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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143호] 201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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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고려대장경은 한국이 아닌 아시아 프로젝트였다”

이은규  인턴기자 

초조대장경 1011년 제작돼 올해로 1000년
터키·러시아·일본·중동 등 편역자 300명 참여 기록
불전연구가 오윤희씨 디지털화 작업 20년
▲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의 고려 팔만대장경판. photo 조선일보 DB
“고려대장경은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가 함께 만든 작품입니다. 우리의 보물이라는 좁은 인식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시각에서 1000년째 생일날을 맞을 필요가 있습니다.”
   
   불전(佛典)연구가 오윤희(53)씨가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불광출판사)이란 제목의 책을 최근에 냈다. 오씨는 지난 20년간 고려대장경의 디지털화 작업을 해왔고, 지난해까지 사단법인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올해는 고려대장경 중 첫 번째인 초조(初造)대장경이 편찬된 지 1000년이 되는 해다. 초조대장경은 1011년(고려 현종 2년)에 나왔다. 고려대장경에는 ‘초조대장경’과 대각국사 의천의 ‘교장(敎藏)’,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재조(再造)대장경’ 세 가지가 있다.
   
   고려대장경은 240여년 동안 만들어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초조대장경’은 1011년부터 76년간 송나라의 개보대장경을 베껴 만든 목판이다. 두 번째는 흔히 속장경이라 알려진 ‘교장’으로, 1090년을 전후해 대각국사 의천이 초조대장경 제작에서 누락되거나 새로 만들어진 중국·일본·티베트의 경전을 모아 증보, 간행했다. 하지만 초조대장경과 교장은 13세기 초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졌다. 그 뒤 ‘재조대장경’은 1236년(고려 고종 23년)부터 16년간 초조대장경을 교정해 다시 만들어져 현재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다.
   
   복잡한 사연만큼이나 고려대장경 안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비밀이 많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한 열쇠로 국내에서는 1993년부터 고려대장경의 전산화 작업이 시작됐다.
   
   
   하루 8시간씩 읽어 30년 걸리는 분량
   
   2월 9일 서울시 종로구 조계사 근처에 있는 불광출판사 사무실에서 오 전 소장을 만났다. 오씨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불교에 재미를 느꼈다. 대학 졸업 후 3년간 남양주 광릉에 있는 봉선사의 학승(學僧) 월운강백 문하에서 공부를 했다. 방대한 양의 화엄경을 공부하는 과정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씨는 “방대한 불전을 혼자서 공부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며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좋아진 전산 기술을 이용할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1980년대 말, 이미 한문고전의 전산화 작업에 착수한 중국 베이징(北京) 사회과학원에서 1년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루이스 랭카스터(Lancaster) 미국 버클리대학교 교수를 만났는데, 그는 이미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목록을 전산화하고 있었다.
   
   1993년 랭카스터 교수는 팔만대장경판에 새겨진 200만자를 전산화한 플로피 디스크 네 장을 오씨에게 넘겼다. ‘고려대장경의 고향 대한민국’에서 후속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고려대장경판 전산화 작업은 파란 눈의 외국인으로부터 시작됐던 셈이다.
   
   오씨는 “랭카스터 교수가 고려대장경의 존재를 알게 된 과정은 마치 드라마 같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판 중 일부를 한지에 찍어 세계 각국의 유명대학교로 보냈는데, 랭카스터 교수가 버클리대학에 온 팔만대장경 인쇄본을 보면서 인연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랭카스터 교수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았지만 1990년대 초 오씨가 당장 ‘고려대장경판 전산화 작업’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팔만대장경은 총 8만1258개의 목판으로 이뤄져 있는데, 글자 수만 5200여만자이고, 총 1538종의 불교 경전이 수록돼 있다. 한자에 능숙한 사람이 하루 8시간씩 읽어도 30년은 걸려야 일독할 수 있는 방대한 자료다. 전산화 작업을 위해서는 당연히 예산과 인력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때 삼성문화재단이 전산화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인력과 예산 문제가 해결됐다. 1993년 해인사 종림스님이 설립한 고려대장경연구소는 삼성문화재단의 도움으로 2년 만인 1995년에 팔만대장경 5280여만자의 전산 입력을 마쳤다.
   
   
   경전 넘어선 백과사전… 빛나는 문화 가치
   
▲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과업을 완수한 오씨는 고려대장경연구소에서 나와 개인 사무실에서 전산화된 대장경의 활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4년 초조대장경 인쇄본 2000여권을 보관하고 있는 일본 교토의 남선사(南禪寺)가 고려대장경연구소에 자신들의 소장본을 공개했다. 2005년 오윤희씨가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면서 초조대장경 인쇄본을 한 장씩 촬영해 ‘초조대장경 이미지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을 이끌었다.
   
   결국 팔만대장경은 모두 한 자 한 자를 입력했고, 일본에서 보관 중인 초조대장경은 이미지만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초조대장경의 내용은 팔만대장경에 다 들어있어 별도로 내용을 입력할 필요는 없다. 오씨는 이 작업을 완성하고 2010년 말 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초조대장경까지 전산화된 고려대장경은 현재 인터넷 사이트(kb.sutra.re.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검색을 하면 국역은커녕 음은 읽을 줄 알아도 해석할 수 없는 한자 불전만 나온다. 오씨에게 대중이 읽지도 못하는 방대한 양의 고려대장경을 전산화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오씨는 “고려대장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100명 남짓으로 실용적인 측면만 따지고 본다면 남는 게 없는 사업”이라면서 “실용적 측면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 이후 대장경 텍스트 연구가 쉬워졌고, 국역도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오씨는 “과거 조선왕조실록도 전산화 작업을 우선 거친 이후에 국역하고 연구에 활용했고 그런 과정을 거쳐 최근에서야 영화, 드라마, 소설 등 수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장경의 내용은 조선왕조실록보다 더 넓은 지역, 더 오래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그 이야기들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그 문화적 가치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날 것이라고 오씨는 예측했다.
   
   오씨는 “대장경은 단순한 경전을 넘어 역사책, 사전, 목록, 이야기책 등 다양한 자료가 담긴 백과사전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물론 대장경은 부처의 말씀인 삼장(三藏)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불교는 수천 년을 지나오며 처음의 삼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내용이 방대해졌다. 그래서 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는 대장경이 필요해졌고, 대장경을 새롭게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넘어선 다양한 ‘사람’이야기가 대장경에 새겨지게 됐다.
   
   
   “우리 것이라는 폐쇄성 버려야”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불리는 고려 재조대장경에는 세계 곳곳을 출신지로 삼은 300여명의 ‘편역자’가 기록돼 있다. 편역자들의 출신지를 오늘날의 국가로 봤을 때, 일본에서부터 터키, 캄보디아를 거쳐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는 물론 중동 너머까지 존재한다. 오씨는 “고려대장경은 결코 우리 혼자 만든 것이 아닌 국제적 프로젝트였고 그 의미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오씨는 “고려대장경 천년의 의미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종교적·정치적·민족적·국수적 편견을 접어야 한다”며 우선 고려대장경에 대한 신비로움을 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씨에 따르면, 고려대장경의 가치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라는 데서만 찾는다면 과거에 머물 뿐이다. 오씨는 “고려대장경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천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그러했듯 우리 것이라는 폐쇄성을 버리고 아시아 각국과 공조해야 한다”며 “전세계의 대장경을 하나로 잇는 글로벌 디지털 대장경과 같은 거대한 기억의 바다를 만드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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