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대구에 안착한 후 네 번째 맞이했던,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무더운 여름도 다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한 아침이 하루를 열어줍니다. 높이 올라간 하늘, 서서히 변하고 있는 나뭇잎들의 색깔과 차츰 다정하게 느껴지는 긴소매 옷들에서 기다리던 계절이 왔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맘때가 되면 오히려 별빛이 후두둑 떨어지던 여름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어머니가 주시던 상 위의 음식들이 생생해지는 것은 아마 오래전 이 계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 속에 간직되어 있는 사건들과 그와 함께 연루된 음식이 주는 맛이 기억 저편으로부터 그때의 시간이 되면 추억의 표면으로 올라오게 되나 봅니다.

우리집 마루는 아직 어린 날의 나에게는 꽤나 널따랗습니다. 그 널따란 마루에 상을 펴서 불고기나 돼지불고기, 막 무쳐낸 무생채, 쌈장, 강된장, 상추, 찐호박잎을 어머니는 여름날 한 끼로 주시곤 했습니다. 상추쌈을 먹고 나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유독 잠이 잘 오던 것에 관해서는 나이가 들어서 내 직업과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좀 알게 되었습니다. 상추에는 ‘상추 아편’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락튜카리움이라는 성분이 있고 이것에 진정과 진통 효과가 있어서 졸음을 오게 합니다. 이 성분은 안정제나 기침약 시럽에도 들어가 있습니다. 고기를 먹을 때에 상추쌈이나 호박잎쌈으로 먹는 것은 두 재료가 각기 산성과 알칼리성이어서 상호보완하므로 섭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한참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날의 내가 상추쌈을 즐겨 먹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자주 맛보지 못하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불고기나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무쳐서 연탄불 위에 올려 놓고 석쇠로 구워낸 감칠맛의 돼지불고기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툭툭 쳐서 겉에 묻어 있는 물기를 털어낸 상추나 잘 쪄진 호박잎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리밥 혹은 갓 지은 하얀 쌀밥을 조금 올리고, 심심하고 아삭거림이 살아있는 맵지 않은 무생채를 올렸습니다. 그 위에 무엇을 넣어서 만드셨는지 모르지만 소박한 가운데 풍요로운 쌈장과 호박과 무 등 온갖 야채를 넣어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함께 있던 자박한 강된장을 조금씩 올려서 어린 아들의 작은 입에 넣어주셨지요. 나는 쌈 하나를 다 먹은 후 말갛게 끓여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한 콩나물국을 한 숟갈 입에 넣어 입안을 새로이 한 후에 어머니가 주는 쌈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때로는 어머니의 욕심이 과해서 내 입안에 다 들어가지 못할 크기의 쌈을 주시면 찢어질 만큼 입을 벌려 한입에 넣고 힘들어했던 기억도 납니다. 커다란 쌈을 작은 입으로 열심히 우걱우걱 먹으면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식사 후 가끔 주시는 수박 한두 덩어리까지 먹고 나서 나는 볼록해진 작은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마루에서 잠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철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불고기나 돼지불고기가 있어야만 상추쌈을 먹었습니다. 고기가 없으면 쌈이 맛없다고 투정부리던 어린 아들이 얼마나 야속했을까요.

그후로도 불고기 없이 쌈을 한 끼로 내시면 어머니는 괜스레 미안해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도 까탈스럽던 사춘기 시절의 나는 때로 고기 없는 상추쌈이나 호박잎을 보게 되면 무뚜뚝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인상을 쓰면서 마치 선심 쓰듯 그런 밥상을 받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 얄미운 내가 지금도 거울을 보듯 보입니다.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결혼을 한 후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내가 상추쌈과 강된장이 먹고 싶다고 하자 이내 환한 미소를 얼굴에 지으시며 며느리의 도움도 필요치 않다고 하시며 분주히 차려서 내주시고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셨던 것도 기억납니다.

철없던 내가 장가를 들어 첫아이를 갓 낳고는 공부를 한답시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일 년에 겨우 두 번 어머니께 인사 드렸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엔 박사 후 연구과정을 위해 바로 미국 서부로 갔습니다. 그러던 2000년 추석 전날 어머니는 젊어서 얻은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채 몇 년 동안이나 고생을 하시다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살아생전 끔찍이도 사랑해주셨던 아들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는 것도 보지 못하신 채 마음속에 자식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만을 가득 채우시고 돌아가셨을 어머니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한국을 떠날 때 누워계신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며 인사드렸던 어린 두 손자 녀석은 직장을 가질 정도로 의젓하게 성장했는데, 그 손자들이 커가는 것도 못 보시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상추쌈과 함께 많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다시 왔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어릴 적 상추쌈을 주실 때 고기가 없다고 투정부리며 속 썩여드린 것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나는 상추쌈에는 고기를 넣지 않고 채소 등만을 담아서 먹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상추에 강된장이나 쌈장만으로 밥상을 차려주셔도 감사하게 먹을 것입니다. 아니, 다시 뵐 수만 있다면 어릴 적 내게 주신 것과 꼭 같은 맛있는 쌈을 싸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입안에 넣어드리고 싶습니다.

이 가을엔 경주에 있는 쌈밥집에라도 가봐야겠습니다. 아니, 어머니 흉내라도 내기 위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무생채도 만들고 강된장이라도 만들어봐야겠습니다. 가을에도 상추쌈을 먹고 싶습니다.

곽준명 대구경북과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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