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권력 집단이 남긴,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모두 없애는 것은 새롭게 권력을 차지한 집단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자신 위주의 기록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초기에 학생들을 동원, 소위 ‘비(非)독일적인’ 책을 모아오게 해서 베를린 오페라 광장에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 장면 사진.  Credit: Bundesarchiv, Bild 102-14597 / Georg Pahl / CC-BY-SA 3.0, https://www.bundesarchiv.de/DE/Navigation/Home/home.html
이전 권력 집단이 남긴,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모두 없애는 것은 새롭게 권력을 차지한 집단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자신 위주의 기록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1933년 히틀러 집권 초기에 학생들을 동원, 소위 ‘비(非)독일적인’ 책을 모아오게 해서 베를린 오페라 광장에 쌓아 놓고 불을 지르는 장면 사진. Credit: Bundesarchiv, Bild 102-14597 / Georg Pahl / CC-BY-SA 3.0, https://www.bundesarchiv.de/DE/Navigation/Home/home.html

946년 백두산의 천년 분화는 역사 시대 최대의 분화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기 백두산에는 천년 분화 한 건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보다 400~500년 앞서부터 다수의 폭발성 분화가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다. 좀 더 소소하게 화산재와 부석 등을 뿜어내는 일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즉 서기 500년대 초부터 900년대 중반까지의 백두산 대폭발기를 거치는 동안 한반도는 전체적으로 그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을 것이다. 분화가 멎은 이후에도 전국토에 화산재가 쌓였을 테니 작물이 잘 자라지 않고, 그 결과 영양실조와 질병, 그리고 사회적 혼란이 만연했을 것이다. 그런 악영향은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반도 고대 사회의 자체 기록들은 거의 전멸했다. 천 년 이상 지난 지금, 한반도처럼 인구가 조밀하고 생태계 복원력이 큰 땅에서 화산 폭발의 물리적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다만 다른 곳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 주먹구구 해볼 수는 있을 테다.

화산 폭발과 그 영향에 대해서 고(古)생태학적 연구가 잘 되어 있는 사례를 보자. 서기 1600년 대폭발을 일으켰던 남미 페루의 와이나푸티나 화산은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 화산 분화와 함께, 서구 선진국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역사적 분화다. 화산분화지수(VEI) 6에 해당되는 것이니까, VEI 7이었던 백두산 천년 분화보다 10분의 1 정도 규모였다고 볼 수 있다.

1600년 페루의 와이나푸티나 화산 분화는 서구에서 많이 연구했다. 근대 유럽 역사의 진행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환경사학에서 와이나푸티나 분화로 인한 냉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역사적 내용 중 중요한 흐름을 지도에 표시했다. 자료 구성: 기반 백지도 출처:   Credit: Jordan Engel, https://decolonialatlas.wordpress.com/2016/08/18/blank-maps-make-your-own/, 표기 내용: C. Ponting의 A New Green History of the World 및 H. Sharma의 “The Worst 10 Years in Human History”의 내용을 토대로 이진아 작성.
1600년 페루의 와이나푸티나 화산 분화는 서구에서 많이 연구했다. 근대 유럽 역사의 진행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환경사학에서 와이나푸티나 분화로 인한 냉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역사적 내용 중 중요한 흐름을 지도에 표시했다. 자료 구성: 기반 백지도 출처: Credit: Jordan Engel, https://decolonialatlas.wordpress.com/2016/08/18/blank-maps-make-your-own/, 표기 내용: C. Ponting의 A New Green History of the World 및 H. Sharma의 “The Worst 10 Years in Human History”의 내용을 토대로 이진아 작성.

이때도 백두산 대폭발기의 분화와 마찬가지로 주로 부석과 화산재가 분출됐다. 화산재가 해를 가리는 바람에 유럽에까지 흉년이 발생했고, 2년 후 북극에서도 이 화산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페루, 칠레, 볼리비아 등 주변국의 토지들이 심각하게 피폐해졌는데, 관련 전문가들은 그 피해로부터 회복되는 데 걸린 시간을 약 150년으로 본다.

규모 10분의 1 화산의 영향으로부터 주변 지역 토지가 회복되는 데 150년이 걸렸다면, 백두산 천년 분화로부터 토양이 완전히 농업생산성을 회복하는 데는 몇 년이 걸릴까? ‘150x10’이라는 단순계산을 적용하면 1500년. 생태복원력이 빠른 편인 한반도임을 고려해 이 기간을 훨씬 줄여도 천 년 가까운 세월은 소요되어야 한다.

이쯤 되면 한반도 국가들의 국세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게 당연하다.

이 연재는 첫 회부터,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얼마나 생명이 번성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 땅에선 당연히 인간 정주가 일찍부터 시작되고 문명이 발달한다. 한반도에서도 당연히 그랬을 테고, 그 증거가 최근 들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만주 남부 랴오허 강 유역에서 발굴되는 유적들이 보여주는 요하문명 같은 게 대표적인 예다. 기원전 7000년부터 시작되어,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던 메소포타미아 문명보다 1000~2000년 앞선 이 문명은 국가 고조선의 기반이었다.

지구 평균기온 변화 및 지구상 지각활동의 역사와 한반도 역사 전개의 맞물림. 기후변화 한랭기로서 지각활동이 활발해질 때 역사의 커다란 변환점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기후변화 한랭 주기에 화산 분화로 인한 지구 대기 냉각 효과가 겹치는 시기엔 식량도 부족해질 뿐 아니라 사람들의 공격성도 강해져서, 목숨을 건 투쟁이 일어나며 국가 판도가 바뀌곤 했다. 그래프: Cliff Harris & Randy Mann의 기후변화 역사 그래프에 한반도의 역사적 팩트를 표기.
지구 평균기온 변화 및 지구상 지각활동의 역사와 한반도 역사 전개의 맞물림. 기후변화 한랭기로서 지각활동이 활발해질 때 역사의 커다란 변환점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기후변화 한랭 주기에 화산 분화로 인한 지구 대기 냉각 효과가 겹치는 시기엔 식량도 부족해질 뿐 아니라 사람들의 공격성도 강해져서, 목숨을 건 투쟁이 일어나며 국가 판도가 바뀌곤 했다. 그래프: Cliff Harris & Randy Mann의 기후변화 역사 그래프에 한반도의 역사적 팩트를 표기.

고조선의 정확한 존속시기와 강역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영토의 중심지역이 한강 이북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철기는 거의 끝 무렵에 받아들여졌다. 백두산에 지천이었던 흑요석이라는 상고시대 최고의 무기 소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1500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천 년 이상의 기후 온난기 동안은 지구자기장 이변이 거의 없었고, 철기 제작으로 인한 환경 파괴도 없으면서 흑요석 기반의 든든한 무력이 있었으니, 고조선은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렸을 것이다.

한강 이남에는 진국(辰國)이라는 느슨한 국가 연맹체가 있었다. 육지에서의 영토 크기는 고조선보다 작을지 몰라도, 천 년 이상 길게 지속된 안정된 온난기였으므로 해양활동이 활발했을 터라, 국력으로 보아 고조선에 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시 아직 철기 도입 전이어서 빠른 환경파괴 같은 게 없었다. 국토 전체가 산림과 해안 생태계의 적절한 균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진국 또한 태평성대를 누렸을 것이다. 이때까지는 북부, 남부 통틀어서 한반도 거주집단이 동아시아 최강자로서 흔들림 없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4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걸쳐 지구자기장 변화가 심해지면서, 백두산 분화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고조선이 흔들리며 그보다 북부에 있었던 세력인 철기 세력 부여에 밀려 청천강 이남에서 한강 이북까지로 영토가 축소된다. 한반도 남부 해안 지방에는 인도 및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철기 제작인들이 발을 붙이기 시작했다. 철기 제작 및 사용은 거의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다.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쳐 다시 지구자기장 격변기가 있었다. 역시 백두산이 상당 규모의 폭발을 했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부여인 중 상당수가 또 다시 유랑 및 정복의 길에 올랐다.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뉘어서, 하나는 서쪽으로 요하를 거쳐 한반도 서해안과 중국 동해안을 따라 퍼져갔고, 또 하나는 아무르 강을 통해 연해주로 가서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낙동강 하구에 이르렀다.

한반도 북쪽 본토에 남아 있던 부여의 세력은 약해져 만주 쑹화강 이북으로 밀려나고, 백두산 주변 지역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땅은 고구려의 기반이 된다. 부여의 환경난민 중 남서쪽으로 향한 집단은 요하를 중심으로 발해만 주변 비옥한 땅을 장악, 거기서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세력을 확대해가면서 이후 백제의 토대가 된다.

동남쪽으로 향한 일단은 한반도 동해안에 철기를 보급하면서 낙동강 하구까지 진출한다. 그곳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남방 유래 철기문명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가야라는 이름을 이어받아 발전해간다. 원래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진국(辰國) 세력은 서해안 및 남해안 상당 부분을 빼앗긴 채 신라의 토대가 된다. 이렇게 해서 기원전 1세기가 끝날 무렵, 사국시대의 판도가 형성되었다. (부여까지 고려하면 오국시대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반도 거주 집단들의 세력은 많이 약해졌을 것이다. 백두산의 화산재로 인한 물리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자기자기장 교란으로 인한 사회심리적 요인의 영향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화산 폭발 등 지각활동이 활발해지는 건 지구자기장이 약해진다는 얘기고, 지구자기장이 약해질 때는 사람들도 불필요하게 불안해지면서 공격적이 된다. 안 그래도 힘들어지는 세상, 서로 다독이며 힘을 모아도 살아남기 어려운 판에 있는 힘을 다해 싸운다면 피차 기력이 소진될 수밖에 없다.

사국이 심각한 기세로 영토 분쟁을 했다는 건 사료가 말해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럴 때가 화산 분화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 외부 세력이 침공해 들어오기 딱 좋을 때다. 중국에서 영토를 확장하면서 압박해오던 한나라의 힘에 눌려, 사국시대 북서부의 영토는 고조선 때보다 많이 축소됐다.

기후변화, 지각활동 변화 및 지형‧생태계 조건을 고려해 추정한 한반도 국가 판도 변화. (왼쪽 위) 2017년 국정역사교과서에 게재됐던, 고조선 전성기의 추정 영토 지도. 한강 이북을 중심으로 한반도 전체에 고조선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아래) Galdrad 제작 기원전 150년 경의 한반도 국가 판도 지도에 시기 및 영토 외연을 수정하여 표시. 북부에 등장한 철기 세력에 밀려 고조선의 영토가 남하 축소되어 있다. (오른쪽) Wikimedia Commons 지도를 토대로, 그간 이 연재에서 추정해온 내용을 반영하여 오국시대 표시. 가야는 본토는 좁지만 해외 영토는 이 지도에 표시된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자료 출처: (왼쪽 위) Newsis, (왼쪽 아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orea_(150_BC).png, 의 지도에 시기 및 영토 외연 수정. (오른쪽) 이진아 작성
기후변화, 지각활동 변화 및 지형‧생태계 조건을 고려해 추정한 한반도 국가 판도 변화. (왼쪽 위) 2017년 국정역사교과서에 게재됐던, 고조선 전성기의 추정 영토 지도. 한강 이북을 중심으로 한반도 전체에 고조선의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아래) Galdrad 제작 기원전 150년 경의 한반도 국가 판도 지도에 시기 및 영토 외연을 수정하여 표시. 북부에 등장한 철기 세력에 밀려 고조선의 영토가 남하 축소되어 있다. (오른쪽) Wikimedia Commons 지도를 토대로, 그간 이 연재에서 추정해온 내용을 반영하여 오국시대 표시. 가야는 본토는 좁지만 해외 영토는 이 지도에 표시된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자료 출처: (왼쪽 위) Newsis, (왼쪽 아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orea_(150_BC).png, 의 지도에 시기 및 영토 외연 수정. (오른쪽) 이진아 작성

사국시대까지는 중국이 한반도를 넘볼 수는 없었다. 같은 언어,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한반도 거주 집단은 통틀어서 여전히 동아시아 최강자였을 테다. 그 세력 판도를 뒤집은 것이 바로 서기 500년대에서 900년대까지 지속된 백두산 대폭발기 분화의 연속이었다.

사국 중 해양활동에 주로 의존했던 가야는 기후변화 한랭기에 접어들면서 제철 해양국가의 속성상 이미 쇠퇴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백두산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고구려, 그 이웃인 요하 주변을 본거지로 했던 백제가 1세기 이상 백두산 폭발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거의 동시에 쇠락해갔다. 한반도에서 가장 안전했던 신라, 그리고 백두산 폭발은 강 건너 불이었던 당나라가 연합해 이 두 강국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됐다.

앞서 백두산 대폭발기의 영향이 천 년 가까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 사이 동아시아 최강자 자리 주인은 누구였는지는 다 알고 있다. 그리고 한반도 상고대 및 고대 국가들의 자체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진아 환경생명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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