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취업준비생의 인력 미스매치가 심화함에 따라 중소기업은 심각한 구인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중소기업과 취업준비생의 인력 미스매치가 심화함에 따라 중소기업은 심각한 구인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름 : 김재희(가명)

•출생연도 : 1995년생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학력사항 : ○○대 △△학과 졸업

•희망직종 : 사무원, 사무직 보조, 신입

•희망조건 : 서울, 연봉 3000만원 이상, 정규직

가상의 구직자 김재희씨는 고용노동부의 구직 사이트인 ‘워크넷’에서 위와 같은 간단한 이력서만으로 입사 지원을 한다. 자기소개서도 없는 형식적인 이력서지만, 진짜 취직이 아니라 각종 취업지원금을 목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재희씨처럼 취업할 의지가 없거나 입사와 퇴사를 의도적으로 반복해 지원금을 타 쓰는 ‘얌체족’들이 최대 얼마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계산해보자. 1인가구 기준 중위소득 50~60%라는 가정에서다.

일단 재희씨는 중앙정부의 국민취업지원제도 중 ‘구직촉진지원금’ 3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6개월간 월 50만원씩 입금된다.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조금 안 됐기 때문에 받을 수 있다. 구직촉진지원금 지급 기한이 끝나고 재희씨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소 180일 동안 일하고 그만두면 구직급여도 받을 수 있는데 120일간 총 721만4400원을 준다. 구직급여 1일 하한액 6만120원으로 계산한 액수로, 월평균 180만원 정도다.

지방자치단체(서울시)에서 주는 ‘청년수당’도 신청할 수 있다. 고용보험 미가입자를 대상으로 월 50만원씩 6개월, 총 300만원을 준다. ‘구직촉진지원금’ 수급자는 받을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지급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사전에 걸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청년수당’ 급여 기한 6개월이 끝나기 전에 재희씨는 계약직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다. 국민취업지원제도 중 하나인 ‘취업성공수당’을 받기 위해서다. 6개월 근속하면 50만원, 12개월 근속하면 1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재희씨는 취업성공수당을 최대치인 150만원까지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실직 후 구직급여를 한 번 더 신청했는데, 2차는 1차와 같게 계산돼 월급 180만원, 재직 기간 12개월일 때 총 901만8000원을 받는다. 150일간 월평균 180만원 정도다. 현금 소득은 아니지만 재희씨는 최초 300만원을 직업훈련비용으로 지원해주는 ‘국민내일배움카드’도 발급받았다. ‘K-디지털 크레딧’ 과정을 수강하면 추가로 50만원까지 더 지원받을 수 있다.

이렇게 받을 수 있는 무상 현금만 3년간 약 2300만원 이상이다. 최소 4주 내 1회 이상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과 취업활동계획서, 요구 서류들을 갖추면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주는 구직급여, 각종 취업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앞서의 간단한 이력서로 입사지원만 하면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명이 된다.

재희씨가 몇 번의 구직활동 증명서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을 실속 있게 챙기는 동안 중소기업 대표들은 인력난과 채용난을 호소하고 있다. 작은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정태희(55) 대표는 “지원자 7명 중에 1~2명을 제외하고는 자기소개도 없이 성의 없이 쓴 이력서만 달랑 낸다”며 “면접에 오겠느냐고 문자를 보내면 절반은 대답도 안 하고, 온다고 해놓고 당일에 안 나타나서 전화하면 안 받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면접 노쇼(No Show)도 흔하다. 도소매 유통, 컨설팅을 하는 중소기업의 한병희(58) 대표는 “10명 기준 8명이 노쇼”라고 답했다. 신규 인력이 간절한 대표들은 채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감당해야 할 뿐 아니라 정신적 타격도 크다. 한 대표는 “구인 사이트에 수시 채용 등을 광고하는 비용이 월 100만원 정도”라며 “다른 일도 못 하고 나타나지 않는 면접자들만 기다리다가 매일같이 ‘꽝’ 치다 보면 허탈감까지 든다”고 말했다.

청년 취업난과 중소기업 인력난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자리 미스매치의 단면이다. 청년 체감 실업률(지난 1~2월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발표한 확장 실업률)은 27%에 달하고, 중소기업에서는 사람이 부족해 난리인데도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실업급여 혜택이 확대되자,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구직활동 증명서’ 정도로 이용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법인 하나의 이학주 노무사는 “최근 특히 젊은층 사이에서 가짜로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업장의 고충이 크다”며 “면접에도 안 오고, 이력서도 대충 적어 내는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없겠지만 대부분 실업급여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이 노무사는 “사업주들이 고용센터에 이의 제기를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사업주가 귀찮기도 하고 센터에서 그런 것까지 일일이 제재하기는 어려워서 사실상 가짜 구직활동에 대해 조처가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도 덧붙였다.

핵심은 일자리 미스매치

지난 11월 2일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센터에 구직급여 심사를 신청하러 온 공시생 A(28)씨도 그런 ‘얌체족’ 중 한 명이다. 다음해 9급 공무원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는 A씨는 “공부 중에는 구직활동을 하기 어렵지만, 구직활동을 했다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중소기업에 지원하고 면접에 안 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직활동 외에) 다른 수급 조건을 다 충족하는데도 신청 안 하는 건 솔직히 손해라고 생각한다”며 “면접에 안 간 회사 대표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내가 원하는 직장이 따로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지원한 회사에 붙을 수도 있는데 진짜 취업을 고려해본 적 없느냐’는 질문에 A씨는 “중소기업보다는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과 취업준비생의 미스매치 원인 중 하나는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다. 문 열어 놓고 기다리는 중소기업은 외면하고 공무원, 대기업의 바늘구멍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13일 한국경제인연합이 4년제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취업 희망 1순위는 공기업·공공기관(35.6%)이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35.0%)이 2순위를 기록했고 중소기업을 희망하는 대학생은 11.9%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 결과 응답자의 65.3%가 ‘구직활동 거의 안 함’ ‘의례적으로 하고 있음’이라고 답한 사실상의 구직 단념자들인데, ‘그래도 중소기업에는 가지 않겠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다.

이는 중소기업의 ‘저임금, 야근, 고용 불안정’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장욱희 커리어파트너 대표는 이에 대해 “그동안 정부의 취업지원기관이 청년들에게 강소기업 등에도 괜찮은 일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장 대표는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사실 이를 충족하는 중소기업도 많다”며 “임금·워라밸·직무 성취감·조직 문화 등 청년들이 꼽는 취업 조건은 다양하지만, 확실한 것은 임금이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공시생 A씨가 준비하는 9급 공무원의 1호봉 기본급은 2021년 기준 165만9500원으로,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 8월 조사한 중소기업 사원 평균 임금인 230만원보다 낮다. 장 대표는 “단순히 임금만 높일 것이 아니라 취업준비생의 요구를 세밀하게 분류해서 매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는 주로 중소기업 임금을 정부 재정으로 보완하는 현금 지원 정책을 펼쳐왔다. 2017년부터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15~34세)에 대해서 5년간 소득세를 100% 감면해주고, 근속 2년간 총 300만원을 내면 정부가 12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확대운영한 것 등이다.

하지만 이런 재정 지원이 근본적인 취업 동기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청년내일채움공제 만기를 3개월 앞두고 회사를 그만둔 이모(24)씨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는데 1년이 넘게 소셜미디어(SNS)에 게시글 올리는 일만 반복하니 하루하루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며 “좀 아깝긴 했지만 젊은 나이에 시간을 낭비하는 게 더 손해라고 판단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중견기업에 다니던 김모(29)씨도 내일채움공제 만기 한 달을 남겨놓고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지원금 때문에 안정적인 고연봉 일자리를 놓칠 수는 없었다”는 것이 이유이다.

결국 미스매치를 해결할 만한 심도 있는 해결책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 대표는 “구직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세밀하게 타기팅해서 중개할 수 있는 전문적인 서비스가 필요한데, 공공기관에서는 그런 역할 수행이 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어 “정책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지 안 그러면 피해는 고스란히 중소기업이 입는다”며 “청년들 취업에도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용복지센터의 실업급여 설명회장. ⓒphoto 뉴시스
고용복지센터의 실업급여 설명회장. ⓒphoto 뉴시스

취업 촉진 못 하는 구직급여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일자리 격차가 심각해진 가운데 정부가 2019년 10월 1일 구직급여 규모를 확대하자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는 분위기다. 구직급여가 중소기업 등의 일자리로 취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구직자가 취업을 미루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10월 1일 구직급여 액수를 재직 시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상향하고, 지급 기간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렸다. 그러나 같은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구직급여 수급자 중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의 비율은 26.6%에 그쳤다.

‘얌체족’과 더불어 부정수급 문제까지 심화되자 지난 11월 2일 고용노동부는 구직급여를 5년 동안 3번 이상 수급한 사람은 3번째부터 최대 50%까지 수급액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다양한 편법을 사전에 검토해서 걸러내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고용노동부의 부정수급 관계자는 “수당이나 급여가 다양한데, 지급 주체가 다르면 사용하는 전산도 달라서 (중복 수급자를) 확인하는 데 절차가 또 필요하다”며 “신청 전부터 차단하기는 어렵고 수급자 목록을 요구하거나 하면 전달하는 식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같은 현금성 취업지원 제도보다 근본적으로 노동시장의 모순을 풀어갈 수 있는 방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는 “일자리 문제는 실업급여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으로 해결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며 “미래지향적인 젊은이들이 자기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중소기업 등에 많이 생겨나도록 국가에서 중소기업 경쟁력을 위해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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