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에 없는 게 있다. 바로 웃음이다. 북한이야말로 웃음이 없는 정치가 어떤 정치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마냥 북한 흉만 볼 순 없다. 우리의 청와대 회의 모습을 보아도 답답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의 회동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정파 간 현안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진짜 이상한 일은 그만한 정치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웃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딱딱하거나 어색한 자리일수록 스스로 긴장을 풀고 상대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위트나 유머가 필요하다. 그런 유쾌함이나 여유로움이 있어야 정치도 활기차고 역동적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위트와 유머가 대통령에게 필수적인 자질이라고 주장하는 흥미로운 책도 있다. 바로 밥 돌의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Great Presidential Wit·2001)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대통령들의 ‘유머러스한 일화 및 발언 모음’(부제)이다. 저자는 35년간 미 연방 상·하원 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1996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패배하자 곧바로 정계를 떠났다. 상당한 유머리스트로 알려진 저자는 은퇴 후에도 이 책을 쓰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이어갔다.

대통령의 업적과 자질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학문적 시도는 흔하다. 하지만 그런 데에는 거론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매우 중요한 대통령의 자질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유머 감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성공적인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위트와 유머를 과시했다. 그들은 재기 넘치는 웃음을 구사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을 기꺼이 웃음거리로 만들 줄도 알았다.

이런 유머 기준에 따라 저자는 클린턴까지 42명의 대통령을 8개 범주로 나눴다. 그것은 ‘경지에 이른 대통령들’(에이브러햄 링컨·로널드 레이건·프랭클린 루스벨트·시오도르 루스벨트), ‘양키 위트’(캘빈 쿨리지·존 F 케네디), ‘솔직·담백·무표정’(해리 트루먼·린든 존슨·허버트 후버), ‘강의실 유머리스트’(우드로 윌슨·제임스 가필드), ‘평균보다는 더 재밌는 대통령들’(조지 부시·윌리엄 태프트·존 애덤스·조지 워싱턴·토머스 제퍼슨·빌 클린턴), ‘재미없었던 대통령들’(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등 6명), ‘고집불통’(리처드 닉슨 등 11명), ‘농담거리 신세’(밀러드 필모어 등 8명)이다. 엄밀하고 과학적인 분류는 아니어도 미국 사회에서 대충 통용되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상위 범주의 대통령들이 통치 능력 면에서도 탁월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약간의 예외가 워싱턴, 애덤스, 제퍼슨 등인데, 아마 건국 초기의 국가적 긴장감 탓일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평균보다 더 재밌는 대통령들’이다. 반면 평균 이하의 대통령들이 훨씬 더 많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업적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이를 종합해 보면, 위트와 유머가 뛰어난 대통령들이 통치 능력도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나와 직업이 같지만 유머 감각이 없다면 누구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말이다. 스트레스가 엄청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웃음은 감정적인 안전밸브다. 특히 ‘경지에 이른 대통령들’은 각종 난관에 처해서도 뛰어난 리더십과 더불어 남다른 위트를 발휘했다. 이를 통해 긴장을 해소하고 낙천적인 자세로 국가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대통령은 ‘극한직업’이다. 워싱턴은 “그 자리로 가는 내 심정은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범죄자의 심정”이라고 한탄했다. 워싱턴 부인 역시 자신이 교도소에 갇힌 죄수라고 푸념했다. 태프트는 퇴임이 출감과도 같다고 환호했다. 애덤스는 “대통령보다 구두수선공이 낫다”고 말했다. 한편 신임 대통령 취임 연단을 바라보며 “내 교수대 같다”고 투덜댄 대통령도 있다.

대통령들은 예나 지금이나 인사 청탁에 시달린다. 링컨은 인사 청탁자들을 상대하는 일이 내전 지휘보다 힘들다고 한탄했다. 한번은 관세청장이 죽자마자 곧바로 누군가 그 자리를 요구하자, 링컨은 “장의사에게 가보라”고 쏘아붙였다. 죽은 사람이 지금 관 속에 있다는 뜻이다. 가필드는 “사람들이 말 한 필을 달라고 하다가도 파리 한 마리로 만족해한다”고 개탄했다.

관료제도 대통령의 골칫거리다. 군 출신인 아이젠하워는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국방부의 보고를 받고는 “내가 (군인 시절) 창안한 직제이니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닦달했다. 이집트를 방문한 카터는 피라미드가 20년 만에 건설됐다는 설명을 듣고는 “정부가 그렇게 빨리 일하느냐”고 반문했다. 레이건은 “연방정부를 위해 일하지만 공무원 시험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바로 납세자”라며, 줄기차게 감세와 관료제 축소를 밀어붙였다.

의회와의 관계는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다. 워싱턴마저도 그가 지명한 대법원장이 의회에서 거부되었다. 레이건은 자신의 골프 핸디캡이 ‘의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후버는 손녀가 태어나자,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일”이라고 좋아했다. 클린턴은 “연두교서 발표와 슈퍼볼 우승팀 초청이 연례행사인데 ‘공화당의 반응이 없는’ 우승팀 초청행사가 더 낫다”고 말했다.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은 대통령에게 늘 거북한 존재다. 제퍼슨은 “신문에서 가장 진실된 부분은 광고”라고 야유했다. 윌슨은 “매일 아침 신문을 볼 때마다 온갖 종류의 마찰이 있다는 것을 안다”며 대결을 부추기는 언론의 속성을 비판했다. “신문이 소설을 쓴다”는 불평은 대통령들의 단골 불평 메뉴다.

냉전을 종식시킨 레이건은 종종 소련과 공산주의를 유머의 대상으로 삼았다. “소련 헌법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미국 헌법은 ‘말하고 모이고 난 이후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산주의자란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는’ 사람이고, 비공산주의자란 마르크스와 레닌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케네디도 “‘흐루쇼프는 바보’라고 외친 어느 소련인이 2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3년은 당서기 모욕죄, 20년은 국가기밀누설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통령들도 정쟁에 시달렸고 정적에 반감을 드러냈다. 제퍼슨은 “천국을 가는데 꼭 정당과 함께 가야 한다면 아예 가지 않겠다”고 한탄했다. 레이건은 카터가 ‘60분’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업적을 소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59분은 남겠다”고 응수했다.

위트는 때로는 진지한 정치적 설득력을 발휘한다. 링컨이 자신을 찾아온 반대자들과 마주 앉았다. 마침 얼마 전에 유명 곡예사가 외줄을 타고 나이아가라폭포를 건넌 일이 있었다. 링컨은 그때 거기에 운집했던 구경꾼들이 곡예사에게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뒀는지, 숨죽이며 오로지 무사히 건너기만 기도했는지를 물었다. 내전을 지휘하는 자신은 지금 미국의 운명을 짊어지고 곡예를 벌이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반대자들은 하나둘 조용히 일어나 물러갔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대통령들의 위트와 유머에 관한 갖가지 일화와 어록이 가득 담겨 있다.

한편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군자에게 엄숙함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런 왕조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제왕적 리더십이 아니라 활달하고 역동적인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런 리더십에 필수적 요소가 바로 위트와 유머다. 우리도 재치 있게 위트와 유머를 구사하며 자신마저 기꺼이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을 대통령의 중요한 조건으로 삼을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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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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