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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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는 생태계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에서 떨어진 홍시를 먹고, 발에 밤송이가 박히면 아파하는 돼지 ‘옥자’와 그에게 홍시를 던져주고 밤송이를 빼주는 산골소녀 미자의 이야기다. 둘은 벗이자 반려(伴侶)다. 문제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이 둘의 우정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돼지의 몸집을 키우고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시도한다. 산과 골짝이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부로 살던 옥자는 실은 자연이 낳은 산물이 아닌 실험실에서 조작된 변형생물이었다. 공장식 도축 시스템 위에 올려졌을 때 그의 기능은 그램 수와 육질로만 치환된다. 문제는, 옥자의 친구인 미자는 옥자를 소시지로 갈아 만들 의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소녀의 돌진은 두 세계를 충돌시킨다.

동물인가, 동무인가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첫 상업영화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부터 동물을 동물이 아닌 친구로 대해왔다. 한강에 나타난 원인불명의 괴수 이야기를 담은 ‘괴물’에서도, 괴물조차 한 줌의 감정이 있는 생명체로 그려졌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지상파 프로그램 중에서 빠짐없이 보는 건 ‘동물농장’뿐이다”라고 할 정도로 동물의 삶과 생활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옥자’를 대하는 ‘미자’의 태도는 봉준호 감독이 바라는 인간과 동물의 이상적인 관계를 대변한다. 미자 역의 안서현은 오디션을 통해 발탁됐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건, 미자가 옥자를 지켜주는 이야기네요”라고 말해 봉감독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옥자는 미자의 삶의 일부다. 함께 이를 닦고, 함께 잠을 잔다. 멱도 함께 감고, 귓속말도 나눈다. 미자는 옥자를 통해 일신의 영달을 도모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두 소녀는 자연 안에서 함께 성장한다. 미자는 아직 어린 소녀지만,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존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한다. 어리광을 피우거나 떼를 쓰는 대신, 옥자를 되찾기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별하고 행동한다. 자연이 키워낸 아이가 갖는 생존력이다.

미자와 옥자는 결국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서 조우한다. 자본 생태계의 심장부다. 이 자본을 지닌 다국적기업의 CEO 루시 미란도 역은 봉준호 감독과 ‘설국열차’부터 함께한 틸다 스윈튼이 맡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설국열차’에서 총리였던 그의 역할이 ‘마거릿 대처’였다면, ‘옥자’에서 그의 역할은 ‘트럼프’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존재다. 옥자를 손에 넣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면에서 미자와 루시는 닮아 있다. 루시는 자본을, 미자는 자연을 대변한다. 루시는 미자를 이기지 못한다. 루시에게 수퍼 돼지는 수많은 돼지 중 한 마리일 뿐이지만, 미자에게 옥자는 단 하나뿐인 ‘옥자’이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 vs 영화 생태계

흥미로운 점은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가 영화 생태계를 바꾸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에 한국 돈으로 600억원가량의 투자를 받고 만든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영화인가, 아닌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공식초청작이기도 했던 ‘옥자’는 프랑스 현지에서도 “온라인 상영작이 수상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프랑스 극장협회의 입장이 나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와 영화관에서 동시에 개봉했을 경우 “이 작품이 영화 생태계에 교란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옥자’의 상영을 보이콧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국내 대형 멀티플렉스 3사는 ‘옥자를 영화관에 걸지 않기로’ 결정했다.

온라인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전 IPTV 서비스에서는 ‘홀드백’ 장치가 있었다. 개봉작이 극장에서 먼저 상영되고 2~3주 후에 인터넷 TV 등 부가판권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관례다. 넷플릭스는 다르다. 이들은 부가판권 기업이 아니라 직접 콘텐츠를 생산한다. 현재 190여개국에서 1억명의 유료 가입자가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다. 영화 한 편 비용인 9500원 정도면 한 달을 쓸 수 있다.

‘옥자’는 6월 29일 상영관에 걸림과 동시에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된다. 봉준호 감독은 개봉 전 기자간담회에서 “이 논란은 넷플릭스와 극장에 모두 보여주기 위한 내 욕심이었다. 넷플릭스에서 이런 논란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국내 배급사 역시 이런 제 의견에 공감했다. 이번 일을 통해 여러 가지 룰이 다듬어질 것 같다. ‘옥자’가 신호탄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한국 영화 생태계에 하나의 분기점이 된 게 처음은 아니다. ‘살인의 추억’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뒤 만든 ‘괴물’은 한국 영화 사상 네 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천만’이라는 스코어의 숨은 공신은 ‘스크린 독과점’이었다. 당시 전국 상영관 1684개 중 600개가 넘는 스크린에서 개봉했고, 일일 상영 횟수의 43.8%를 기록했다. ‘괴물’ 이후 대형 투자배급사들은 ‘스크린 몰아주기’로 스코어를 만들어갔다.

작은 영화는 물론 작은 영화관도, 독과점의 희생양이 됐다. 단성사, 대한극장, 서울극장, 피카디리 등 소규모 영화관은 충무로의 잊혀진 추억 정도가 됐다. 그런데 ‘옥자’의 멀티플렉스 개봉이 불발되면서, 소규모 영화관들에 관객이 몰리게 됐다. 전국에서 79개 극장 103개의 상영관에서 ‘옥자’를 튼다. 이 때문에 충무로에서는 “옥자가 복(福)자”라는 말도 나온다. 봉준호의 ‘괴물’이 만든 폐해를 봉준호의 ‘옥자’가 해소할 수 있을까. 아니면 ‘옥자’는 앞으로 새로운 정글이 열렸다는 신호탄일까. 한없이 순수한 소녀와 동물의 이야기가 앞으로의 영상 생태계를 어떻게 바꾸어 갈까. 옥자는 다시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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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 조선pub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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