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들렀다가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쓴 회고록 ‘콜 사인 카오스(Call Sign Chaos)’를 샀다. 그리고 잡지 코너를 둘러보다가 ‘트럼프의 장관’이란 제목으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 대한 기사가 실린 주간지 ‘뉴요커’를 샀다. 매티스는 지난해 말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기를 들고 물러났고, 폼페이오는 여전히 트럼프와 가장 죽이 잘 맞는 장관으로 워싱턴을 지키고 있다.

매티스나 폼페이오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안보정책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트럼프식 외교·안보를 수행하느라 고생한 참모들이다. 이들이 막후에서 얼마나 황당해하며 악전고투했는지는 신문과 책에 너무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이다.

매티스가 주요 안보 이슈를 둘러싸고 트럼프와 몇 차례 갈등하다가 지난해 말 물러났을 때 워싱턴에선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매티스가 그만두는 것은 시간문제라고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적절한 시기, 설득력 있는 이유’라는 출구전략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매티스가 5년을 준비했다는 책은 그의 스타일대로 트럼프를 정면 공격하진 않았다. 그는 재임 중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이 생기면 설득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포기하고 가능하면 대통령과 부딪히지 않도록 해외로 자주 나갔다. 그러다가 아예 떠나버렸다.

트럼프가 인사 때마다 선호하던 장성 출신 참모나 장관들은 이제 대부분 무대에서 사라졌다.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매티스 전 국방장관까지 ‘별’ 출신들은 트럼프와 잘 지내지 못했다. 이 군인들은 트럼프만큼이나 강한 성격이었던 것이다. ‘뉴요커’는 기사에서 트럼프가 이 장성 출신 참모들을 불편해했다고 썼다. 트럼프는 명령을 따르는 사람을 좋아하지, 명령을 하는 데 익숙한 장군들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독자적인 생각을 밀고 나가는 타입을 싫어했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한때 그렇게 좋아하던 장군 출신 참모들이 모두 떠난 트럼프 외교안보팀에서 폼페이오가 외롭게 버티고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첫 CIA(중앙정보국) 국장으로 시작해 국무장관까지 외교·안보의 핵심역할을 해왔다. 그간 폼페이오의 임무는 ‘외교에 대한 트럼프의 즉흥적인 생각’을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북한 김정은과의 역사적인 첫 미·북 정상회담’을 만들어낸 사람도 폼페이오였다. 트럼프가 트위터로 느닷없이 날린 발언을 뒷수습하는 것도 폼페이오의 몫이었다. 폼페이오는 자신의 생각을 접고 트럼프가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알고 보면 폼페이오도 한때 ‘반(反)트럼프’였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경선을 할 때 폼페이오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공개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과의 인연으로 과거를 덮고 트럼프 팀의 일원이 되는 티켓을 얻었던 것이다.

폼페이오가 자신의 더 큰 정치적 야심을 위해 상원의원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차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무장관 경험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트럼프 정부에서 떠날 수 있는 출구전략을 찾고 있다는 얘기도 계속 나온다. 지금이야 트럼프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외교전사이지만, 서점에서 곧 폼페이오의 회고록을 발견하게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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