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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8호]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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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할머니 뉴런’

정장열  편집장  2021-10-08 오전 11:30:01

1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산소를 지난 주말 다녀왔습니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온라인 비대면 성묘만 허락한다기에 할머니를 직접 뵙고 싶어 성묘를 늦췄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계신 할머니는 여전히 편하고 친근했습니다. 할머니만 떠올리면 모질게 각을 세우고 아우성치는 세상이 둥글게 풀어지는 느낌입니다. 할머니가 불러일으키는 기억은 하나같이 따뜻합니다. 아픈 배를 쓰다듬던 굵은 손마디, 호주머니에서 용돈이라고 꺼내주시던 꼬깃꼬깃한 지폐, 군대 잘 다녀오라고 등을 두드리던 손길….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자꾸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배를 쓰다듬던 손의 촉감은 아직도 생생한데 그때의 얼굴과 표정은 가물가물합니다. 할머니 산소 앞에서 할머니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소환하려 해도 더 이상 떠올려지는 게 없습니다.
   
   유년기 기억상실(infantile amnesia)은 사람이 겪는 자연스러운 성장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세 살 때의 일을 일곱 살 때는 64% 이상 기억하지만 여덟 살만 돼도 36%밖에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또 사람들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기는 평균 3.67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유년기 기억이 상실되는 주된 이유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 해마의 뉴런과 뉴런을 서로 연결하는 시냅스가 엄청나게 빨리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탓이랍니다. 이른바 기억의 초기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유년기 기억의 상실이 어느 순간부터는 멈춰버린다는 점입니다. 한줌밖에 남지 않은 유년기의 기억은 20살이든 70살이든 거기서 거기라는 얘기입니다.
   
   할머니에 대한 제 유년의 기억은 새롭게 생겨나지는 않지만 살아남은 것들은 비교적 생생합니다. 특히 거칠고 투박한 할머니의 손길은 그 따뜻함이 어제의 일처럼 살아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뉴런의 격렬한 뒤바뀜 속에서도 살아남은 할머니에 대한 유년의 기억들은 그 자체로 귀중합니다. 거칠고 정신없는 세상에서 편안함에 정박시켜주는 몇 개의 닻 같은 것들인지 모릅니다.
   
   신경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숙제 중에 ‘할머니 뉴런(grandmother neuron)’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1960년대부터 제기된 이론인데, 인간의 뇌 신경세포 가운데 할머니처럼 친숙한 얼굴을 알아보는 뇌세포가 특별히 존재한다는 가설입니다. 그런 뉴런이 존재할 리 없다면서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신경과학자들의 입장이 달라지려나 봅니다. 지난 10월 1일 자 ‘사이언스’에 원숭이 뇌에서 ‘할머니 뉴런’을 찾았다는 논문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이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해 두 마리 붉은털원숭이 뇌 바닥 근처의 측두엽극을 분석한 결과 뇌에서 친숙한 얼굴에만 반응을 보이는 작은 영역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뇌 속의 이 작은 영역은 친숙한 얼굴에는 낯선 사람과 비교해 최대 3배나 더 많은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 과학적 발견을 전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할머니’라는 말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어찌 보면 ‘할머니 뉴런’이라는 과학 용어 자체가 세상의 할머니들에 대한 과학자들의 오마주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대상이 할머니라는 고백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 뇌 속의 ‘할머니 뉴런’도 산소 앞에서 활짝 열렸을 텐데, 모두가 잠시라도 할머니를 떠올리며 ‘할머니 뉴런’을 열어젖히면 세상이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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