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photo 이진한 조선일보 기자

“팔리어(語) ‘니까야’의 내용을 ‘니까야’로 풀어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다가서려 노력합니다.”

지난 2월 14일 서울 남산 대원정사에서 열린 초기불교 경전 공부모임 ‘해피설법회’. 우리나라의 남방불교 승단인 ‘한국테라와다불교’의 해피(解彼·53) 스님은 TV에서 보던 베트남·미얀마 승려들처럼 붉은 승복을 입고 있었다. 둥글둥글한 인상에 사람 좋은 미소와 달리, 스님이 쓰는 단어들은 처음엔 무슨 수수께끼처럼 들렸다. ‘팔리어’는 뭐고 ‘니까야’는 또 뭔가.

팔리어는 2600년 전 석가모니가 살던 인도 지역의 서민 언어다. 부처는 더 많은 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귀족 언어 산스크리트어(梵語)가 아니라 팔리어로 설법했다. 구전되던 부처의 가르침은 수백 년 뒤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에서 각 나라 문자로 기록한 경전으로 남았다.

이렇게 전해진 팔리어 경전은 크게 다섯 개의 ‘니까야(部)’로 나뉜다. 긴 설법을 담은 ‘디가 니까야(長部)’, 중간 길이 설법을 담은 ‘맛지마 니까야(中部)’, 주제별 모음인 ‘상윳따 니까야(相應部)’, 주제의 갯수별 모음인 ‘앙굿따라 니까야(增支部)’, 분류되지 않은 나머지 가르침들의 모음 ‘쿳다까 니까야(小部)’. 한국에도 초기불전연구원 이사장 대림 스님과 지도법사 각묵 스님, 또 ‘한국 빠알리(팔리) 성전(聖典)협회’ 회장 전재성 박사 등의 노력으로 최근에야 한글 번역본이 출간됐다. 설법회 참가자들은 이 초기불교 경전 ‘니까야’를 직접 공부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북방 대승불교의, 니까야와 내용이 유사한 경전이 ‘아함경(阿含經)’이다. 아함경은 산스크리트어 경전이 중국으로 건너와 한문(漢文)으로 번역됐다. 아함은 전체 네 묶음으로 구성돼 다섯 묶음으로 구성된 니까야와 다르고, 각각에 포함된 경(經)의 숫자에도 차이가 있다. 또 대승불교에서는 별도로 성립된 범어 경전에서 한역된 것으로 여겨지는 금강경, 법화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시(輕視)당했다. 초기불교에 밝은 한 스님은 “아함은 북방으로 전해진 초기경(經), 니까야는 남방으로 전해진 초기경이라 할 수 있고, 둘은 약 80% 정도 비슷하다. 다만 아함은 한문으로 축약 번역됐고, 범어 원본이 대부분 사라져 대조 연구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한역(漢譯)되면서 원전과 달라진 부분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한자로 된 경전만 보면 팔정도의 ‘정념(正念)’을 ‘바른 기억 혹은 생각’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니까야를 보면 ‘정념’이 초기불교 수행법의 근본 개념 중 하나인 ‘사띠(sati)’, 즉 ‘바른 마음 챙김 혹은 알아차림’에 해당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학계에선 니까야 역시 새로 취사선택되고 편찬된 부분이 있다고 보지만, 초기불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니까야가 부처가 직접 설법한 그대로의 내용에 가장 가까운 기록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부처의 직접 설법을 듣는 기쁨

한국 불교계에 팔리어 초기불전(佛典)과 수행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19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인도나 남방불교 성지 순례가 일반화되면서부터다. 하지만 한국 불교의 주류가 아닌 탓에, 초기불전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마땅치 않다. 2년 전부터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주 1회 6개월 과정으로 진행하는 ‘해피설법회’는 기초부터 탄탄하게 초기불전을 배우는 많지 않은 강의 중 하나다. 수행과 공부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2시간, 경전 강독으로 또 2시간 이상 진행하는 강행군을 마치면 한자와 팔리어 단어들이 칠판에 빼곡히 적힌다. 서울에서 6기, 대구에서 2기가 진행되는 동안 100여명이 함께했다. 팔리어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여러 해석이 가능한 한자 경전과 달리, 팔리어 경전은 뜻이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서 이해가 오히려 쉽고 빠르다” “부처가 직접 말한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한다.

해피 스님의 해피 설법회는 특히 1600여년 전 쓰여진 ‘청정도론’ 같은 유명한 니까야 주석서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팔리어 경전을 직접 종횡무진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스님은 “주석서 의존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앞서간 스승들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라고도 했다. 결국 “니까야로 니까야를 풀어내겠다”는 말은 “오직 부처의 말로 부처의 말을 풀고 이해해 그 본질을 만나겠다”는 야심찬 시도인 셈이다.

“불교 공부란 ‘바로 봄’을 통한 행복 찾기”

석가모니 부처는 상황에 따라 필요한 가르침을 전했다고 한다. 병이 있는 곳에 약을 쓰는 ‘응병용약(應病用藥)’식 설법이다. 스스로 자신의 말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적도 없다. 해피 스님은 “그래서 경전을 꼼꼼히 톺아보며 이 경전과 저 경전의 말씀을 연관지을 수 있어야 부처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디가 니까야’ 32번째 경(經)에서 ‘오계(五戒)를 지키고, 보시(布施)하고, 수행하는 것이 3가지 공덕행’이라고 말합니다. 계(戒)를 지키는 목적이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설명됩니다. 계(戒)를 지키면 방탕하지 않으니 큰 재물과 명성을 얻는 등의 이익이 생긴다는 점은 ‘디가 니까야’의 16번째 경에서 설명되고요. 오계를 지키면 현명한 자, 어기면 어리석은 자가 된다는 결과는 ‘맛지마 니까야’의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에 자세히 설명돼 있습니다.”

승복 복식뿐 아니라 점심 한 끼만 먹는 오후불식 등 부처님 시대로부터 보존돼온 남방불교 계율을 그대로 따르지만, 스님은 본래 우리나라 사람이다. 강원도 원주 태생인 스님은 국립대 공대를 나와 번듯한 대기업의 직장인으로 10년 넘게 근무했고 결혼해서 1남1녀 자녀까지 뒀었다. 하지만 청년불교운동을 했던 젊은 시절부터 중년이 되기까지 오랜 재가 불자의 삶을 사는 동안, 출가 수행자의 삶에 대한 동경이 식지 않았다. 결국 가족의 동의를 얻어 혼인관계를 정리하고, 6년 전 경남 김해의 초기불교 수행처 ‘반야라마’에서 머리를 깎았다.

인터넷 카페·SNS 통해 초기불교 전파

출가 법명은 ‘뿐냐디빠’. 팔리어로 풀면 ‘공덕으로 섬을 삼으라’는 뜻이다. 고(苦)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지 말고, 스스로 공덕을 실천함으로써 발 디딜 섬을 만들어 행복해지라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하지만 평소엔 어려운 팔리어 법명 대신 ‘해피(解彼)’라는 별명을 쓰고, 자신이 쓴 글에는 ‘해피(解彼) & happy’라는 서명을 남긴다. 스님은 “해피(解彼)의 뜻을 풀면 ‘대상을 바로 봄’, 즉 정견(正見)”이라고 했다. “정견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팔정도(八正道) 수행의 시작이고, 그 결과는 행복입니다. 그러니 이 이름엔 불교 공부란 결국 ‘해피(바로 봄)’로 시작해서 ‘해피(happy)’로 맺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말했다’고 하셨다”며 “불교 공부란 결국 내 마음을 바로 보고 행복해지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스스로 괴로움을 향해 나아갈 것이냐, 아니면 행복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갈 것이냐 하는 이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는 쪽으로 계속 마음을 일으키면 그 마음이 몸과 말의 행위로 이어져 내 삶도 행복을 향해서 기웁니다. 자신의 삶을 행복한 방향으로, 해탈로 열반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니까야는 그 지침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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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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