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6일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처음으로 ‘먹는 미생물’이 의약품으로 승인을 받았다. 흔히들 먹는 유산균 제품들을 떠올리고 별것 아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자주 접하는 그런 제품들은 엄격한 효과 검증을 거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일 뿐이다. 그러니 사실상 처음으로 약효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먹는 미생물’ 제품이 나온 셈인데 이건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다. 세계적으로 미생물을 이용한 의약품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라서다. FDA가 첫 승인한 ‘미생물’ 의약품사람의 몸은 대략 몇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최근 삼성서울병원이 진료지원인력(PA) 간호사 채용 공고를 냈다. 이 때문에 병원장이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간 대형병원들이 암암리에 의사 업무 일부를 분담하는 간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오래된 관례였다. 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터놓고 채용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강성 의사단체에서는 이에 대응해 고발장을 냈고, 병원장이 입건되는 일이 발생했다.PA간호사라는 의료계 음지에 있던 해묵은 문제가 갑작스레 불거지게 된 건 최근 논란 중인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에 직접 회부된 탓이 크다. 본격적인 직역 갈등이 벌어지기 전의
지난 1월 30일, 3년 만에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됐다. 여전히 대중교통과 의료기관이나 약국 같은 일부 실내 공간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의 종료와 엔데믹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란 건 부정할 수 없다. 정기석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회 위원장은 오는 10~11월경 코로나19 확진자의 일주일 격리 의무화 같은 조치도 해제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실질적으로는 그때가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의 완전 종식을 알리는 시점이 될 수 있다.감염병이 종식되는 건 모두가 바라던 일이지만 이것
저출산은 사회의 양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젊은층이 감소해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한쪽 면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사회적 은퇴와 육체적 노화로 인해 돌봄 대상이 되는 노인 비율이 증가하는 게 다른 쪽 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후자를 일컫는 말이 고령화인데, 우리나라는 엄청난 속도로 늙어가는 중이다.2000년 고령화사회가 된 후 2017년 고령사회가 되었고 2025년에는 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 고령국가인 일본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11년이 걸렸
‘인디언 기우제’라는 표현이 있다. 기우제(祈雨祭)는 세계 각지의 문화권에서 관찰되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인디언식 기우제는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지내기 때문에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기다리며 아둔한 주장을 펴는 이들을 희화화할 때 인디안 기우제라는 표현을 쓰는데, 안타깝게도 바이오산업의 전망에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1990년대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부터 ‘바이오가 미래 먹거리’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온다던 미래는 오지 않고 유망 산업이란 얘기만 계속 반복된다. 30년째 이어진 ‘
지난 9월 12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제조 이니셔티브(NBBI)’라는 명칭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내 바이오제조 생태계 활성화와 역량 확대를 위한 정책 수립을 하는 게 목표인데, 실제 내용을 보면 그리 단순치 않다는 게 문제다.해당 행정명령에는 국가안보보좌관이 최종 책임자 중 하나로 참여했는데 이 자리는 과거 헨리 키신저와 같은 인물이 맡았던 백악관 외교안보 사령탑이다. 게다가 명시적으로 ‘적대국(foreign adversary)의 주요 정보 탈취나 공급망 교란 방지’라는 살벌한 표현까지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했다. 70년간 15명의 총리가 거쳐간 거인의 죽음이다. 그녀의 서거 소식에 세계 각국에서 애도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데, 상례보다 가십에 관심 많은 이들은 이미 그녀의 뒤를 이을 사람에 더 주목하고 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세자 자리에 앉아 있던 비운의 사나이, 찰스 3세(옛 찰스 왕세자)가 그 주인공이다.찰스 3세는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 탓에 원래도 대중의 평이 좋진 않았다. 다이애나의 죽음에 얽힌 숱한 미스터리는 물론이고 그녀의 사망
수해가 전국을 할퀴었던 지난 8월 초, 다른 이유로 발을 동동 굴렀던 사람들이 있다. 체내에서 인슐린이 적절하게 생성되지 않아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기적으로 주사해야만 하는 1형 당뇨병 환자들이다. 환자들은 일선 약국에 인슐린 공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인슐린 재고를 보유한 약국을 찾아 한참을 헤매야 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직접적 원인은 식약처에서 의약품 유통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지만 이 문제의 근원은 생각보다 더 깊다. 영세 도매업체가 유통 난맥 주범코로나19 대유행 초기이던 2020년 즈음 백신을 둘러
지난 7월 24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던 30대 간호사가 뇌출혈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타까운 사고지만 뇌출혈로 인한 돌발적인 사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비극이니 논란이 생길 부분은 없었는데, 사실관계가 드러나며 여론이 불타기 시작했다. 해당 간호사가 본인 직장인 아산병원이 아닌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다 숨진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자사 직원을 굳이 타 병원으로 전원시킨 건 간호사라 ‘차별’을 받은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됐는데, 실상은 더 나빴다. 병상 수 기준 국내 1위인 아산병원에 해당 수술을 집도할 수 있
최근 자폐증을 앓는 천재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연일 인기몰이 중이다. 신생 채널인 ENA에서 방영 중인데도 지상파 드라마를 뛰어넘는 13% 수준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니 그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데, 주인공이 갖고 있다고 설정된 자폐증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물론 일부에선 자폐증 환자를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묘사했단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애초 자폐증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던 상황에서 시민들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 것만으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이렇듯 높아진 관심과는 별개로 안타깝지만
한풀 꺾였던 코로나19가 다시 증가세를 보인다. 다행히 이 시기에 맞춰 이루어지는 긍정적 변화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6개 지역을 대상으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상병수당은 아파서 쉬는 경우 1일당 4만3960원을 지급하는 제도로 주요 선진국에서는 모두 채택한 꽤 보편적인 제도다.시범사업 지역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눠 제도를 시행해본 다음 3년 뒤인 2025년 본격적으로 전국에 도입할 예정인데 제도 도입의 목적은 명쾌하다. 아파도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와병(臥病) 중인 사람들에게 수당 형태로 보조하겠다
지난 6월 9일, 국민의힘 지방선거 당선자 워크숍에서 성일종 정책위의장의 발언이 구설에 올랐다. 임대주택의 열악한 거주 환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임대주택에 못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정신질환자들이 나온다”라는 실언을 한 것이다.논란이 일자 발언 당사자인 성 정책위의장은 물론이고 당 차원에서도 입장을 내 해당 발언이 본래 의도와 달리 표현된 것 같다며 사과를 했지만 이를 실언 해프닝으로만 넘겨서는 안 된다. 가난해서 정신질환자가 된다는 말은 인과가 맞지 않지만, 실제로 임대주택에서 정신질환자로 인한 문제가 계속 발생 중이기 때문
지난 6월 5일 미국 시카고의 한 콘퍼런스홀에서 기립박수가 터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암학회인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 현장에서, 새로 개발된 항암제가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효과를 냈다는 사실이 발표된 직후였다. 주인공은 영국계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enhertu)다.기존에는 치료가 어렵던 특수한 유형의 유방암 환자에게 엔허투를 사용할 경우 기존 항암제에 비해 생존기간이 50% 가까이 증가했으니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산전수전 다 겪은 암 전문가들이 흥분
새로운 감염병 소식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지난 5월 30일 기준 유럽과 미국을 비롯해 31개국에서 555명의 확진자를 낳은 원숭이두창(monkeypox)의 확산세 탓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현재의 감염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고, 각국 보건 당국의 경계 태세도 잔뜩 높아진 상태다.아직 확진자가 없는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서도 원숭이두창을 2급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하고 ‘관심’ 단계의 감염병 위기 경보를 발령할 예정이니 코로나19 대유행 초기에 적절한 대응을 놓쳤던 보건 당국의 아쉬움이 얼마나 컸을지 알
지난 5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간호법안’이 의결됐다. 사전 예고 없이 간호법 심사와 표결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항의 표시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전원 퇴장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법안은 그대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보건복지위 여당 간사인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간호법 날치기 통과는 다수당 횡포”라며 비판했고 대한의사협회 측에서도 집단휴진까지 거론하며 간호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총력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문제는 대한간호협회 역시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점.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간호사 총파업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이
2년 반 만에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규정이 폐지됐다. 초기에는 마스크 물량을 못 구해서 벌어진 사회적 갈등이 상당했고, 이후에는 마스크 착용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과 의무화의 적절성을 두고 갈등이 있었지만 국민 대부분이 철저히 지키던 마스크 착용은 이제야 끝나게 됐다. 실내에서나 대중교통 등에서는 착용 의무가 여전히 유지되지만 방역의 상징과도 같던 마스크 착용 조치가 일부나마 해제된 건 ‘코로나 엔데믹’이 가까워지고 있단 뜻이다.생소한 용어 탓에 엔데믹(endemic)이 코로나19 유행이 끝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하
지난 4월 5일, 부산대학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조민씨에 대한 입학 취소 결정을 내렸다. 2019년 조국 전 장관의 임명 즈음 불거진 논란으로부터 3년여 만이다. 부산대에서는 “기재 사항과 제출 서류가 다르면 불합격 처리하게 돼 있다”라며 원론적 결정을 내렸을 뿐이지 정치적 해석은 말아 달란 입장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입시 관련 의혹에 대한 확정판결이 나온 게 올해 1월인 것을 고려하면 궁색한 변명으로만 보일 뿐이다.비슷한 논란은 새 정부 인선에서도 불거졌다. 윤석열 정부 첫 내각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정
지난 3월 말부터 벌어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간의 갈등은 쉬이 봉합되지 못하고 있다. 전장연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목표로 출퇴근길 지하철 시위에 나서며 장시간 지하철이 연착되는 일이 발생했고,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경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날을 세운 뒤 생긴 강대강(强對强) 대치가 풀리지 않은 탓이다.노인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도로갈등 봉합 여부와 별개로 이번에 불거진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결정 난 20대 대선 결과를 두고, 양당은 이를 복기하는 데 한창이다. 주된 쟁점이 됐던 ‘젠더 갈등’이 얼마만큼의 득표력이 있었는지, 특정한 공약에 대한 여론이 어땠는지 따위를 되짚어보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을 할 형편이 안 되는 곳도 있다. 역대 대선에서 원내 정당 중 최저 득표율 2.37%를 획득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그렇다. 양당의 대결 구도가 지나치게 첨예해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의당의 득표율이 이 정도로 낮게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조국 사태 당시 두둔했던 실책의 영향이 나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크게 이슈화되지는 못했지만 이번 20대 대선에서도 주요 후보 공약집에는 ‘주치의’ 제도가 포함됐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전 국민 주치의 제도를 의료 공약 중 하나로 꼽았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커뮤니티 헬스케어 공약의 일부로 채택했다. 그런데 주치의 제도가 뭐길래 이념과 정책 지향이 다른 양당의 공약에 모두 포함됐을까.국민 다수에게는 생소한 용어겠지만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했던 역사는 꽤 길다.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킨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부터 꼽으면 무려 20년 넘는 기간 동안 이념과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