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서른을 코앞에 둔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아직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 의학을 전공했지만 육체보다 정신에 더 관심이 쏠리면서 전공마저 심리학으로 바꾼 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사진에 끌리기 시작한다. 자아를 찾아 분투하던 율리에는 우연히 유명 만화 ‘밥캣’의 작가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리 분)을 만나게 되고, 곧 그와 사랑에 빠진다. 대화가 잘 통하는 악셀 옆에 있으면 행복감이 밀려오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조급한 마음을 떨쳐내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 율리에가 쓴 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재난부터 가상의 재난까지, ‘재난’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단골 소재다. 오락적 기능을 앞세운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대부분 가상의 재난을 다루지만, 이 무거운 주제가 손쉽게 상업적 도구로 활용된다는 것에는 일정 정도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한 남성이 승무원 앞에 서 있다. 남성은 사람들이 많이 탑승한 비행기편이 무엇인지를 노골적으로 승무원에게 묻는다. 승무원이 난색을 표하자 남자는 화를 낸다. 얼마 뒤 남성은 화장실에 숨어 자신의 겨드랑이를 찢고 그 속에 알 수 없는 작은 물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전쟁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누군가는 전쟁으로 목숨을, 누군가는 가족을 잃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전쟁은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영화가 될 때 창작자는 어떤 태도를 장착해야 할까. 최소한 ‘이 이야기가 영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지금까지 전쟁영화들은 전쟁을 하나의 블록버스터 소재로 소비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 비판하고 생명 존중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많다. 그런데 원작 소설보다 영화가 좋았던 경우를 떠올려 보면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다른 이(감독)의 상상이 내(독자) 머릿속 상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에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독자는 한없이 자유롭게 소설 속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나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막연한 상상을 실재하는 영상물로 만들어내야 하는 매체다. 소설을 영화화하려는 이는 필연적으로 ‘구현’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소설 속 인물(과 최대한 비슷한 사람)을 현실의 배우 중에서 찾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마이크 밀스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즉각적으로 그의 전작 ‘비기너스’가 떠오른다. 75세에 커밍아웃을 선언한 아버지와 그를 바라보는 아들(감독 자신)의 이야기. 한 줄로 요약하면 언뜻 다이내믹한 내용이 상상되지만 영화는 내내 덤덤하기만 하다. 그의 다음 영화 ‘우리의 20세기’는 늦둥이 사춘기 아들(감독 자신)을 홀로 키우는 엄마의 고충을 말하는데, 감독은 이번에도 그저 바라볼 뿐, 인물들이 놓인 상황을 판단하지도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영화의 묘사 방식이 곧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이 영화 속 인물들은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한 가족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유사 가족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경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빠듯한 살림 탓에 이들은 부족한 것을 ‘훔쳐서’ 메우기 일쑤다. 노동의 기회마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게 아닌 지금의 사회구조를 생각한다면, 그들의 절도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영화의 문제는 절도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오사무(아빠)의 도둑질에 끊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교회 살림을 도맡아 하는 집사 주디는 오늘따라 분주하다. 조금 뒤 교회 모임방으로 손님들이 방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디는 방에 들어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큰 원형 테이블을 펼치고, 테이블 주변으로 의자를 4개 가져다 놓는다. 모임을 주도하는 상담사 켄드라가 들어와 방 안을 체크한다. 그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티슈와 창문에 붙어있는 붉은 스테인드글라스까지도 경계한다. 주디가 배치해 둔 의자 위치도 보자마자 바꿔버린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던 의자를 둘씩 붙이고, 두 의자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열여섯 살 ‘수잔’(수잔 랭동 분)에게 세상은 지루한 곳이다. 수잔은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과의 대화에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학업 성적 역시 매우 우수한 편이지만 공부에는 무관심하다. 그는 늘 표정 없는 얼굴로 딴생각에 잠겨 있다. 모임에서는 수다 삼매경에 빠진 친구들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기 일쑤다.그런 수잔의 눈에 어느 날 연극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 분)이 들어온다. 라파엘은 수잔의 집 근처 극장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다 멀찍이 선 라파엘과 눈이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좋다고 느끼는 것에서 이유를 찾지 않는 사람. 귀한 것에 감탄을 아끼지 않는 사람. 아는 것도 ‘안다’고 성급히 단정하지 않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홍상수 감독의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 꼭 닮은 그의 영화들을 좋아한다.감독 홍상수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오랜 시간 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물론 그의 영화는 한 편 한 편이 개별성을 가지지만) 그의 영화는 홍상수라는 공통점으로 묶이는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파고드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주인공 ‘아민’이 카메라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카메라는 누운 아민을 위에서 찍고 있다. 처음 누운 곳은 카메라의 한참 아래쪽. 아민의 얼굴이 화면에 제대로 잡히지 않자 감독(아민의 친구)은 조금만 더 위로 올라와 보라 주문하고, 그는 몸을 꿈틀댄다. 그러나 이번에 아민이 멈춘 곳은 지나치게 위쪽이어서 그의 이마가 앵글을 벗어나고 만다. 아민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가까스로 카메라에 가장 잘 나오는 위치를 찾아 정착한다. 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곳에 나를 멈춰 세우려는 노력. 어쩌면 그 노력이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참전 군인이었던 윌(야히아 압둘 마틴 2세 분)은 아내의 암 수술비를 지원받기 위해 의료보험센터에 상담을 의뢰하지만, 보험비 지원은커녕 전화 연결조차 쉽지 않다. 어렵게 상담원과 통화에 성공하지만 상담사는 번호가 조회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윌은 그러나 걱정하는 아내를 오히려 안심시키며 자신을 믿으라고 이야기한다.인물들 간 대화 내용은 물론 영화의 톤까지, 액션영화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오프닝이다. 이 영화가 ‘서사 없는 액션’으로 비판받던 마이클 베이의 작품이 맞나? 의문이 생기려는 찰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군인들이 총구를 이리저리 겨누며 주방 안을 살핀다. 얼마 후 군용 트럭이 줄지어 들어오고, 트럭에서 내린 군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주방 안으로 무언가를 나른다. 언뜻 전시 상황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가져온 것은 무기가 아니라 형형색색의 신선한 채소들이다. 왕실의 크리스마스 연회를 준비하기 위한 식재료들. 군인들의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왕실인지 군대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기사의 도움 없이 홀로 차를 몰고 왕실 별장인 샌드링엄하우스로 향하던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 분)는 길을 잃고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노트북 앞에 앉기 전 맥주를 한 캔 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말하던 ‘인간에게 부족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충족하기’ 위해서. ‘느긋해지고 침착해지며, 음악적이고 개방적인’ 리뷰를 쓰기 위해서. 눈치챘겠지만 핑계다. 이 영화에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술이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다. 육체의 피곤함마저 혈중 알코올 농도 부족 때문으로 느껴진다.영화는 취기를 빌리지 않고 보아도 충분히 즐겁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어디를 밝히고 어디를 어둡게 할지, 어디를 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레이디 가가, 아담 드라이버, 알 파치노, 자레드 레토. 이 이름들이 한데 모여 있는 영화라니 어떤 관객이라도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겠다 싶었던 찰나, 선뜻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구찌’다. 구찌 가문을 다룬 영화라면 재벌가의 뒷이야기로 평범한 다수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종류의 영화일 것이고, 아무리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린다 한들 그 비판마저 그들이 만든 브랜드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관람 욕구가 반쯤 줄어들고 말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극장에 가게 된 것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상영이 시작되고 단 몇 분 사이, 나는 세 번이나 당황했다. 시작과 동시에 화면에 영화 타이틀이 뜨더니, 레아 세이두가 대뜸 카메라 앞으로 걸어와 ‘연기’를 시작한다. 언제나 사실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던 그가 카메라를 한껏 의식하는 듯한 어색한 시선 처리로 통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연출된 것”이라고 말하는 감독의 육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짐작은 얼마 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무너진다. 감독은 관객이 영화를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앞서 개봉한 니콜라스 베도스 감독의 ‘카페 벨에포크’를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주인공이 돌아가고 싶은 기억 속 어느 날을 말하면, 시간여행 설계자가 그 기억을 바탕으로 연극 세트를 짓고 배우를 동원해 과거를 불러내주는 이야기였는데, 몹시 따뜻하고 유쾌했다. 돌아가고 싶은 기억 속 장면을 연출한다는 발상이라니! 이 감독에겐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최근 개봉작 ‘미스터 앤 미세스 아델만’ 역시 인물들의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지나간 시간을 돌아본다는 점에서는 ‘카페 벨에포크’와 닮았지만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이 영화를 다르게 해석할 방법이 있을까.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를 정치풍자의 성격이 짙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로만 본다. 전작 ‘빅쇼트’와 ‘바이스’ 등에서 현실 비판에 주력해온 감독 애덤 맥케이 특유의 풍자적 요소, 권력과 이익에만 탐닉하는 기업인들에 대한 묘사를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돈 룩 업(Don’t Look Up)’은 무엇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영화다. 아니, 정확하게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무지하고 무감각한 인류에 대한 비판이다. 애덤 맥케이는 ‘돈 룩 업’을 통렬한 현실 고발극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이름난 감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작품을 만드는 경우는 꽤 흔하다. 지금-여기와 대결하는 메시지들을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자연히 과거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인지, 꿈꾸던 시절이 애잔하게 느껴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만큼 이루어낸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어린 시절을 불러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지난 이야기가 가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감독 자신에게, 그리고 앞으로 그가 만들 영화에 이런 고백이 의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잊고 있던 처음을 돌아보는 것은 익숙해져 버린 일(영화)에 있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뮤지컬에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무대에 오르는 거의 모든 뮤지컬을 관람했고 좋은 작품은 두 번 세 번 보기도 했다. 음악에 이야기가 결합될 때의 그 힘과 카타르시스는 다른 장르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그 감동에 기대 한 시절을 건넜다.그 시절 ‘꼭 봐야 한다’며 적어놓은 뮤지컬 중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작품이 두 편 있는데 그중 하나가 ‘렌트’다. 이 유명한 뮤지컬은 이상하리만치 나와 때가 맞지 않아서, 오리지널 내한으로도, 우리나라 배우들이 연기하는 버전으로도 보지 못했다. ‘틱틱붐’이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친구들과의 관계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아이. 늘 밝은 표정을 짓고, 사교적으로 보이며, 종종 발생하는 마찰에도 초연한 아이. 주변에서 본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나는 친구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힘에 부쳤고, 그 속에서 늘 어딘가는 곪아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학교는 공부나 기타 활동 못지않게 대인관계에도 신경 써야 하는 곳이다. 특성상 독립적인 개인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혼자 있으면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하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