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일대일로 정상회의 ⓒphoto 바이두
베이징 일대일로 정상회의 ⓒphoto 바이두

지난 5월 14~15일 이틀간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One Road) 정상회의’에는 모두 29개 국가의 대통령과 총리, 국가원수가 참가했다. 또 130개 국가의 대표단과 70개 국제조직의 대표들 1500여명이 참석했다. 15일 오전 10시 베이징 시내에서 북쪽으로 50㎞쯤 떨어진 곳에 있는 화이러우(懷柔) 지역 옌치후(雁栖湖) 국제회의센터에서는 29개국 정상들이 거대한 원탁에 앉은 가운데 포럼 개막식이 열렸다. 29개국 국가 정상들 명단을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나열한 순서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아르헨티나 마커리 대통령, 칠레 바첼레트 대통령, 체코 제만 대통령,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 카자흐스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케냐 케냐타 대통령, 키르키스스탄 아탐바예프 대통령, 라오스 분냥 대통령,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 스위스 로이타르트 대통령,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우즈베키스탄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베트남 쯔엉떤상 국가주석, 캄보디아 훈센 총리, 아제르바이잔 라시자데 총리, 에티오피아 하이얼마리암 총리, 피지 바이니마라마 총리,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 헝가리 오르반 총리, 이탈리아 마타렐라 대통령, 말레이시아 나지브 총리, 몽골 에르덴바트 총리, 파키스탄 샤리프 총리, 폴란드 카친스키 총리, 세르비아 부치치 총리, 스페인 라호이 총리, 스리랑카 위크레메싱게 총리, 아프가니스탄 카르자이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마치 과거 중국 봉건왕조의 천자가 지방 제후들의 알현을 받는 것처럼 회의장 밖에 미리 도착해서 대기해 있다가 한 사람씩 입장하는 각국 수뇌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했다. 이들 29개국 수뇌들은 모두 만만찮은 국력을 지닌 나라의 대표들이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행장, 라 가르드 IMF 총재를 포함한 국제조직 대표들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한 사람씩 입장해서 알현하듯 시진핑 주석과 악수했다.

중국이 많은 국가의 수뇌들을 불러모아 회의장 밖에 미리 와서 대기하게 하고 중국 국가주석이 회의장 안에서 기다리다가 마치 제후들을 맞는 천자처럼 한 사람씩 악수로 맞이하는 광경은 지난 2008년 8월에 열린 베이징올림픽 때부터다. 8월8일 밤 8시에 개막한 베이징올림픽 식전행사가 열린 베이징 북쪽의 냐오차오(鳥巢·Bird Nest) 경기장 안은 수많은 관중이 몰린 데다 경기장 덮개가 열 확산을 차단해 40도가 넘는 더위였다.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포함한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본부석 가운데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잘 나오는 에어컨 공기를 즐긴 반면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이명박 한국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포함한 수십 개국의 국가정상들은 관중석과 다를 것이 없는 의자에 앉아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그 뒤로도 중국에서 열리는 APEC 회의나 G20 정상회의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치 국제사회에서 천자급의 ‘갑(甲)’인 것처럼 행동할 것이 뻔한데도 이번 일대일로 국가정상 포럼에 참석한 29개국 국가정상들이 기꺼이 ‘을(乙)’이 되기로 자청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갈수록 커져가는 중국의 경제력 때문이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GDP 규모는 2014년 말 현재 10조3511억달러 규모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중국의 GDP 규모는 앞으로 8년 뒤인 2025년에는 20조달러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시진핑이 ‘중국의 꿈(中國夢·China Dream)’을 이루겠다고 장담하는 2050년이면 중국의 GDP가 미국의 GDP 규모를 넘어서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전 세계의 많은 경제학자들이 전망하고 있다. 국익을 위해 을(乙)의 입장을 감수하기로 한 29개국 국가원수들이 거대한 하나의 원탁에 앉아 경청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음과 같은 개막사를 했다. “고대의 실크로드를 다시 열겠다고 하는 이유는 이 실크로드 주위의 각국들에 교류의 새로운 창구를 열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일대일로 사업에는 전 세계 100여개 국가가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은 개막연설에서 “지난 2014년에서 지난해 말까지 중국은 일대일로 주변 국가들과 이미 500억달러가 넘는 투자 계약을 체결했으며, 중국 기업들은 실크로드 주변 국가들 20여개국에 이미 56개 경제협력지역을 만들어 해당 국가들에 11억달러의 세수를 올려주고, 18만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도 밝혔다. 또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번 일대일로 국가정상 포럼 기간 동안 중국 정부는 참석한 각국 대표들과 모두 76개 큰 항목에서 270개 항의 경제협력 사업 추진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틀에 갇혀 있던 중국 경제에 발전의 불을 붙인 것은 1980년 시작된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이었다. 덩샤오핑은 개혁개방과 함께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 “사회주의도 시장경제를 할 수 있다” “누구든 먼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구호들로 경제발전을 독려했다. 1904년생인 덩샤오핑은 1997년 93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정책은 사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에 시작한 것이 일대일로 사업이고, “사업 규모로 보아 일대일로는 앞으로 최소한 수십 년에서 길게는 10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프로젝트”라는 것이 중국 사회과학원 학자들의 추정이다. 1953년생인 시진핑의 임기는 앞으로 5년이면 끝나고, 그의 수명도 100세가 되는 2053년을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우리 정치인들로서는 덩샤오핑에 이어 시진핑도 자신의 수명을 넘어서서 추진해야 할 프로젝트들을 거침없이 발표하고 집행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우공이산(愚公移山)’으로 비칠지는 모르지만,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불과 30여년 만에 중국 경제에 ‘벽해상전(碧海桑田·바다가 뽕나무밭이 되다)’의 변화를 만들어놓았고, 덩샤오핑의 뒤를 이어 시진핑은 중국을 세계 1위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중국의 야심’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계획들을 착착 추진 중이다.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이제는 자신의 자연적 수명을 넘어 추진되는 ‘코리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마련해 봐야 하지 않을까.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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