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프랑스 남서부 랑디라스 인근에서 소방관이 산불을 진압하고 있다. 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프랑스 서남부와 남부 유럽에서 연이어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photo 뉴시스·AP
지난 7월 17일 프랑스 남서부 랑디라스 인근에서 소방관이 산불을 진압하고 있다. 덥고 건조한 날씨로 인해 프랑스 서남부와 남부 유럽에서 연이어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photo 뉴시스·AP

빈번해지고 거대해진 이상기후는 인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경고를 날린다.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화 시대 이전 대비 1.5도 아래로 제한해야 한다는 파리기후협약을 지키지 못하면 인류는 ‘집단자살’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라 글로벌하게 만들어진 공감대다. 지난 7월 18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집단대응을 할지, 집단자살을 할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며 인류가 현재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놓였음을 강조했다. 지구는 지난 2002년 이후 20년간 산업화시대 이전 대비 1도가 올랐다. 인류는 이제 남은 0.5도를 사수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탄소배출량을 가정했을 때, 국제환경운동단체인 ‘기후시계(Climate Clock)’ 계산에 따르면 지구 온도는 6년 359일 후에 0.5도 상승한다. 코로나19 이후 거리두기로 그 시간이 7년 이상으로 늦춰졌지만 최근 위드코로나가 되면서 다시 일주일 가량 단축돼 7년 미만이 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지난 7월 24일 미국 대통령 기후특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탄소기반 에너지를 대체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지구 다른 쪽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기후변화의 급박한 경고는 한국을 포함해 지구 어디에서건 유효하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집단자살’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올여름 이를 증명하듯 지구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거 북극곰의 눈물로만 표현됐던 지구의 위기가 이제는 인간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영국 런던에 8년째 살고 있는 강수인씨는 지난 7월 19일 화요일의 “말도 안 되는” 더위를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한여름에도 주요 도시 기온이 최대 30도를 넘지 않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40도를 넘기는 이상기후가 관측된 날이다. 그날 아침 강씨가 도심으로 출근하려는데 기차가 상당수 취소됐거나 지연됐다고 한다. 강씨는 “조금씩 온도가 높아지다가 더워진 것도 아니고, 그 당일 하루가 정말 말도 안 되게 더웠다”고 기억했다.

이례적인 폭염은 일주일 만에 가라앉았지만, 영국 기상청은 이상기온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고 못 박아 공식 발표했다. 영국 기상청 최고과학책임자는 “영국에서 기온이 40도에 이르는 것은 연구 결과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나왔는데,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이런 극단적 기온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기후위기가 더 이상 가설이 아님을 과학자들이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사들 ‘천재지변’ 특약도 수정

지난 7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7월 28일 현재까지도 맹렬하게 주변을 집어삼키면서 여의도 면적의 25배가 넘는 숲이 사라졌다. 바짝 마른 나무들이 불쏘시개가 되면서 미국 전역은 산불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를 보여주는 객관적 수치 중 하나는 ‘기후재앙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사의 보상금 규모’다. 국제적 재보험사인 스위스리는 지난 3월 발간한 연례보고서에서 기후재앙으로 인한 보상금액이 2017년 이후 매년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이상 청구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한 보험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부분 ‘천재지변’ 등 특약으로 돼 있던 것들이 이제는 세계적으로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글로벌 보험회사에서 계약서 자체를 수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이나 환경론자들이 공통되게 얘기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인간의 탐욕을 줄이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소비를 줄여서 탄소배출량을 감소시키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인간의 집단대응은 이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영국의 예를 보자. 여름에도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유지했던 영국은 가정집 에어컨 설치율이 낮다. 그러나 이상고온이 관측된 이후 뉴욕타임스는 영국의 최대 백화점 존루이스의 발표를 토대로 7월 셋째 주 에어컨 판매가 525%, 선풍기 판매가 250%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한여름 에어컨만큼 달콤하지만 이기적인 제품은 없다. 모두 이것을 안다. 그러나 이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이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이번 여름 영국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그래서 환경론자들은 인간 개개인에게 탐욕의 제어를 맡기기보다는 기업의 탐욕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더우면 에어컨을 팔고, 탄소배출을 촉진하는 육류 제품을 홍보하고, 더 많은 석유를 사용해 화학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의 탐욕을 다른 패러다임에서 접근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26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 분수에서 한 시민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미 국립기상청은 태평양 연안 북서부지역에 대한 폭염경보를 주말까지 연장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26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 분수에서 한 시민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미 국립기상청은 태평양 연안 북서부지역에 대한 폭염경보를 주말까지 연장했다. photo 뉴시스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의 도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자본이 집중된 대기업이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덜 알려져 있을 뿐 집단자살을 막으려는 기술의 진보는 어디에선가 이뤄지고 있다. 6~7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질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러한 기술의 진보가 또 하나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상황이다. 이를 일컬어 기후테크라고 부른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역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주요 대책으로 이 기후테크(Climate-Tech)를 꼽았다. 기후테크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하기 위해 기후펀드를 조성한 한상엽 ‘소풍벤처스’ 대표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실 우리가 집에서 전등 하나 덜 켜는 것만으로는 기후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에너지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소비하는 국내 대기업, 다국적 대기업에서 에너지 소비, 제품 생산 패턴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넷제로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설비, 공정 과정 등을 탈탄소 식으로 대체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기술이 필요한 거다.”

임팩트 투자사 '인비저닝 파트너스'의 우수미 대외협력 디렉터 역시 “우리가 먹고, 무언가를 만들고, 살아가는 모든 방식에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과 달라질 환경에서 인류의 삶을 유지시켜주는 모든 기술들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구의 집단자살을 막기 위해 나선 기후테크 벤처기업 수는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 세계 기후테크 벤처기업 수 현황 통계를 매년 조사하는 미국 사이트 ‘CTVC’에서 지난 7월 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최소 1140개의 신생 기후테크 벤처기업이 만들어졌다. 국내의 기후테크 수준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기후테크 기업 수를 조사하는 관련 통계조차 없다. 우 디렉터는 “국내 스타트업들을 많이 발굴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사실 충분치 않다”며 “관련 기술이 국내에서도 더 많이 나오고 시장이 커져야 관련 분석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벤처펀드 조사 결과를 보면 아시아 지역의 기후테크 벤처기업 수를 다 합해도 미국의 3분의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기후테크 기업들의 기술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현재의 폭주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18년에는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이 공기 중에 있는 탄소를 포집해 비행기 연료로 사용하는 기술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주최하는 기후테크 경연대회 ‘엑스프라이즈’에서 지난해 4월 1등을 차지한 기술인 ‘콘크리트 연관된 탄소 배출 저감 솔루션’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떼어내 저장해놨다가 콘크리트를 만들 때 다시 사용한다. 콘크리트 만들 때 물 대신 탄소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넣으면 자재 신뢰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버진애틀랜틱처럼 탄소 포집 및 활용 기법을 이용한 것이다. 후추 한 알 크기의 소세포로 배양육을 만들어 실제 육고기를 대체하는 산업은 이미 이스라엘이나 네덜란드 같은 곳에서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배양육 관련 식당도 늘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탄소를 먹이로 하는 미세조류를 키워서 탄소를 흡수하는 바이오 소재를 만드는 일명 ‘블루카본’ 기술을 연구하는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내외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관련 기술은 장주기 ESS 기술을 활용한 대용량 배터리 프로젝트다. 앞서 버진애틀랜틱이나 테슬라가 주목한 기술인 탄소포집 기술도 완전한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앞선 사례에서 알 수 있지만 기후테크에 대응하는 주체가 외국은 IT 대기업이지만 우리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기후테크 기술을 상용화해 산업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투자가 필수적이란 점이다. 한상엽 대표는 “다국적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하고 있어 결국 기후테크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할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대기업을 비롯한 산업계에서 기후위기가 그다지 중요한 문제처럼 다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재생에너지 스타트업 ‘이노마드’의 박혜린 대표는 “한국이 유독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온도차가 다르다”며 “작년에 유엔 회의에 참여했을 때는 현지의 자동차, 금융 등 산업계에서 기후변화가 굉장히 중요한 어젠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당장 한국에 돌아오니 ‘정권 바뀌면 다 없어질 것들’ 정도로만 이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아직까지 대기업의 참여가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은 정부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이 기후테크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방법이다.

더 안전한 원전기술을 확보하는 것 역시 기후테크의 일환으로 보는 움직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년 탈원전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석탄사용량이 늘어나는 역설적 현상이 일어났다. 학자들은 원전의 안전성 문제는 별도로 논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탄소중립 측면에 있어서는 기존 석탄발전보다는 훨씬 도움이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스마트원전기술이 계속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에서는 친환경 기술 기준을 체계화한 ‘(그린) 택소노미(taxonomy)’를 지정해 기후테크를 관리한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6일 의회에서 ‘유럽연합 지속가능 분류체계(EU taxonomy)’에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포함하는 방안을 확정지었다.

 

‘K-택소노미’에 담길 내용은

환경부도 ‘한국형 택소노미(K- taxonomy)’를 만들기 위해 각계각층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원전이 포함된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지난 7월 18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시켜 금융권의 녹색 투자를 유인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단순히 EU택소노미를 따라 하기만 해서는 제대로 된 한국형 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잇따른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의 말이다.

“유럽은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대신 2050년까지 방사물폐기처리장을 마련한다는 전제조건을 덧붙였다. 안전기준을 지금보다 강화하기 위해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2025년까지 사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관련된 기술 개발 정도가 유럽보다 뒤처지기 때문에 2025년, 2050년까지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체계를 정교하게 고쳐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기후테크를 포함한 탄소중립 문제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미흡하다는 시선이 대부분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대통령 직속 기후변화 기구인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에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탄중위는 한국형 택소노미 체계를 다듬고 탄소저감 대책을 도맡아서 제안하는 민관 협동 거버넌스로, 탄소중립정책의 중추를 맡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민간위원장 자리는 쭉 공석이었고, 전체회의는 단 한 차례도 열린 적이 없다. 기후변화 경제학 전문가인 박호정 고려대 교수는 “새 상황에 맞게끔 2050 에너지 믹스를 재조정하고, 기후기술 로드맵을 만들고 R&D를 촉진하는 일을 탄중위에서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승훈 교수도 “현실적으로 산업 부문 탄소 저감 목표치는 낮추고, 에너지 발전 부문은 신재생과 원전을 활용해 높여야 한다”며 “이런 조정을 탄중위에서 해야 하는데 정부 출범한 지 두 달이 넘도록 안 하고 있으니 조금 답답한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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