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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파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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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33호]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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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아브라함의 고향 우르파가 던진 질문

▲ 우르파의 아브라함 호수. 신의 도움으로 탄생한 평화와 안전의 성역이다. 자신의 죄를 씻는 침례의식도 아브라함 호수에서의 일상적 풍경 중 하나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물은 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양식 장아찌를 뜻하는 피클(pickles)은 최근 발견한 필자의 새로운 우주다. 김치도 피클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상, 한국인에게는 일상적 영역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즐기는 장소와 재료에 따라 기준 아니 기분도 달라진다. 인류 역사상 피클이 최초로 탄생한 피클 원조 지역에서 피클로 담근 신선한 채소들을 먹으면 그렇다. 바로 메소포타미아다. 식초나 소금에 절여 먹는 피클은 전 세계 어디에 가도 있다. 각자 자기 지역을 원조라 부르고 싶겠지만, 인류 최초의 피클 탄생지는 기원전 2500년 메소포타미아 티그리스강 주변이라고 한다. 오이 피클이 첫 번째였다. 이후 각종 뿌리식물들이 피클 소재로 활용돼 왔다.
   
   피클은 터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머문 지 3개월 만에 새삼 발견한 기호식품이다. 전문가들은 식초를 사용한 보존음식은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차원에서도 효능을 발휘한다고 얘기하는데 경험상 그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5L짜리 플라스틱 물통을 반으로 잘라 그 속에 10여 종류의 피클을 들고 다니며 여행 중이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치아에 선명하게 씹히는 표면이 단단한 재료로 담근 피클을 선호한다. 껍질이 두껍지 않으면서 식감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채소가 이상적이다. 한국 채소 맛과는 전혀 다른 메소포타미아 피클의 특징이기도 하다. 태양으로 단련된 메소포타미아 채소는 그 어떤 지역의 채소보다도 강하고 튼튼하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는 대략 9월부터 피클을 본격적으로 저장하기 시작한다. 여름철 오이부터 시작되지만, 딱딱한 뿌리채소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채소가 포함된다. 양파, 연근, 고추, 배추, 무, 비트, 가지, 매실, 홍당무는 피클의 주 재료들이다. 메소포타미아 피클의 핵심은 자연산 식초에 있다. 소금 피클은 거의 없다. 물론 방부제를 쓰지 않는, 집에서 만든 피클이 주류다. 가내 생산 피클은 공장에서 생산된 피클보다 가격이 거의 절반에 불과하다. 메소포타미아 시장 어디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종류 불문하고, 1㎏에 대략 2000원 정도다. 종류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먹어도 1주일에 5000원 정도면 충분하다. 11월의 메소포타미아 날씨는 한국의 3월 날씨와 비슷하다. 밖에 그냥 놔둬도 식초에 산화된 피클의 식감이 차가운 바람에 적당히 익어간다.
   
   
   메소포타미아 피클 찬가
   
   놀랍고도 신비하지만, 원조 메소포타미아 피클은 지금도 수천 년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다. 과장하자면 2020년 11월 먹는 오이 피클이 4000년 전 티그리스강 주변에서 먹던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무슨 증거가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굳이 답을 들자면 식초다. 식초는 4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맛이 똑같다. 당연하지만, 메소포타미아는 인공이 아닌 자연산 식초로 피클을 담근다. 채소의 맛도 4000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클은 인류 유전자 속에 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의 구체적인 지혜와 노력이 깃든 간이 보존 음식이라 볼 수도 있다. 미식사 차원의 얘기로 확장하자면, 원조 메소포타미아 피클을 통해 맛과 멋 그리고 인류의 음식사까지 거론할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피클을 매일 즐기면서 알게 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혈관 청소에 좋다는 피클인 비트의 역할이다. 비트는 핏빛 뿌리채소로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먹는 비트는 한국의 겨울 총각김치에 준하는 식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달고 깊은 맛을 내는 비트는 다른 피클들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공통 연출자’의 역할도 한다. 수많은 피클을 구입할 때 행해지는 최종 포장이 비트 식초로 끝나기 때문이다. 봉지를 묶기 직전, 붉고도 평화로운 비트 식초를 다른 피클에 넣는다. 따라서 피클의 대부분은 붉은 비트 식초 속에서 보존된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비트의 붉은 식초를 ‘부활’ ‘탄생’으로 해석한다. 바로 피(血)를 연상하기 때문이다. 혀를 즐겁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일을 약속하는 재생 음식이 비트로 만든 붉은 식초 속의 피클이다.
   
   장년으로 접어들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원류’ ‘원조’ ‘원작’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다. 20세기 들어서자마자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하더니, 최근에는 ‘뉴노멀(New Normal)’이 표류한다. 무조건 뒤집어엎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방계’나 ‘아류’가 시대의 대세라고나 할까? 뉴노멀을 지지하느냐 여부를 떠나, 또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것에 새삼 매달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말부터 하고 싶다. 첨단을 달리는 듯한 지식인이 던지는, ‘세상을 품으라’는 식의 거창한 화두에 맞설 자신이 없다. 일찍 일어나고, 방안 청소부터 깨끗이 하자는 식의 기본이 더 절실하다. 뉴노멀은 노멀에 대한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원리주의자라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원류에서 벗어날 경우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버블로 떠돌다가 허망하게 사라진다. 싫든 좋든 노멀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항상’ 존재해왔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메소포타미아 피클 하나를 통해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피클의 의미와 가치를 평가, 분석, 음미해 볼 수 있다. 원류, 원조, 원작이 갖는 힘이다.
   
   
▲ 우르파에서 발견된 2세기 고대 로마 당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세계 최초의 예수 모자이크상. 이슬람 나라지만 예수에 대한 존경은 마호메트에 준할 정도로 크다.

   1만1000년 전 탄생한 선지자의 도시
   
   1만1000년 전 탄생한 메소포타미아 고대도시 우르파(Urfa)는 피클에 대한 생각의 연장선에 들어선 공간이다. 원류, 원조, 원작으로서의 역사적 무대다. 인류 최초의 일신교 사상을 확립한 선지자인 아브라함 성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르파란 지명은 원래 ‘선지자의 도시(City of Prophets)’에서 유래한 말이다. 현재 터키는 우르파를 산리우르파(Sanliurfa)란 이름으로 개명한 상태다. ‘위대한 우르파’란 의미지만, 현지인 대부분은 그냥 ‘우르파’라 부른다. 원조의 운명이 그러하듯, 이라크나 이란에도 아브라함 고향으로 불리는 도시들이 있다. 넓게 보면 우르파는 소년 아브라함이 남긴 수많은 여행지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아브라함은 ‘우주의 신은 단 하나’라는 사실을 최초로 설파한 인물로 통한다. 현재 전 세계 일신교를 대표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원류, 원조, 원작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당연하지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가 추앙하는 ‘신에 버금가는 인간’이 바로 아브라함의 위상이다. 가톨릭,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가 서로 뼛속까지 증오하는 상극 관계라고 하지만, 아브라함 앞에 가면 모두 조용해진다.
   
   터키 아나톨리아 동쪽 끝에 위치한 고도(古都) 우르파는 그 같은 세계 3대 종교의 핵심 성지다. 보통 예루살렘을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공동성지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류, 원조, 원작이란 측면에서 보면 우르파의 격이 한층 더 높다. 아브라함은 기독교 예수와, 이슬람 마호메트의 선조다. 둘 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다. 생존 연대는 기원전 1996년부터 기원전 1821년까지 125년에 달한다. 예수가 탄생하기 2000여년 전, 마호메트가 나타나기 2700여년 전의 인물인 셈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파는 그 같은 역사를 보듬은 인류 성지의 최고봉에 해당하는 곳이다. 피클로부터 얻은 교훈이지만, 아브라함의 흔적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인류 종교사와 정신사의 정수를 파악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선지자 아브라함이 보여주고 남긴 일신교의 원류, 원조, 원작은 무엇일까?
   
   우르파는 최근 지진이 일어난 터키 이즈미르(Izmir)에서 동쪽으로 1300㎞ 떨어진 곳에 있다. 내전 중인 시리아 북쪽 국경에서는 약 100㎞ 정도 벗어나 있다. 찾아가려고 작정하지 않는 한 들르기 어려운 오지다. 그러나 현재 인구가 무려 200만명에 달한다. 여러 민족이 모여 살던 인류 최초의 코스모폴리탄이라는 성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터키의 도시라고 하지만, 우르파의 거주민은 쿠르디스탄, 시리아, 이란, 아르메니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유대인도 공존하고 있다. 낭만파 시인 바이런도 너무 어려워 배우지 못했다는 아르메니아 고유의 알파벳이 탄생한 곳도 우르파다.
   
   
▲ 잉어는 아브라함 호수에서 탄생한 신의 선물로 통한다. 메소포타미아인에게 잉어는 생존·번영·부활의 의미로 풀이된다. 좋은 일을 기억하거나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때 잉어 요리가 등장한다.

   숱한 문명이 거쳐간 코스모폴리탄
   
   우르파는 유프라테스강에서 80㎞ 떨어져 있다. 9000년 전 집단거주를 통한 인류의 농업혁명이 일어난 곳이 우르파 주변이다. 인류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 문명의 주인공들이 전부 우르파를 거쳐갔다. 수메르,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아르메니아, 몽골, 로마, 비잔틴, 아랍, 그리고 터키가 주인공이다. 고고학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우르파 하나만으로도 인류 역사 전체를 가늠할 수 있을 듯한 공간이다. 아브라함의 흔적은 그 같은 인류 역사의 중심에 들어선 핵이라 할 만하다.
   
   종교의 문외한이라도 아브라함이란 이름은 어디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유년기 필자에게 아브라함의 이미지는 너무도 잔인한 인간, 그 자체였다. 자식을 재물로 바치려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신의 명령에 따라, 99살에 얻은 자식 이삭을 죽인 뒤 신에게 바치려 했던 인물이 세계 3대 종교가 모두 추앙하는 선지자다.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고대 시대로 돌아가면 달라진다. 인간의 목숨은 신에 귀속된, 잠시 이승에 머물다 가는 나그네에 불과했다. 욕(欲)으로 채워진 현세의 즐거움은 불경스럽고도 주제 넘치는 망상에 불과하다. 신으로부터 출발한 인간을 다시 신에게 바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성스러운 행위다. 그러나 그 같은 ‘고결한 생각’을 자신의 자식에게 적용한 인간은 거의 없다. 남미의 경우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도 이뤄졌다고 하지만, 역사서를 통해 필자가 기억하는 인물은 아브라함과 고대 그리스의 아가멤논 왕에 그친다. 기원전 13세기, 아가멤논은 트로이 공격에 앞서 자기 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여 신에게 바친다. 아킬레스와의 결혼을 핑계로 불러들인 뒤 행한 잔인한 행적이다. 신은 이피게네이아의 피를 받아들인 뒤, 아가멤논을 돕는다. 그리스 연합함대가 트로이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바람이 신의 보상이다. 아가멤논의 트로이 공략은 자식의 피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아브라함은 아가멤논보다도 700여년 전 인물이다. 아가멤논과 달리, 자식인 이삭을 죽이려다 신의 제지로 미수에 그친다. 자식의 피라도 마다하지 않을 의지를 보이자, 신이 나서서 중단시킨 것이다. 이삭을 대신해 어린 양의 피가 신에게 전해진다. 이후 인간재물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은 아브라함의 일신교 사상에서 사라진다.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재물에 관한 최후의 반면교사로 등장한 인물이 아브라함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브라함과 아가멤논의 행적을 비교해 보면, 문화·문명사적 우위가 확실히 갈라진다. 4000여년 전 아브라함은 인간재물을 중단했다. 그러나 3300여년 전 아가멤논은 아직도 딸을 인간재물로 바쳤다. 아브라함은 성(聖)과 영(靈), 즉 인류 종교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아가멤논은 성(聖)은 물론 속(俗)의 가치에도 주목한 고대 그리스 정신의 출발점에 선 왕이다. 인간재물을 없앤 인류 문화·문명의 비약적 진보는 아브라함이 700여년이나 앞서 있다. 늦게 본 자식을 죽이려 한 늙은 아버지가 아니라, 결국 이삭 이후부터는 인간재물 의식을 영원히 금지시킨 선지자가 아브라함의 진짜 모습이다. 21세기 기준에서 보면 일신교의 폐해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그러나 일신교의 출발점인 아브라함이 보여준 400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면 달라진다. 신을 위한 의식용 재물로 동물처럼 살육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품과 격을 지키도록 도와준 ‘인류 보호의 수문장’이 일신교가 갖는 의미이자 역할이었고 볼 수 있다.
   
   
▲ 우르파 아브라함 탄생지로 통하는 동굴 입구의 문. 어둠에서 태어났지만 밝은 세상으로 나갔다는 것이 동굴 출생이 갖는 은유적 의미다.

   우르파 가축시장의 도살
   
   고도 특유의 기운은 우르파에 도착하는 즉시 느낄 수 있다. 시내 한복판이라고 들어왔는데, 구석기 시대 거주지인 동굴 암벽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때마침 양, 염소, 닭들로 북적이는 가축시장도 열리고 있었다. 시장 한구석에서 즉석 도살도 행해진다. 곳곳에서 마주쳤지만, 도살되기 전 양의 모습은 너무도 침착하고 조용하다. 죽음을 위해 태어난 순결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날카로운 칼이 목을 파고들 때까지 그 어떤 저항이나 두려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안기듯 도살자의 품에 들어가 한순간에 생을 끝낸다. 최후의 비명이 터져 나오지만, 이미 대지는 양의 피로 적셔지고 있다. 이삭을 대신해 왜 아브라함이 양을 재물로 바쳤는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무대가 우르파 가축시장이다.
   
   성지순례지로 우르파를 찾는 사람의 필수 방문지는 두 군데다. 아브라함이 태어났다는 동굴과, 현지 권력자의 미움을 사서 화형을 당하기 직전에 구원된 아브라함 호수다. 우르파를 내려다보는 암벽 성곽 바로 밑에 들어선 성지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지만, 동굴은 현재 이슬람사원(Mevlid-i Halil)의 관할하에 유지되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지로도 유명하지만, 실질적인 지배자는 이슬람이다. 호수는 화형에 처해지던 아브라함을 도우려 신이 내린 물의 흔적이다. 아브라함이 죽음을 피하자 초대형 호수와 함께 잉어가 태어났다고 한다. 아마추어 역사가로서의 견해지만 중국, 한국에서 중시 여기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서의 잉어의 출발점도 아브라함 호수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물은 메소포타미아 문화·문명이 상징하는 평화와 안정의 메타포(Metaphor)에 해당한다. 물이 있는 곳, 깨끗한 물이 안정적으로 흐르는 곳이 에덴동산이자 파라다이스다. 우르파는 그 같은 고전적 이미지에 딱 맞는 공간이다.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신선한 물이 눈에 띈다.
   
   이슬람 광신도들이 자행한 참수 관련 사건은 2020년 말 유럽발 고정 뉴스에 속한다. 이런 끔찍한 뉴스가 떠도는 시대에 해답을 주는 곳을 찾으라고 하면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동거하는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파가 정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이 이삭의 피를 요구하면서 아브라함에게 내린 약속은 크게 두 가지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수많은 후손의 번영이다. 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내일을 축복하려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에게 피의 명령을 내린 것이다. 태풍의 눈이 그러하듯,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변방과 방계로 갈수록 관심을 끌기 위한 골목대장들의 억지 행동과 논리가 득세한다. 비트의 붉은 피로 채워진 메소포타미아 피클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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