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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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엄마들은 무심코 SNS(소셜미디어)에 자식들 사진 올리는데, 이런 사진도 목표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울에 거주하며 고등학생 딸과 아들을 키우는 박모(48)씨는 요즘 불안과 우려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최근 10대들을 강타한 ‘딥페이크 성범죄’ 때문이다. 박씨는 “애들보고 SNS를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지 않냐”며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딸이 혹시나 딥페이크 대상이 됐다거나, 아들이 설마 범죄에 연루돼 있지는 않을까 걱정돼 물어보기도 했다”면서도 “크게 내색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중학교에 다니는 이모(14)군도 기자에게 “심각하다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군은 “(딥페이크를) 당하는 친구가 생기면 (우리끼리) 엄청 얘기하다가 다시 잠잠해진다. 그러다가 또 다른 친구가 당하면 다시 막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남자)친구 중에도 SNS 계정을 해킹당했는데, 그게 딥페이크와 관련 있었다”면서 “내가 당했는지 안 당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을 서로 물어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군은 “학교에서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계정을 비공개로 돌리라고 한다”며 “옆 학교에는 딥페이크 당한 친구들이 정말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지난 8월 말 시작된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가 전국 청소년들에게 공포와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특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10대를 중심으로 분포됐다는 점이다. 국회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딥페이크 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허위영상물 피의자 120명 중 91명(75.8%)이 1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만 보더라도 10대 피의자는 73.6%(131명)으로 20대(36명)와 30대(10명)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놀이’가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

청소년들은 이미 딥페이크 성범죄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더 큰 문제는 딥페이크를 제작하는 일부 아이들이 이런 범죄를 일종의 ‘놀이’나 ‘문화’로 인식하면서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죄의식을 느껴 ‘아차’ 싶은 아이들도 있지만, 이들조차도 ‘별일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속에서 자연스레 범죄에 스며들고 있다.

서울시립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아하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디지털 성범죄 가해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 효과성 검증 및 매뉴얼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성폭력 행위에 가담해 아하센터에서 심층상담을 진행한 청소년들은 가장 높은 가해동기로 ‘호기심’(59%)을 꼽았다. 이어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함’(52%), ‘충동적으로’(41%), ‘재미난 장난’(41%) 순이었다. 이는 가해 청소년 대부분이 범죄라는 자각이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주간조선과 만난 이명화 아하센터장은 이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특별한 사연이 있어 딥페이크와 같은 범죄에 연루되는 것이 아니라, 또래 집단과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딥페이크에 가담하는 모든 아이가 범죄 혹은 잘못됐다는 인식 없이 그저 놀이나 문화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일부 아이들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거나 불편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성장기 아이들 특유의 집단의식과 군중심리에 못 이겨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센터장은 “무조건 ‘범죄의식이 없다’거나 ‘그냥 장난으로 한다’는 시각보다 일련의 과정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 아이가 (딥페이크) 사진 하나를 만들어 공유하면 다른 아이들이 부추기는데, 이에 반응을 얻고 인정받는 기분을 느낀 아이는 또 하게 되는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수위를 넘나들며 즐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무심코 가진 호기심과 주변 아이들의 동조가 맞물리면서 딥페이크는 하나의 짓궂은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장난삼아 시작한 놀이는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게 된다. 주간조선은 아하센터를 통해 확보한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가해 청소년 상담 사례를 살펴봤다. 가해자들은 주로 SNS를 통해 사진을 구한 뒤, 딥페이크 음란물로 재가공한 후 유포했다. A는 친한 여자아이의 얼굴과 성인 여성 나체 사진을 합성해 SNS에 올렸으며, 이 사진을 주변 친구들이 보게 됐다. B는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다수 사람들의 사진을 캡처한 뒤, C에게 성적 욕망 또는 굴욕감을 유발하는 형태로 편집과 합성을 의뢰했다. 이에 C는 의뢰받은 내용을 여성의 나체 사진에 합성하는 방법으로 재가공했다.

범죄 형태는 캡처와 합성으로 이어지는 딥페이크에서 멈추지 않는다. 가공한 사진으로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사진을 무단으로 유포하는 행위로도 이어진다. D는 같은 반 여학생에게 SNS를 통해 캡처한 타인의 신체부위 사진을 보내고, 여학생의 신체부위 사진을 요구했다. E는 같은 학교 여학생의 사진 위에 본인의 정액을 뿌리고 사진을 촬영한 뒤, 이를 타인의 SNS 아이디를 통해 피해자에게 전송했다. 이외에도 E는 두 명의 여학생이 SNS를 통해 게시한 사진을 무단으로 캡처하고서 X(옛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범죄는 합성한 사진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며 사진을 요구하는 등 더 큰 자극에 이른다. 심지어 일부 딥페이크 가담 청소년들은 엄마나 여동생 등 가족의 신체 일부를 사진으로 찍어 공유하거나, 교사들의 사진을 합성하는 극단적인 수준까지 다다랐다.

 

동요하는 10대들… “서로 신뢰가 무너졌다”

앞서 박씨는 지난 8월 말 딸로부터 “엄마 큰일났어”라는 얘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 당시 박씨의 딸이 다니는 학교가 딥페이크 피해 학교 명단에 올라갔다는 내용을 들은 것이다. 박씨는 며칠 뒤 학교로부터 가정통신문도 받았다. 가정통신문에는 ‘온라인에 개인정보(사진, 이름 등)를 올리거나 전송하지 말 것’ ‘타인의 동의 없이 사진, 영상을 찍거나 전송(게시)하지 말 것’ ‘장난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사진(합성사진)을 유포하거나 게시한다고 협박하지 말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씨는 “아이들은 불안하고 동요할 수밖에 없다”며 “딸에게 SNS 프로필 사진이나 게시했던 글들을 내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해하는 아이들과 이미 피해를 본 청소년들에 대해 아하센터 함경진 부장은 “신뢰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함 부장은 “아이들은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나랑 너무 즐겁고 편안하게 지내는데, 사실 이 친구가 온라인상에서는 나의 사진을 가지고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언제 어디서 내 사진이 범죄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커지면, 결국 자신의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장에서는 근본적으로 올바른 성교육이 시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센터장은 “요새 아이들에게 기존의 성교육으로 다가가면 콧방귀도 안 뀐다”면서 “아이들이 ‘여가부(여성가족부)에서 나왔냐’고 조롱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대에 맞고 성별에 맞는 섬세한 성교육이 시급하다”며 “(이번 사태는) 미처 예방하지 못한 우리 사회 어른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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