다.

결국 절실하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중도 포기하지 않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길뿐이다. 47번 도전하면 어찌 됐든 되는 것 같다.^^ 아버지는 갓 대학 졸업한 인턴과 나이가 50살 차이가 난다며, 동기처럼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신다. 이번이 제발 마지막 직장이길 바라며 ㅎㅎ 축하드려요!’

지난 8월 초 한 스타트업 대표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에는 900개 가까운 ‘좋아요’와 함께 “감동이다” “멋지다”는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다. 70세 시니어의 인턴 도전기를 그린 영화 ‘인턴’의 주인공 로버트 드니로를 보는 듯했다. 페이스북 글의 주인공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언론에 내놓을 만큼 대단한 인생이 아니다”라며 고사하는 ‘한국판 로버트 드니로’를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지난 10월 12일 만났다. 73세의 신입사원 조응연씨다.

47전48기의 조응연씨가 출근한 곳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시흥권주거복지지사이다. 그의 직책은 ‘홀몸어르신살피미’로 LH가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올해 신설한 일자리이다. 전국 지사에 65명이 근무하고 있고 평균연령은 58.9세이다. 그중 조응연씨는 최고령이자 유일한 70대이다. LH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홀몸 어르신 대상 안부 전화 및 세대 방문을 통한 말벗 등 ‘살핌’ 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이 주 업무이다.

이 자리를 얻기까지 그의 취업분투기는 인내의 기록이었다.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시스템인 워크넷에 일단 구직 등록을 했지만 연락이 올 리 없었다. 워크넷에 올라온 구인 기업에서 일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더구나 70대인 그가 도전할 만한 자리는 없었지만 해볼 만하다 싶은 곳에는 무조건 이력서를 보냈다.

구직에 올라온 일자리는 사무직은 아예 눈에 띄지 않았다. 수목 소독, 반도체 조립, 물류 지원, 자동차부품 생산직원 등 몸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노트에 47번의 도전을 모두 기록해놓았다. 첫 번째 도전부터 순서대로 근무조건, 업무, 연락처, 급여조건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문서세단기를 만드는 기업의 기계 조립직 도전을 시작으로 47번째는 요양병원의 환자 이송직이었다. 이력서를 보낼 때마다 현실의 벽을 절감했다. “주제파악을 못 했구나. 칠십 노인을 누가 쓰려고 하겠어. 내 의욕과 건강,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되는구나.” 그나마 ‘채용을 못 해 아쉽다’는 문자를 보내준 곳은 고마웠다. 대부분 아무 연락도 없었다. 48번째 도전도 하마터면 49번으로 이어질 뻔했다.

입사 동기는 20대 인턴들

자신감이 꺾여가던 지난 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애인복지공단의 직원이라고 밝히면서 “LH에서 계약직을 채용하는데 어르신께 꼭 맞는 자리일 것 같으니 한번 지원해보라”고 했다. “지원서를 너무 열심히 내니 눈여겨본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추측이다. 지원서를 내고 처음으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름대로 업무를 연구하고 컴퓨터로 직접 ‘홀몸어르신 맞춤형 섬김 살피미 계획서’를 문서로 만들어 가지고 갔다. 내심 자신이 있었다. 1명을 뽑는 면접장에 4명이 왔다. 다들 10~20년은 젊어 보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예비합격자 1번’ 통보를 받았지만 힘들게 얻은 자리를 누가 포기할까 싶었다. 나이의 벽을 넘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흘 후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50대 합격자가 근무 사흘 만에 그만둔 것이었다.

지난 6월 29일 첫 출근을 한 그는 매일 아침 부천 집을 나와 서해안선을 타고 LH 시흥권주거복지지사로 출근한다. 그의 옆자리와 앞자리에는 ‘입사 동기’인 20대 초반의 인턴사원들이 앉아 있었다. 손자뻘인 그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점심도 같이 먹는다. 그들의 업무가 바쁠 땐 거들기도 한다. 그는 “3대가 같이 일하는 사무실이다.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니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했다. 정기봉 LH시흥권주거복지 지사장은 “근무자세, 업무처리 등이 너무 모범적이어서 직원들이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살펴야 할 홀몸 어르신은 60대부터 90대까지 33명이다. 이 중에는 그보다 어린 사람도 많다. 업무 일지에는 33명에 대한 정보가 꼼꼼하게 기록돼 있었다. 몸 상태가 어떤지, 무슨 약을 복용하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그동안 근무하면서 파악한 내용들이었다. 매일 누구에게 어떤 내용으로 전화했는지도 적혀 있었다. ‘살핌 서비스’ 업무도 자세히 정리해 놓았다. ‘주거복지 안내, 집안 정리 청소, 병원 동행, 수리 보수, 희망의 스토리(이야기 풀어놓기), 건강체조’ 등 그가 직접 설계한 업무이다. 출근하면 그는 전화기를 들면서 업무를 시작한다. 안부를 묻고 도와줄 일은 없는지 세심히 살핀다.

“어르신 잘 계셨어요? 기침하시네! 천식이 있다고 하셨죠. 얼굴 뵙고 싶어서 한번 방문할까 하는데 시간 좀 내주세요.”

“어르신, 어디 아픈 데는 없으세요? 신발이 필요해요? 내가 사다줄게요. 사이즈가 어떻게 돼요?”

대화 내용이 친숙했다. 그는 ‘어르신’들의 사연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지병이 있는 분도 많고. 다들 외롭다 보니 전화기 붙들고 끊질 않아요. 제가 맞장구를 잘 쳐주거든요. 차나 한잔 대접하고 싶다고 오라는 사람도 있고 들여다보고 싶은 분도 많은데 코로나19 때문에 세대 방문은 최소화해야 해서 안타까워요.”

그가 요즘 마음을 쓰고 있는 세대의 방문길에 동행했다. ‘신발이 필요하다’고 통화했던 어르신이었다. 다리를 다쳐 1년 가까이 집 밖 출입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장애인 등록을 권유했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 먼저 하라”는 바람에 추진을 못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단서를 떼야 하는데 외출을 아예 안 하다 보니 신발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시흥 재래시장에 들러 신발을 사들고 주택가의 한 빌라를 찾았다. “우리 집에 전화하는 사람이 없는데 맨날 안부 전화 해줘서 고맙지.” 모처럼 방문객을 맞은 어르신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다음번에 병원에 모시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왔다. 이렇게 방문을 하면 한결 마음이 놓인다. 세대 방문 때는 음료수, 식물 등을 사들고 간다고 했다. 생일날은 깜짝 선물도 준비한다. 월급은 191만원, 그중 10%는 어르신들에게 쓰겠다는 ‘마음 나눔’을 매달 실천 중이다.

‘홀몸어르신살피미’는 6개월 계약직으로 연말이면 끝난다. LH가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이라 내년에도 할지, 한다고 해도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벌써 그는 워크넷에 구직 등록을 다시 올려놓았다고 한다. “아직도 30~40㎏ 무게를 번쩍 들 만큼 건강합니다. 얼마 전 먹기 시작한 혈압약을 제외하고는 지병도 없습니다. 불러만 주면 어디든 달려갈 겁니다.” 그의 걸음은 젊은 사람도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점심 시간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매일 1만보 이상 운동을 한다고 했다. 취업이든 봉사든 일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굳이 일을 하려는 이유는 뭘까.

최선을 다한다는 것

조응연씨의 업무는 33명의 홀몸 어르신을 살피는 일이다. 매일 전화 안부와 함께 가정방문도 한다.
조응연씨의 업무는 33명의 홀몸 어르신을 살피는 일이다. 매일 전화 안부와 함께 가정방문도 한다.

“제 인생 모토가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여기서 ‘스스로 돕는’ 방법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어느 단계까지 이뤄내면 그 이후는 하늘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결론입니다. 47전, 나의 최선이 있었기 때문에 48번째의 길이 열린 것처럼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일을 하는 것이고,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말이 아닌 삶을 통해 그는 ‘최선’을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그는 “7전8기는 사전에 있지만 47전48기는 조응연의 인생 사전에만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최고의 강점을 ‘근면·성실’이라고 했다. ‘근면·성실’로 평생 ‘최선’을 다한 그의 지난 역사를 들으면서 고개가 숙여졌다.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던 그 ‘단어’들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그의 삶이 새삼스럽게 보여준다.

현직 교사 시절, 전북 군산의 한 섬마을 초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교육청마다 소년체전에 열을 올리면서 ‘맥주병’인 그에게 느닷없이 ‘수영 자랑학교’를 만들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수영장에 가서 하루 커닝한 실력으로 방학도 반납하고 아이들을 훈련시켰다. 2년 만에 소년체전에 2명을 내보내 메달 5개를 휩쓸었다. 요란한 환영대회가 열리고 섬이 발칵 뒤집혔다.

정년퇴임 2년을 남겨놓고 인천 강화도의 시골학교 교장 발령을 받았을 때의 일화도 근면, 성실이 만들어낸 기적을 보여준다. 교내에 660㎡(200평) 남짓한 공터가 있었다. 비만 오면 흙탕물이 되는 곳을 아이들의 꿈동산으로 만들고 싶었다. 마침 조선일보에서 ‘스쿨 업그레이드 캠페인’을 했다. 사연이 채택돼 상금 1200만원을 지원받았다. 견적을 받아보니 5000만원 가까이 들었다. 상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밤낮으로 흙과 씨름하며 터를 다졌다. 옷을 짜면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였다. 그의 노력이 사람들을 움직였다. 감동을 받은 학부모 20~30명이 연장을 들고 몰려왔다. 6학년 학생은 트랙터를 몰고 왔다. 아침에 가보면 밤새 누군가 작업을 해 놓고는 했다. 소문이 나면서 언론에서 취재를 오고, 해병대가 와서 돌을 나르고, 인천시의회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었다. 학부모들의 축가 속에 교직 인생을 마무리했다.

꽃길 말고 돌길을!

열정적으로 일하다 정년퇴임 후 집에서 쉬려니 좀이 쑤셨다. 무엇보다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성산효대학원 대학교 과정에 등록해 효학을 전공하고 평생교육사 1급 자격증을 땄다. 워크넷에 구직 등록을 올리고 이력서를 25곳쯤 냈을 때 사회적 기업인 ‘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에서 연락이 왔다. 자전거 기술을 교육할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다시 그의 ‘근면·성실’ 시스템을 풀가동해 조직을 만들고 교수진을 섭외하고 커리큘럼을 만들어 국비지원과정으로까지 만들었다. 조직이 안정될 즈음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 SOS가 왔다. 노인대학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교회 사무장으로 취직해 다시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 5개 강좌를 만들어 교수진을 꾸리고 그도 건강교실을 맡아 재능 봉사를 했다. 그가 만든 ‘부평남부시니어아카데미’는 지금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교회직의 정년퇴임인 70세를 넘기고 72세에 직을 내려놓고 그는 또 구직활동에 나섰다. 이때도 20차례의 도전 끝에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불법 복제물 찾는 일을 1년 했다. 그는 만 63세에 끝난 정년을 10년 연장하기 위해 무려 100번에 가까운 도전을 했다. 나이의 한계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의 삶은 자식들에게 산교육이 됐다. 47전48기, 아버지의 도전을 페이스북에 올린 아들은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이다. 잇단 혁신으로 스타트업계에서 주목받는 창업가이다. 2011년 국내 최초로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대를 열었고, 현재는 ‘런드리고’라는 모바일 앱에 세탁소를 집어넣어 클릭 한 번으로 빨래를 해결할 수 있는 세탁혁신 서비스를 만들어 화제를 불렀다. 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들어간 대기업을 5년 만에 그만두고 나와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이겨내고 만든 성과였다. ‘부전자전’이다.

“이 나이에는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는 그는 여전히 청년 같았다. 매일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늙지 않는 비결일 것이다. 누구보다 높은 취업 문턱을 넘은 그가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처음부터 꽃길만 가려고 하지 말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최고의 악조건에 뛰어들어 살아남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일을 이겨내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넘어지지 않는 재목이 될 겁니다.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지 말고 뭐든 도전하세요. 그 경험이 살면서 큰 힘이 됩니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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