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荷重). 사전적 의미는 물체에 작용하는 외부의 무게 또는 힘이다.

인류문명 발달사는 하중과의 싸움이었다. 인류 최초의 위대한 발명인 바퀴는 하중을 극복해 물체를 이동하려는 인간의 필요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건축에서 하중과의 투쟁은 수천 년간 지속되었다. 건축물을 더 높이 지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경쟁은 시공을 초월한다. 바빌론의 바벨탑부터 서울의 롯데월드타워까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이를 통찰했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는 남근(男根)의 발기능력을 과시하는 상징이다.”

하늘 높게 세우려는 욕망은 중세 고딕 건축에서 시도되었다. 석재를 쌓아 높이를 올렸지만 그때마다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고딕 건축가들은 고민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플라잉 버트리스(flying buttress)라는 장치. 건물 외벽에 반(半)아치형 석조구조물을 덧붙여 하중을 분산했다. 고딕 건축가들은 플라잉 버트리스를 도입해 마침내 높고 널찍한 공간의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 노트르담 성당이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의 배경이기도 한 이 성당에는 고딕 건축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노트르담 성당에 가면 플라잉 버트리스의 실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딕양식 다음에 등장하는 바로크시대의 건축가들은 더 이상 높이를 지향하지 않았다. 석재의 하중을 극복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크 건축가들은 대신 화려한 장식으로 건축물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영국의 발명가 헨리 베서머(1813~1898)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는 ‘높이’를 포기하고 살았다. 베서머가 1860년 강철 제강법을 고안했다. 철의 혁명! 베서머로 인해 인류는 연철(軟鐵)시대에서 강철(鋼鐵)시대로 진입했다. 베서머의 강철 제강법을 건축물의 주재료로 사용한 이가 구스타브 에펠(1832~1923)이다. 이전까지 강철은 석재에 비해 천한 재료로 취급되어 철교와 철로 같은 곳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이 되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고층탑’을 공모한다. 20년 뒤에 철거한다는 조건으로. 에펠사(社)가 제출한 320m짜리 철골 설계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흉측하게 철골만으로 된 탑을 세우느냐? 300m 이상 높이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 급기야 각계 명사들로 구성된 300인 위원회가 결성되어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펼쳤다. 소설가 모파상이 300인 위원회에 포함되었다. 에펠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비전문가들은 에펠이 제시한 수리적 계산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적인 비판에만 몰두했다. 1889년 에펠탑이 세워져 만국박람회가 성공을 거두자 300인 위원회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마침내, 철의 전성시대가 개막되었다. 에펠탑은 이후 뉴욕 맨해튼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질 때까지 40년간 세계 최고(最高)로 군림했다.

포스코가 최근 세계 최초로 기가스틸(Giga Steel)을 개발했다. 1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의 강판이 10t의 하중을 버틸 수 있는 강종(鋼種)이다. 이 사실이 담긴 소식지를 읽으면서 철의 역사를 반추해 보았다. 단단하면서도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는 꿈의 강철을 영국도 프랑스도 아닌, 대한민국 포스코가 만들어냈다. 박태준의 제철보국(製鐵報國)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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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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