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대문을 나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쿠팡의 배달 가방들입니다. 제가 사는 집은 문을 나서면 이웃한 세 집이 보이는 구조인데, 최소 매일 두 집 앞에는 쿠팡 로고가 선명한 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아침 배달 신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떡하니 자리 잡은 쿠팡 가방을 보고 있노라면 온라인 쇼핑에 둔감한 저 같은 사람들로서는 별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아직도 먹거리는 직접 마트에 가서 눈으로 보며 골라야 한다는 지론 같지도 않은 지론을 고집하는 편입니다. 주말에 먹거리를 사기 위해 쇼핑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면 비슷한 차림으로 나서는 이웃들은 대개 50대 이상들로 보입니다. 손가락질 몇 번으로 먹거리를 해결하는 세상에서 손가락질이 서툰 탓에 쇼핑이라는 노동을 기꺼이 감내하는 세대입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 연수를 갔을 때 문화충격을 받은 것 중 하나가 대형마트였습니다. 동네 슈퍼마켓 정도만 봐온 제게 없는 게 없는 운동장 같은 매장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필요한 물건만 사는 게 아니라 사달라고 아우성치는 물건들이 소비욕을 자극하는 그 현장이 진짜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연수 후 우리나라에도 미국과 같은 대형마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아이들 차에 태우고 대형마트에 물건 사러 가는 미국식 생활이 한국에서도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가장 화끈하게 바꾸는 것은 기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면서 선도하는 트렌드는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을 되돌릴 수 없게 바꿔버립니다. 이번주 김회권 기자가 쓴 커버스토리를 보면서 쿠팡 배달 가방을 지금도 별나게 보는 저야말로 변화에 뒤처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뉴욕 증시 상장으로 72조원의 가치로 올라선 기업이 바꾸고 있는 세상의 변화가 눈부시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결과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로켓배송’을 자랑하는 쿠팡이 가진 국내 물류센터 크기가 무려 2500만㎡(750만평)에 이르며, 우리나라 국민 3400만명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상장으로 5조원을 움켜쥔 쿠팡은 앞으로 배송시간을 더 줄여나갈 것이라는데,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봄 직한 드론 배달존이 아파트 베란다에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을지 모릅니다. 자유시장 체제에서 한 기업이 가파른 성장세를 타면 거기에 맞서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쟁이 드론 배달존을 앞당길 것이란 전망도 불문가지입니다.

이번주 ‘스타트업의 프런티어들’ 시리즈에 소개된 스마트팜 엔씽 기사도 보셨는지요. 황은순 기자가 1년째 연재하고 있는 이 시리즈에 소개되는 스타트업들은 그야말로 세상을 앞장서 바꾸고 있는 모험적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이번호에 소개된 엔씽은 그중에서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을 벌이고 있더군요. 모듈형 컨테이너 안을 농장으로 만들어 채소를 키운다고 합니다. 햇빛이나 흙도 필요 없는 이동형 농장인 데다 재배 면적을 무한정 늘릴 수 있고 채소의 식감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데 놀랍지 않습니까. 이미 엔씽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신선한 채소를 생산, 실증사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에 컨테이너 농장을 싣고 가 화성 이주민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겠다는 30대 기업가의 야심도 더 이상 허황되게 보이질 않습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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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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