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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197호] 2012.03.12

“사마천 고향 서촌의 명예촌민 매년 3월 제사 참석… 올해도 갈 것”

‘완역 史記’ 본기 2권 낸 김영수 교수

최준석  편집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인터뷰를 하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김영수 전 영산원불교대 교수(1959년생)는 중국 사마천(기원전 145~86년?)이 쓴 사서 ‘사기(史記)’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와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 건물에 있는 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전남 영광의 집에 내려가기 전 시간을 내겠다고 했다. 지난 3월 6일이었다.
   
   김씨는 ‘완역 사기 본기 2권’(알마)을 최근 냈다. 사기 본기 1권은 2010년 12월에 펴냈다. 사기는 ‘본기(本紀)’ ‘표(表)’ ‘서(書)’ ‘세가(世家)’ ‘열전(列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사기 번역본 전체를 15권으로 계획하고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사기’는 정범진 성균관대 중문학과 명예 교수가 1995년에 완역에 가까운 번역본을 7권으로 까치출판사에서 냈고, 최초의 완역본은 건양대 김원중 교수가 2007년부터 모두 6권으로 민음사에서 냈다. 김영수씨의 사기는 사기에 나오는 중국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직접 촬영한 사진도 싣고, 해제를 썼다는 점에서 앞서 나온 한글 번역서와는 다르다. 김씨는 “사마천의 정신이 바로 현장 정신이고, 사기는 그 점에서 다른 사서와 다르다”며 사마촌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중국 산시성(陝西省) 한성(韓城)시 서촌(徐村)에는 15번 갔으며 올 3월 31일 기일에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07년 EBS에서 ‘김영수의 사기와 21세기’라는 프로그램에 32회 출연, 사기를 조직과 경영에 접목시키는 응용역사학 강의로 주목을 끈 바 있다.
   
   - 사기 연구로 국내에선 가장 알려진 분 중 하나다. “하는 분이 없어서 그렇다. 국내에 없다. 현실이 한자문화권에 부끄럽다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연구하는 분이 없다.”
   
   - 중국사를 공부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사기는 읽긴 읽는데, 사기 자체를 놓고 평생 업으로 하는 분은 다섯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특히 젊은층에 없다. 40대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을 보기 힘들고, 전문연구서는 물론 그걸 나처럼 대중서로 풀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마치 내가 대표선수인 것처럼 비쳐진다.”
   
   - 사기로 몇 권의 책을 냈나. “1999년 6월에 ‘지혜로 읽는 사기’를 처음 냈고, 두 번째가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2006년), ‘사기의 인간 경영법’(2007년), ‘리더가 알아야할 모든 것, 사기의 경영학’(2009년 9월),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2010년), ‘사마천의 리더십’(2010년 12월)이 있다. 사기는 완역 두 권이 나와 있고, 전체 15권으로 당초 기획했다.”
   
   - 사기가 중국 역사 연구에서 갖는 위치는. “사기에 내가 ‘절대역사서’라는 별명을 붙였다. 중국에 관찬(官撰)사서 25종이 있다. 정부의 녹을 먹는 학자가 주도적으로 만든 역사책이다. 25사(史)라고 한다. 민국 시대에 만들어진 신원사(新元史)까지다. 이 중 24종은 다 왕조사다.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수서, 당서 등 다 한 왕조만 다룬다. 단대사(單代史)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는 통사이고, 3000년 통사다. 고대 전설 시대부터 사마천 당대까지를 다룬다. 중국사 5000년이라고 하면 이 중 5분의 3을 사기가 담보하고 있다. 이건 안 읽으려야 안 읽을 수 없다.”
   
   - 이번에 낸 책을 보니 ‘사마천도 현장을 확인했듯이 나도 현장에 갔다’라고 나와 있다. “사기가 다른 사서와 구별되는 첫 번째는 앞에서 말한 대로 단대사가 아니고 통사라는 점이고, 두 번째가 현장 정신이다. 사마천은 스무 살 때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 요즘으로 하면 배낭을 짊어지고 한 3년 정도 천하를 여행한다. 역사학자가 되려면 책만 봐서는 안되고 현장을 찾아가야 한다고 아버지가 말했고, 사마천은 이에 따랐다.”
   
   - 그게 기록에 나와 있나. “자서전에 나와 있다.”
   
   - 사마천이 자서전을 남겼나. “사기 전체 130권 중 마지막 제130권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가 바로 자서전이다. 자서전 부분에 사마천의 천하유력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사기 곳곳에도 자기가 현장을 탐방했다고 한 대목이 한 20여군데 나온다. 가보니, 내가 누구를 만나봤더니 하는 표현이 나온다. 그 현장 정신에 따라 나도 사기의 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태사공자서에는 사마천의 집안 내력과 저술 과정, 사기 129권의 간략한 요약이 들어있다. 그렇게 본다면 태사공자서는 이 책의 서문 격이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앞으로 빼냈다. 본기 1권에 집어넣어 놨다. 원서의 순서를 뒤바꿨기 때문에 욕을 많이 얻어먹을 줄 알았는데, 그것에 대해 아직까지 시비는 없다. 사마천이 맨 뒤에 자기 기록을 쓴 건 겸손에서 나온 거다.”
   
   - 중국을 몇 번이나 다녀왔나. “1996년부터 시작해서 2010년을 고비로 100번을 돌파한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세는 게 무의미해서 안 센다.”
   
   - 그중 사기와 관련된 중국 방문은. “거의 다 관련이 되어 있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또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다른 답사 프로그램으로 가더라도 사기 현장을 집어넣는다. 사기 완역 착수를 계기로 해서 집중적으로 현장을 다니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 사마천의 고향이자 무덤이 있는 서촌에는 몇 번이나 갔나. “15번은 갔다.”
   
   - 처음 간 건 언제인가. “1998년에 처음 갔다. 그때는 사당과 무덤만 보고 왔다. 1999년에 두 번째로 갔다. 첫 번째 책을 탈고해 놓고 사마천의 사당과 무덤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갔다. 그해 비가 많이 왔다. 고향은 산시성 한성시 서촌인데, 처음 갈 때만 해도 시안(西安)에서 비포장도로로 10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고속도로를 타고 세 시간 걸린다. 근데 서촌의 사마천 사당과 무덤 들어가는 길이 끊어졌다. 마을버스가 들어가지 못해 입구부터 걸어서 갔다. 그래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 무슨 말씀인가. “마을 입구에서 걸어가면서 촌장님 안내를 받았다. 이때 충격을 받고 사기와 사마천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 충격 내용은. “사마천 후손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사마천의 후손이 사마씨를 쓰지 않고 성을 바꿨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가 처음 알았다는 건 국내에서도 처음 알았다는 얘기다. 사마천 후손은 성을 동(同)씨나 풍(馮)씨로 바꿨다. 사마(司馬)란 글자를 나눠 사(司)자 옆에 작대기를 붙여 동(同)씨로 하고, 마(馬)자 옆에 두 이 변을 붙여 풍(馮)씨로 바꾼 거다. 사마촌 후손들은 사마천이 나중에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처형당했다고 믿고 있다.
   
사마천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나도 사인 불명이라고만 했다. 사마천 고향에 가서 후손들을 만나 동씨, 풍씨 얘기를 듣고, 5년간 샅샅이 뒤져 취재를 하면서, 사마천 후손들이 성을 바꾼 건 사마천이 처형을 당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동네 이름도 재미있다. 왜 서촌(徐村)일까. 서(徐) 자를 파자 하면 두 이 변에 남을 여다. 즉 ‘동씨와 풍씨만 남아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내가 공부를 지금까지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번째 책을 내고 두 번째 책을 내는 데 7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그동안 영광의 영산원불교대학 교수 일을 그만뒀다. 5년 정도 했는데 2004년쯤에 그만뒀다. 도저히 학교일과 사기 공부 두 가지가 동시에 안 돼서 이쪽으로 전력 투구하기로 정했다. 그 결과 2006년에 나온 두 번째 책이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다.”
   
   - 여러 사람이 사기 번역을 했는데, 이번 책은 어떻게 다른가. “그간 다른 사기 완역본이 나온 뒤 세대도 달라졌고, 아이폰·아이패드 세대를 염두에 둘 때 좀 다른 콘셉트의 책이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사마천의 현장 정신을 살린 책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과감하게 본문에 사진과 지도를 집어넣는 파격을 시도했다.
   
   또 하나는 한글세대를 위해 원문 번역을 한글로 했다. 한자 원문을 본문에 집어넣지 않았다. 한글 세대들의 가독성을 해칠 필요는 없겠다 싶어 본문을 100% 한글로 했다. 또 하나는 해제다. 사기가 인지도는 높은데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CEO 필독서 100권, 50권 중에 반드시 들어가는데 지금까지 완독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 일반인 중에서 완독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말씀인가. “매니아 중에서도 완독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특히 전공자들도 완독하기가 상당히 힘든 책이다.”
   
   - 사기에 대한 느낌, 어떻게 살 것인지 처세술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분적으로는 맞다고 본다. 열전의 내용을 발췌한 책이 그런 내용이다. 처세법이 사기에 많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 전체를 읽고 나면 그게 아니었구나를 알게 된다.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또 한 조직이나 한 나라의 리더가 되기 위한 덕의 문제를 사마천은 굉장히 깊게 다루고 있다.
   
   특히 훌륭한 인품과 자질을 갖고 있음에도 리더를 잘못 만났거나 세상을 잘못 만난 경우에 대한 강한 연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통계에 따르면 사기 등장 인물 중 주인공급이 200명이고 이 중 120명이 비극적이다. 젊은날 큰 홍역, 역경을 겪었다거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분석 중이지만 자살 대목이 한 200군데 나온다.”
   
   - 사기로 학위를 했나. “원래 한·중관계사가 전공이다. 1992년 박사과정 수료하면서 중국 쪽으로 전공을 완전히 바꿨다. 그해 한·중 수교가 됐다.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보니 중국을 쉽게 봐서도 안되고, 제대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위와 교수를 포기하고 중국 쪽으로 전공을 바꿔버렸다.”
   
   - 학위를 안 했나. “수료만 하고 학위는 안 받았다.”
   
   - 쉽지 않은 결정인데 “센세이셔널했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없던 일이니까.”
   
   - 그러고 나서 뭘 했나. “호구지책으로 중국어 번역을 했다. 나는 원래 번역가로 유명하다. 그러면서 사기를 공부했다.”
   
   - 사기를 잡은 건 언제부터인가. “석사 때인 1987년부터다.”
   
   - 한·중관계사를 공부할 때인데 왜 사기를 읽었나. “우리 고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누가 됐든 간에 사기를 봐야 한다. 사기 130권 중에 ‘조선열전’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고조선 멸망사이다. 조선열전은 사마천의 당대사다. 사마천 당대에 조선이 망했다. 사마천의 나이 36세 때다.”
   
   - 몰랐다. “기원전 109년에 한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해서 기원전 108년에 조선이 망한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태어난 분이다. 중국의 어떤 학자는 사마천이 조선 원정에 종군했을 것이라고 한다. 군대를 따라갔기에 고조선 멸망사 기록이 생생하다고 주장한다. 사기에는 흉노열전도 있고, 조선의 대외관계를 보려면 이 흉노열전도 읽어야 하고, 이렇게 야금야금 (사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쓴 사람 사마천이 궁금해졌다. 박사과정 때는 사마천에 매료된 상태로 지냈다.”
   
   - 집필을 위해 시골에 사는지. “물가가 비싸 서울에 못 온다. 내 생활은 대기업 강의, 집필, 중국 딱 세 개로 나눠져 있다.”
   
   - 오늘 올라오신 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표준협회 주관으로 조찬 강의가 있었다. 표준협회가 작년에 12주 사기 강좌를 만들어줬다. 사기만 가지고 12번 강의한다. 국내에선 처음이다. CEO나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하며 수강료는 450만원이다. 비싸다. 대신 중국 여행이 포함되어 있다. 사마천 고향, 주로 시안에 간다. 올해는 4박5일로 잡혀 있다.”
   
   - 사마천 고향에는 또 언제 가나. “사마천 제사 때 가야 한다.”
   
   - 제사는 언제. “청명절에 대개 한다. 식목일 전주 토요일이다. 3월 31일에 정식 제사가 있고, 30일 전야제가 있다. 1박2일간 행사가 열린다. 몇 년 전부터 행사에 참석해 왔다. 명예촌민이어서 가야 한다. 몇 번 참석해서 안 가려고 했더니 안된다고 꼭 와야 한다고 해서 간다.”
   
   - 서촌의 규모는. “한성시가 약 40만이다. 그중 서촌 인구는 1만명도 채 안된다.”
   
   - 평야지대인가. “논농사는 없고, 주로 밭농사를 짓는다. 사과가 많이 나고. 화초라고 중국 음식에 후추처럼 입에 넣으면 마비가 되는 향신료가 있다. 화초의 전 세계 생산량의 40%가 이곳에서 난다. 황토고원지대다. 순 황토, 가장 전형적인 중국 시골이다.”
   
   - 사마천이 그곳에서 태어났나. “태어나고 죽은 동네다. 19살 때 시안으로 아버지를 따라갔고, 살기는 대개 시안에서 살았다.”
   
   - 제사는 국가 차원의 행사인가. “제사가 갈수록 성대해진다. 초창기에는 조촐했다. 제사 때 북 치고 꽹과리 치고 논다. 그쪽에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사마천이 처형당했다고 믿기 때문에, 죄인이기 때문에 제사를 몰래 지냈다. 관의 감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명절에 사당과 무덤을 청소한다는 명분으로 꽹과리 치고 놀다가 얼른 다른 쪽에 위패를 모신 곳에 가서 잽싸게 제사를 치르고 또 꽹과리를 치고 놀았다고 한다.”
   
   - 제사 때 사람들이 얼마나 모이나.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다. 지금은 아주 성대히 치른다. 16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연다. 2년 전 제사 행사 자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고향이 사마천 고향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산시성 부평(富平), 중국말로는 후핑인데, 가깝다. 사마천 고향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사마천 고향에 가다 보면 부평 팻말이 붙어 있다.”
   
   김 전 교수는 중국 산시성 한성시 사마천학회 회원이고, 서촌명예촌민이다. 그는 2007년 1월에 서촌을 방문해 명예촌민증을 받았고, 이곳에 사마천장학회를 만들었다. 저술한 책의 인세 10%는 사마천 후손 장학금으로 나간다. 5년 사이에 장학금을 받고 공부해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두 명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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