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의 모습. photo 뉴시스
서울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의 모습. photo 뉴시스

요즘 청년 취업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혹’과 ‘양극화’다. 일단 처한 상황이 가혹하다. 게다가 질 좋은 일자리가 귀해졌다. “일단 뽑는 인원이 훨씬 적다. 고정비 지출을 줄이는 추세고 신입에 대한 투자를 줄인다. 생초짜가 들어오기 힘든 환경이다. 경력을 선호하고 경력이 없으면 인턴을 한 실무경험자를 원한다. 한번은 대학에 취업과 관련한 특강에 간 적이 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한 대졸 예정자가 면접 때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더라. ‘신입으로 지원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 회사 면접이고 자기만 동아리 면접을 보는 기분이었다’고. 업무 경험을 말하는 사람 곁에서 학교 때 경험을 대답해서는 이제 자리 얻기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대기업 HR 담당 그룹장)

가혹한 환경에 처한 이들 중 상당수는 ‘쉼’을 선택했다. 요즘 정부가 주목하는 건 ‘쉬었음 청년’이다. 15~29세 청년 중 일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고 답하는 이들이다. 지난 7월 기준 ‘쉬었음’ 청년은 역대 최대치였다. ‘쉬었음’이라고 응답한 15~29세 청년이 44만3000명이었다. 1년 전보다 4만2000명 늘어난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보다 많다. 8월 통계에서 ‘쉬었음 청년’은 더 늘었다. 15~29세의 ‘쉬었음 청년’ 인구는 46만명에 달했다.

 

정부·여당이 ‘쉬었음 청년’ 주목하는 이유 

지난 9월 19일 통계청이 내놓은 경제활동인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최종 학교를 졸업(수료·중퇴 포함)했지만 미취업 상태로 남은 15〜29세 인구는 올해 5월 기준 129만명이다. 이 가운데 미취업 기간이 3년 이상으로 길어진 15〜29살은 23만8000명이었다. 최근 3년(2022〜2024년) 동안 가장 많은 숫자다.

이들 장기 미취업 상태 청년들은 이 기간 동안 ‘집 등에서 그냥 시간을 보냈다’고 답한 사람이 34.2%로 가장 많았다. 취업 관련 시험 준비를 한 사람은 28.9%, 육아나 가사를 했다는 이들은 14.8%였다. 진학 준비를 위해 학원이나 도서관을 다닌 사람이 4.6%, 독서나 여행 등으로 시간을 보낸 이가 3.3%, 직업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사람은 2.8%였다.

이들 ‘쉬었음 청년’은 정부의 주목 대상이다. 청년층 인구는 갈수록 줄고 있지만 ‘쉬었음’ 청년의 규모는 지난해부터 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1월 정부가 발표한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의 타깃이 다름 아닌 이들이었다. 정부 지표로 볼 때 청년 고용률이 양호한 편인데도 ‘쉬었음’ 청년이 점점 증가하자 대책을 내놓은 거다. 다만 여전히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봤을 때 아직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청년 대책과 이에 따른 반응은 수도권 민심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이들의 증가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정책을 제안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지난 9월 24일 ‘청년 취업지원 대책 관련 당정협의회’를 가진 이유다. 당정협의회에서는 2024년도 1조9689억원이었던 청년층 취업 지원 예산을 2025년도에 2조2922억원으로 약 16% 증액하기로 했다. 이 속에는 장기 ‘쉬었음 청년’ 발굴·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이 포함돼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025년에는 건전재정 추진 기조하에서도 청년이 실제 원하는 취업 지원 분야의 예산을 확대해 일자리 마련의 애로를 해소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쉰다는 것’이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재충전의 기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쉼’을 취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청년 개인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당장 ‘쉬었음 청년’의 문제에 정부와 여당이 관심을 갖는 건 이 그룹이 가져올지도 모를 부작용 때문이다. 청년층의 노동 공급이 감소한다는 건 생산력 저하로 이어지고 국내총생산(GDP)을 낮출 수 있다. 인구 구조를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취업이 아닌 쉼을 택하면 그만큼 결혼과 출산도 감소하게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 세대의 ‘상흔효과(scarring effect)’다. 상흔효과는 보통 특정 시기 사회에 진출하는 초년생들이 경기침체 등의 이유로 구직에 실패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취업을 위해 여러 해를 투자한 기회비용이 시기를 잘못 만나 매몰되면서 질 낮은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전 생애에 걸쳐 삶의 질이 당초 기대보다 훨씬 낮아지는 현상이다. 이런 상흔효과가 전체 소득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는 국내에도 적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펴낸 ‘청년기 일자리 특성의 장기효과와 청년고용대책에 대한 시사점’은 한국고용정보원이 2007년 당시 청년(15~29살)이었던 1만206명의 10년 뒤 고용 상황을 추적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첫 일자리의 임금이 이후의 임금수준과 고용에 꽤 오랜 기간 영향을 준다는 걸 알게 된다. 가정환경이나 지역이 비슷한 4년제 대졸 남성의 첫 일자리 임금이 평균 임금보다 10% 높은 경우 11년 차 이상의 경력을 쌓은 뒤에도 임금이 평균보다 4.37%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의 유지 면에서도 좀 더 유리했다. 경력 11년 차 이상이 된 이후 고용을 유지하는 비중도 평균보다 1.3%포인트 높았다. 보고서를 펴낸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4년제 대졸자의 경우 초임과 함께 경력 초기 기업규모와 고용형태가 향후 노동시장 성과에 지속적인 영향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규모와 고용형태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중노동시장 구조가 이 그룹에서 특히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IMF세대 추적해 보니 영구적 흔적 남아 

경기 침체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구직자가 중장기적으로도 불운이 지속됐던 대표적인 사례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세대다. 2020년 2월 미국의 ‘업존고용연구소’는 한국노동패널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악의 경제위기를 경험한 한국의 IMF세대를 추적 조사해 한국의 노동시장 진입 조건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좇았다. 그 결과를 보면 남성이 영향을 크게 받았다. 대학 졸업 시 실업률이 1% 상승할 경우 취업 가능성은 1.9% 감소했고 10년간 수입은 2.6%가 줄었다. 결혼율과 출산율도 각각 3.1%, 2.5% 떨어졌다. 자산 형성에도 영향을 받았다. 금융자산 형성 규모도 작았고, 자가 주택 소유 가능성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경기 침체 시 노동시장 진입은 젊은층의 생애 전반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쉬었음 청년’의 증가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에서도 이들이 문제였고 중국에서는 ‘납작하게 눕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탕핑족’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문제다. 지난 9월 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한국의 대졸 청년(25~34세) 중 비경제활동 인구 비중은 16.9%였다. 38개 회원국과 일부 비회원국 사이에서 체코(21.2%), 이탈리아(20.2%), 튀르키예(17.2%)에 뒤이은 4위였다. OECD 평균 9.2%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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