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2021 상하이모터쇼’에서 별도 부스를 차린 제네시스. ‘제이니사이스(捷尼賽思)’란 중국어 브랜드가 뒤로 보인다. ⓒphoto 현대차
지난 4월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2021 상하이모터쇼’에서 별도 부스를 차린 제네시스. ‘제이니사이스(捷尼賽思)’란 중국어 브랜드가 뒤로 보인다. ⓒphoto 현대차

현대차그룹의 고급차 독립 브랜드 ‘제네시스(Genesis)’가 중국어 간판을 바꾸고 중국 시장에 재도전한다. 지난 4월 2일 중국 상하이 황푸강변의 국제크루즈터미널에서 드론 3500여대를 띄워 올려 개최한 ‘브랜드 나이트’를 시작으로 중국 시장 공략을 선포한 제네시스가 선택한 중국어 이름은 ‘제이니사이스(捷尼賽思)’. ‘민첩할 첩(捷)’ 등 제네시스의 고급차 이미지에 어울리는 한자 4개를 원음에 가깝게 조합해 만들어낸 이름이다.

제네시스는 지난 4월 19일부터 상하이에서 열린 ‘2021 상하이모터쇼(오토 상하이)’에서도 현대차, 기아와는 떨어져 아예 별도의 부스를 차리고, G80의 전기차 모델과 콘셉트카인 ‘제네시스-엑스(X)’를 각각 세계 최초와 아시아 최초로 공개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 브랜드 최초로 참여하는 중국 모터쇼”라고 했다. 별도 부스에도 ‘제이니사이스(捷尼賽思)’란 제네시스의 중국어 간판이 새로 달렸다.

하지만 ‘제이니사이스’란 브랜드를 접한 중국 업계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비록 인지도가 낮지만 현대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제이언스(捷恩斯)’란 중국어 이름으로 제네시스를 알려왔기 때문이다. 또 제네시스 브랜드가 현대차에서 독립한 2015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는 제네시스의 1세대 모델인 ‘제네시스 BH’와 2세대 모델인 ‘제네시스 DH(현 G80)’를 각각 ‘라오언스(勞恩斯)’와 ‘제이언스(捷恩斯)’란 이름으로 중국에 수출판매해 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라오언스와 제이언스는 모델명이었고, 제이니사이스는 브랜드명”이라고 했다.

제네시스 중국어 이름만 3개

벤츠, BMW, 렉서스 등 경쟁 고급차에 비해 중국 시장에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제네시스는 지난 2월 미국 골프스타 타이거 우즈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중국에서도 제법 화제가 된 바 있다. 다만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다 보니, 당시도 중국 현지 매체에서는 동일한 제네시스를 두고 ‘제이니사이스’ ‘제이언스’ 등 여러 가지 중국어 브랜드가 중구난방으로 쓰였다.

또한 중국 시장 재도전을 계기로 ‘스’ 발음에 대응하는 한자 역시 기존의 ‘라오언스’와 ‘제이언스’에서 사용했던 ‘이 사(斯)’ 대신 ‘생각 사(思)’로 바뀌었다. 대개 중국 시장에서 인지도와 판매량이 높은 고급차들은 ‘스’ 발음에 가장 가깝게 대응하는 한자로 ‘이 사(斯)’를 많이 택해왔다. ‘렉서스(雷克薩斯·레이커사스)’와 ‘롤스로이스(勞斯萊斯·라오스라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크라이슬러(克萊斯勒·커라이스러)와 테슬라(特斯拉·터스라)도 ‘이 사(斯)’를 중국어 이름에 쓴다.

반면 제네시스는 중국어 이름을 바꾸면서, 기존에 외산차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생각 사(思)’라는 한자를 택했다. 이렇다 보니 중국 자동차 딜러와 자동차 매체에서 제네시스의 중국어 이름으로 재차 ‘이 사(斯)’ 자를 써 제멋대로 표기하는 일도 속출하고 있다. 자연히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제이니사이스’와 ‘제이언스’ 등이 동일한 차가 맞느냐는 질문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개별적인 선호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브랜드 ‘호불호(好不好)’를 차치하고, 중국어 간판을 너무 손쉽게 바꾼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급차 쌍벽 ‘번츠’와 ‘바오마’

제네시스의 사례는 중국어 브랜드 작명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것이란 반응도 있다. 중국어는 한글이나 영어처럼 표음문자가 아니라 개별 단어 하나하나가 각각의 뜻과 음을 가진 표의문자다. 원래의 뜻과 음에 적절한 중국어 브랜드를 붙이는 일은 중국 진출 외국 기업에 여간 고민거리가 아니다. 반면 중국은 외국 기업의 법인설립과 상표등록 시 한자로 된 이름을 반드시 등록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외산차 가운데는 잘 지은 이름 덕분에 승승장구하는 사례도 있다. 중국 자동차 시장 1, 2위를 달리는 독일 폭스바겐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각각 ‘국민차’ ‘보통 사람들의 차’라는 원래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다중(大衆)’ ‘통용(通用)’이란 중국어 브랜드를 쓴다. 원래의 발음을 아예 버리고 오로지 뜻에만 근거해 별도의 중국식 이름을 만든 셈이다.

중국 고급차 시장 1위인 독일 벤츠는 ‘달릴 분(奔)’과 ‘달릴 치(馳)’라는 한자들을 조합한 ‘번츠(奔馳)’라는 중국어 브랜드로 원음에 가장 가까우면서도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이미지를 살렸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벤츠는 지난해 중국에서 현지 합작생산과 독일 직수입을 합쳐 78만여대를 판매했다.

중국 고급차 시장 2위 BMW 역시 ‘보물 같은 말’이란 뜻의 ‘바오마(寶馬)’란 이름으로 지난해 중국에서 75만여대를 팔았다. BMW는 1992년까지만 해도 ‘바얼이(巴尔依)’란 음차 브랜드를 사용했는데, ‘바오마’로 바꾸며 대박을 터뜨렸다. ‘사람 중에 여포가 있고, 말 중에 적토가 있다. 보물 같은 말은 영웅에게 주고, 아름다운 꽃은 미인에게 준다(人中呂布 馬中赤兔, 寶馬贈英雄 鮮花予美人)’는 글귀에서 차용한 말인데, ‘영웅호걸이 끄는 차’란 이미지가 각인된 것이다. 벤츠와 BMW는 지난해 개별 판매대수도 현대차(49만여대)와 기아차(21만여대)를 합친 판매대수(71만여대)를 훌쩍 능가한다.

한국과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원래 사명(社名) 자체가 한자에 기반하다 보니 ‘바오마’ 같은 과감한 작명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현대(現代), 기아(起亞), 도요타(豊田), 혼다(本田), 닛산(日産) 등은 원래의 사명을 중국에서 글자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고급차 후발주자로 제네시스의 벤치마킹 모델인 렉서스는 마오쩌둥이 쓴 ‘다시 징강산에 올라(重上井岡山)’란 글에서 따온 ‘링즈(凌志)’란 브랜드를 쓰다가, ‘레이커사스(雷克薩斯)’란 원음에 가까운 중국어 브랜드로 회귀했다. 당초 홍콩, 대만 등지에서 ‘링즈’라는 브랜드로 제법 유명세를 떨쳤는데, 2004년 중국 시장에 공식 진출하면서 브랜드 통일성 유지를 위해 원음에 가장 가까운 중국어 이름을 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이니사이스’란 이름으로 중국에 복귀한 제네시스도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보수적으로 작명한 경우다.

한편 현대차는 중국 최대 고급차 소비시장인 상하이를 중심으로 제네시스 브랜드를 알린다는 전략이다. 2019년에는 베이징의 합작법인 본사와는 별도로 상하이에 ‘제네시스 판매법인’을 따로 꾸렸다. 지난 4월 8일에는 상하이의 옛 프랑스 조계(租界)였던 화이하이루의 홍콩광장 쇼핑몰 1~2층에 중국 내 첫 번째 제네시스 브랜드 체험공간인 ‘제네시스 스튜디오 상하이’도 개관했다. 상하이임시정부 청사와 지척으로 고급 한식을 체험할 수 있는 ‘제네시스 레스토랑’도 들어서 있다.

제네시스의 중국 시장 본격 진출을 앞두고 2019년 12월 벤츠에서 영입한 마커스 헨네 제네시스 중국 법인장은 “G80 전기차 모델의 세계 첫 공개는 중국 시장에 대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의지를 보여준다”며 “제네시스는 대표 모델인 G80와 GV80를 중심으로 중국 고객을 위한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통해 진정성 있는 관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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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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