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seura.fi
ⓒphoto seura.fi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작 소설을 쓴 J.R.R. 톨킨의 삶을 다룬 전기영화 ‘톨킨’을 연출한 핀란드 감독 도메 카루코스키(44)를 영상 인터뷰했다. ‘하트 오브 라이언’을 비롯해 그의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빅히트를 하면서 카루코스키는 침체된 핀란드 영화계를 살린 구원자로 불리고 있다.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카루코스키는 헬싱키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미소와 함께 종종 농담을 섞어가며 활기차게 대답했다.

-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고 TV와 온라인스트리밍으로 나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병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았을 때 계속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 스트리밍 업체들에 대해 감사할 뿐이다. 스트리밍 때문에 극장들이 문을 닫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트리밍 업체들은 극장용 영화에서 꺼리는 주제를 다룬 작품들도 기꺼이 수용하고 있어 오히려 영화산업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일할 기회를 잃은 많은 영화인에게 일자리도 마련해 주고 있다. 따라서 나는 스트리밍 업체들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어디서 영화를 만들고 싶은가. 핀란드인가 아니면 전 세계 어디서든지인가. “내가 만든 첫 스튜디오 영화는 미국의 서치라이트가 제작한 ‘톨킨’이다. 서치라이트픽처스는 감독이 예술성이 강한 독특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충분히 제작비를 투자하는 좋은 회사다. ‘톨킨’은 미국 영화지만 영국에서 찍었다. 그래서 LA와 런던을 자주 오가야 했다. 영어권 영화를 만들려면 이렇게 대서양을 넘나드는 여행을 자주 해야 한다. 그때 생각한 것이 두 아이를 둔 내가 과연 이렇게 잦은 여행을 해도 좋은가 하는 것이었다. 넉넉한 제작비와 좋은 각본 그리고 함께 일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뜻을 지녀 작품을 제대로 만들 수만 있다면 할리우드나 핀란드, 영국 그 어느 곳이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두 발을 핀란드와 미국에 걸쳐 딛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핀란드 영화계의 문제 중 하나는 예산이 너무 방대한 작품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저예산으로 훌륭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덴마크 영화계와 대조되는 현상이다.”

‘톨킨’의 한 장면.
‘톨킨’의 한 장면.

- 영화감독으로서 TV 시리즈 ‘더 비스트 머스트 다이(The Beast Must Die)’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그동안 드라마만 만든 내게 스릴러를 만들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영국 소설이 원작인 이 시리즈는 자동차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자기 차를 들이받고 달아난 사람을 찾아 복수를 시도하는 얘기다. 슬픔과 복수와 함께 강한 모성애에 관한 영화다. 두 남매의 아버지로서 과연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도 작품 속 여인처럼 복수를 시도할 것인지 생각해 봤다. 그런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 내면에는 누구나 다 복수심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이런 원시적 분노가 우리를 짐승으로 만드는 것이다. 의미심장한 얘기인데 소설은 1930년대를 시간대로 삼은 고전스타일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시간대를 현재로 바꿨다. 첫 시즌 시리즈에 대한 반응이 좋아 둘째 시리즈를 만들 예정이다.”

- 당신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가. “나는 키프로스에서 UN 직원으로 일하던 미국인 아버지와 스웨덴계 핀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네 살 반 때 어머니와 함께 핀란드로 이주했는데 그땐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진 때여서 열네 살 반에 다시 아버지를 볼 때까지 아버지 없이 자랐다. 키프로스가 내게 남겨준 것은 사람들의 따스함과 모두가 가족처럼 유대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화를 만들 때면 모든 사람들을 세트로 부른다. 물론 마지막 결정은 나의 몫이지만 그전까지는 공존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서다.”

- 영화감독이 되기로 한 동기는 무엇인가. “아버지 때문이다.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는 후에 배우가 돼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을 비롯해 여러 편의 영화와 TV 작품에 나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열네 살 때 10년 만에 다시 만난 아버지가 배우라는 것을 알고 내 안에 품고 있던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나처럼 생기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세 명의 형제자매도 다 예술가가 된 것을 보면 예술인의 특질이 우리 유전자에 포함돼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 뒤 영화학교에 응모했는데 영화에 대해 아무 경험이 없는 내가 뽑혔다. 그저 영화광이었을 뿐으로 지금도 어떻게 내가 합격했는지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톨킨’ 포스터
‘톨킨’ 포스터

- 어떻게 해서 핀란드의 한계를 초월해 국제적 감독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내 영화가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서서히 선을 보이면서 내 영화를 좋게 본 외국인 투자자들이 제작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는데 어떻게 보면 우연히 국제적 영화인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내 영화를 찍는 촬영감독이나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들이 다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나를 국제적 영화인으로 만들어준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내가 마음먹고 국제적 영화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스페인, 베를린,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와 LA 등지를 방문해 핀란드에 관한 영화를 찍은 것도 그런 요인 중 하나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나라를 방문한 경험이 너무나 좋았다. 이어 할리우드의 몇몇 연예대행 업체들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그 후 여러 편의 각본이 주어졌다. 또 서치라이트픽처스의 사람들과도 만나게 된 것이다. 난 한번도 LA나 런던을 방문해 영화사의 문을 두드린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운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 좋은 제작자들과 각본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이젠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여기서 할리우드로 진출하려고 생각하는 핀란드 영화인들에게 한마디 조언하고 싶은 것은 할리우드와 핀란드 영화계의 체제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핀란드뿐 아니라 모든 스칸디나비아 영화인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 당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들은 누구인가. “우선 찰리 채플린이다. 특히 그의 영화 ‘더 키드’를 좋아한다. 영화는 비극적인데도 우스꽝스럽다. 나도 그의 이런 점을 내 영화에 적용하려고 했었다. 다음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폴란드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다. 나는 생일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가곤 했는데 열여덟 살이 되던 해에 본 영화가 키에슬로프스키의 ‘블루’였다. 핀란드에서는 열여덟 살이 되면 술집 출입이 가능하다. 따라서 그해 내 생일에 친구들이 나보고 술집에 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난 ‘블루’를 보기 위해 이를 거절했다. 이 영화를 고른 것은 나인데 신문 광고에 난 아름다운 주연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의 사진을 보고 영화를 골랐다. 그리고 페데리코 펠리니도 내게 영향을 준 사람이다.”

- 핀란드 영화계와 할리우드의 차이는 무엇인가. “핀란드 영화인들은 그들이 수업한 영화학교의 선생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내가 학교를 다니기 전만 해도 영화학교 선생님들은 반(反)할리우드적이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할리우드로 가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스웨덴이나 덴마크 영화인들은 이와 반대로 할리우드로 진출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과거만 해도 우리 학교의 선생들은 할리우드의 체제나 영화들을 증오했다. 이는 다분히 동유럽식 사고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할리우드가 어떻게 운영되며 국제 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닫지 못한 영화인들은 큰 피해를 입은 셈이다.

내가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이런 사고방식에 변화가 일어 과거와 달리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할리우드나 외국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핀란드 영화가 할리우드의 영화와 다른 점은 핀란드 영화들은 기이한 우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핀란드 사람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내 영화 중 가장 크게 성공한 ‘랩랜드 오디세이’는 코미디인데도 다섯 건의 자살로 시작한다. 핀란드의 영화는 병적인 유머가 있다는 점이 외국 영화들과 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세계화하고 있어 이런 특질도 변화를 맞고 있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