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호연 의원실
photo 김호연 의원실

김호연(金昊淵) 한나라당 의원. 그는 7·28 재보궐선거를 통해 충남 천안을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 의원은 2만5276표(46.9%)를 득표해 민주당 박완주 후보(2만926표·38.8%)를 따돌렸다.

김 의원은 국회 진출을 2012년에나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박상돈 전 자유선진당 의원이 충남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기회가 2년 앞당겨졌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그는 천안을구에 출마해 박상돈 의원에게 6000여표 차로 패한 바 있다.

김호연이라는 이름 앞에는 언제나 ‘전 빙그레 회장’이 붙는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그의 형이다. 기자가 김호연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김승연·김호연 형제는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한국화약그룹 형제 간의 갈등은 꽤 오랫동안 기사 소재가 되었다.

기자는 2005년 8월 1일자 주간조선에 빙그레회장 김호연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김호연 회장이 몽골 수흐바타르 지역에 해비타트(Habitat)운동 일환으로 2만2000달러를 들여 주택 여섯 채를 지어 몽골의 2차대전 전쟁영웅들이 입주했다는 이야기였다. 김 회장은 2004년 8월에도 수흐바타르 지역에 2만달러를 지원, 무의탁 노인 등 빈곤층을 위한 주택 다섯 채를 지어줬다. 그가 해비타트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1년부터. 빙그레는 해비타트운동을 실천하는 대표적 기업이었다. 당시 김 회장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무직 일만 해온 저는 그동안은 경제적 기여를 통한 사회봉사만을 생각해 왔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는 봉사가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해비타트운동으로 배우게 되었지요. ‘경제적인 기여만이 전부는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기사를 쓰면서 기자는 ‘재벌 2세’에게 이런 일면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인간 김호연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하지만 그가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천안을에서 출마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왜 대기업 회장이 정치를 하려는 걸까? 적지 않은 대기업 오너들이 정치를 쉽게 보고 뛰어들었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나왔는데.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기자는 이후 지난 5월 11일 천안에서 열린 한나라당 충남지사 후보 개소식 행사장에 앉아있는 그를 목격했다. 한나라당 천안을 당협회장 자격으로서였다.

가정환경을 들여다보면 그가 정치라는 공적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다. 그는 1955년생이다. 천안시 직산면 상덕리가 본적이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군복무는 공군장교 73기로 들어가 중위로 전역했다. 알려진 대로 부친은 한국화약그룹 창업자 현암 김종회. 부친은 천안군 천안면 부대리에 태를 묻었다. 백부 김종철은 한국국민당 총재를 지낸 6선의원. 숙부 김종식은 13대 의원을 지냈다.

본가(本家) 쪽에 정치인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만으로도 어딘가 부족하다 싶으면 그의 처가(妻家) 쪽을 보자. 아내는 김미(金美). 백범 김구의 손녀다. 장인은 공군참모총장과 교통부 장관을 지낸 김신. 백범의 차남이다. 백범은 조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빙그레 회장 시절 그는 김구재단을 설립해 백범 김구 추모기념사업과 장학사업을 펼쳤다. 그는 또 하버드대학 한국연구소에 ‘한·미관계 김구포럼’을 개설했고, 브라운대 왓슨국제연구소에 김구도서관을 열었다. 백범은 손녀사위를 잘 얻은 덕분에 미국에서도 연구 대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김호연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여러 자리에서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내와 결혼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백범 집안과의 인연으로 인해 ‘가치 있는 삶’에 대해 눈을 떴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백범뿐만 아니고 유관순·윤봉길·이봉창 관련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김호연 의원은 전화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에 대한 추모 사업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집사람을 만나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한 일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자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의를 위한 헌신만큼 고귀하고 소중한 건 없다고 봅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전신은 빙그레 이글스. 1998년 한화그룹에서 빙그레가 계열 분리되면서 프로야구팀 이름이 한화 이글스가 되었다. 기업인 김호연은 한화그룹과 불가분의 관계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벌였던 재산소송에 대해 물어보았다.

김호연·김미 부부 ⓒphoto 조선일보 DB
김호연·김미 부부 ⓒphoto 조선일보 DB

“이미 18년이나 지난 이야기지만 새삼 거론될 때마다 부끄러울 따름이죠. 이유야 어찌되었든 형제 간에 송사까지 갔던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다행히 어머님의 칠순잔치가 계기가 되어 서로 화해를 했습니다. 지금은 서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자주 뵙지는 못합니다. 당선 직후 형님이 전화를 주셔서 ‘자랑스럽다. 앞으로 잘해나가길 바란다’고 격려해 주셨지요.”

2007년 빙그레의 매출은 5395억원, 영업이익은 463억원이었다. 탄탄한 회사 오너자리를 내놓고 왜 김호연은 험난한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기로 했을까. 정치의 세계는 철저하게 선수(選數) 중심이다. 대기업회장도 국회에 들어오면 초선의원 대접을 받는다. 그는 55세에 이제 초선의원이 됐다. 여차하면 몸싸움을 벌일 때 앞장서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김 의원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큰아버님(김종철)의 유세 장면을 처음 보았어요. 참 멋있다고 생각했죠. ‘나도 언젠가는 꼭 정치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지요.”

기업인 김호연을 결정적으로 정치의 길로 나서게 만든 것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었다. 김호연 회장은 이제는 기업인이 정치에 나서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는 정치도 사회봉사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역량있는 사람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해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은 충남에서 인기가 없다. 6·2 지방선거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어려울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당선됐다. 측근들은 국제과학벨트 천안 유치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운 게 그의 경력과 맞물려 유권자들의 지지를 모았다고 분석했다. 김 의원은 선거 기간 중 민주당 후보를 겨냥해 ‘생계형 정치인이 아닌 봉사형 정치인’ ‘누리는 정치인이 아닌 나누는 정치인’을 강조했고 이것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고 말한다.

“천안 시민들이 오래전부터 성장 동력을 잃고 점점 정체되어가는 천안의 문제점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내건 핵심공약 국제과학벨트 천안 유치가 천안 시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성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