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됐던 남북 정상회담을 근거로 남북관계 개선, 북핵문제 해결을 낙관적으로 전망했고 이를 홍보했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 모두 산으로 도망가는 형국이다. 북한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실패의 책임을 물어 회담 실무자들을 숙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는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현재 정부는 손쉬운 대북 지원 카드를 빼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3일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을 청와대에서 만나, 대북 식량지원 등 인도적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설훈 의원도 지난 5월 31일 “정부가 다음 주에 국제기구를 통해 5만t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고, 6월 1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유엔식량계획(WFP)을 통해 100만달러 규모의 지원을 하겠노라고 했다.

그런데 수혜 당사자인 북한의 태도가 가관이다. 북한의 주요 관영매체들은 우리 정부의 대북 지원 움직임에 대해 “남북 관계 교착상태의 근본문제를 외면하고 인도적 지원과 같은 ‘부차적 문제’를 가지고 우회하는 방편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도적 지원을 ‘부차적 문제’로 인식하며 도리어 면박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손기웅(60) 원장은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는 것이 옳지만, 북핵 폐기의 진정성 문제, 인도적 지원의 투명성 문제 등으로 많은 사람이 ‘이유 있는 망설임’을 보이고 있다”며 “그 원인이 북한 정권에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도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기웅 원장은 통일연구원에서만 24년을 근무한 통일 문제 전문가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현장에서 체험한 사람 가운데 통일 문제를 전업으로 연구해온 유일한 학자다.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자유대 대학원생 시절,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을 보고 귀국한 그는 통일연구원에 들어가 통독 과정에서의 군 통합 등을 연구하며 한국의 통일 문제에 천착해왔다.

손 원장은 43개 접경포럼 단체들이 참여한 국내 최대의 DMZ 관련 단체인 ‘코리아DMZ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 한국DMZ학회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 통일연구원장에 취임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2년2개월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그의 후임이 현 김연철 통일부 장관(당시 인제대 교수)이었다. 그의 자진 사퇴에 대해 당시 자유한국당은 “손 전 원장이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임한 지 1년도 안 돼 통일연구원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손 원장은 통일연구원장에서 물러난 후 지난 5월 10일 강원도 속초에 한국평화협력연구원을 창설했다. 손 원장은 “통독 30주년을 맞아 독일은 사회통합 문제를 극복하고 통일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강력한 국가를 만들었다”며 “국가성장을 위해, 민족의 미래를 위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통일 준비는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지난 6월 4일 손 원장을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 북한의 식량 부족이 알려지면서 우리 정부가 북핵 문제의 진전과 무관하게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정부가 북한의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의 실현을 공언하고, 김정은에게 그 실현을 함께 노력하자고 제안했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포함해 북한 주민에게 무엇인들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일본에 재해가 났을 때 성금을 모으고 자원봉사를 아끼지 않은 것이 우리 국민들이다. 북한 주민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는 김정은에게 북한 주민의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못하면서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1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북한 주민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하자는 것이 과연 옳은 주장일까?”

지난해 10월 24일 국제연합일을 맞아 한국DMZ학회가 DMZ에 유엔평화대학의 설립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photo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지난해 10월 24일 국제연합일을 맞아 한국DMZ학회가 DMZ에 유엔평화대학의 설립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photo 한국평화협력연구원

- 과거 정부에서도 대북 지원이 논란이 됐던 적이 있었나. “김영삼 정부 당시 대북 식량지원이 고려될 때 많은 논란이 있었다. 당시 나는 유엔기구에서 제3세계 식량지원 담당간부를 만나 우리의 우려를 전달하고 그의 의견을 구했다. 그분은 ‘나는 빈곤한 지역과 국가에 대한 인도적 식량지원을 30년이나 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대상에게 지원량의 30%만 전달되어도 성공이다. 세계 어느 곳을 지원해도 전달과정에서 투명성이 확보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지원하지 않으면 그들을 굶어죽게 만드는 것 아니냐’라고 했다. 그때 나는 6·25전쟁 기간 미국 지원물자 가운데 얼마나 많은 양이 중간에서 증발했는지를 떠올렸다. 그 이후 동포애와 헌법정신에 입각하면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조건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갖게 됐다.”

- 그럼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 정치적·군사적 조건을 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도적 지원에 상응하는 인도적 요구를 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그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에 우리가 함께할 것임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요구에는 이산가족 문제, 납북자와 국군포로, 억류자 문제도 포함된다. 이러한 지원이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인도적 지원을 정쟁화한다고 현 정부가 비난하기 전에 대통령과 현 정부가 그간 가졌고 행했던 대북 정책과 원칙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 문재인 정부의 통일관,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정체성, 철학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집약하자면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과 제4조 통일조항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를 더욱 발양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헌법 준수를 취임선서를 통해 밝혔으면, 헌법이 수정되기 전에는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특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확고한 의지나 신념이 남북 관계에서, 특히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다. 사실 이 점이 대통령 당선 이전에 부각되었더라면 과연 선거에 승리했을까도 의문이다.”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 반공주의 시기에 만들어진 헌법이므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972년 유신헌법의 전문에 처음으로 등장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1987년 헌법 개정 때 전문과 더불어 4조 통일조항에 규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군사독재 시기에 대립과 갈등의 남북 관계를 반영해 체제 대결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일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제정 당시에 어떠한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용어를 헌법화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나름의 자유민주적 사회를 만들어왔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계속 가꾸어 ‘대한민국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헌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자유’를 삭제하고자 했다.”

-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남북이 함께해야 할 통일국가의 이념으로 부적당하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면 ‘자유와 민주주의’로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사실 이것은 이미 그렇게 돼 있다. 법제처가 만든 헌법의 영문판을 보면 박근혜 정부 시기에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the basis of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그리고 헌법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명확하게 ‘the principles of freedom and democracy’로 번역해 ‘자유와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 헌법의 전문과 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the basic free and democratic order’로 하여 명확성이 떨어졌으나, 두 정부 공히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 혹은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으로 이해하고 있다.”

- 진보세력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못마땅해하고 남북이 함께하는 통일의 이념적 정체성, 지향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유를 삭제할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민주적인 질서’ 혹은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으로 수정하는 것이 옳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 지키고 가꾸어야 할 가치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공감하고 추구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이 민주주의만 추구했을까? 아니다. 당연히 자유와 민주주의를 함께 요구했다. 그들이 자유를 빼고 헌법에 민주주의만 규정하고자 한다는 것은 모순될 뿐만 아니라 그 저의가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촛불을 들었던 이들에게 물어보라.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가치인가’라고.”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공동 조사단이 지난 4월 황해남도의 배급소를 방문했다. ⓒphoto 연합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공동 조사단이 지난 4월 황해남도의 배급소를 방문했다. ⓒphoto 연합

-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노력을 ‘냉전 시기의 이념논쟁’이라 비난한다. “공수부대 근무 시절, 낙하산을 안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문재인 후보자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 자유민주주의를 배척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현 정부가 자유를 삭제하는 헌법 수정을 시도했고, 이념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에 대응해 대다수의 국민이 자유민주적 가치를 지키자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헌법에 의해 당선되고 그 존중을 서약한 대통령이 대한민국이라는 판을 흔든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혹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간에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을 건 한판 승부를 펼쳐야 한다. 물론 평화적으로 말이다.”

손기웅 원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북 간에 접촉과 교류협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며 “이를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남북 정상회담도 평가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하고 있는가, 이를 지향하면서 남북 관계 및 통일을 이끌고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구심이 생긴다”며 “평화만을 위한 평화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인가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 문재인 정부의 통일관과 대북 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까지 ‘나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추진하고자 한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우리 국민은 물론이고 김정은과 북한 주민, 국제사회를 향해 명확하게 밝힌 적이 있는가? 후보자 시절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우리의 국가연합과 거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문 대통령이 당선 후 자유를 뺀 헌법 수정을 시도했다. 급기야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통일도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며 마음을 통합하고, 호혜적 관계를 만들면 그것이 바로 통일입니다’라고 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과 협력하는 것은 우리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인 ‘남북화해협력’, ‘남북연합’ 상황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해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를 만드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통일’이 아니다. 당연히 북한의 연방제적 통일을 수용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연방제적 통일을 시도하려는 징후가 있나. “통일부가 외국의 국가연합, 연방제 사례를 급작스럽게 연구하고, 독일 통일 사례를 배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서독이 동독을 의도적으로 흡수한 것이 독일통일이 아니라 동독 주민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과거 발언에 나타난 북한과 남북 관계에 대한 그릇된 인식도 동일한 의문점을 갖게 한다. 남북연합은 통일의 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 혹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주장과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로의 통일을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구도가 아니냐고 비판한다.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이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를 한반도 전 차원에서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남북한 당국이, 남북한 주민들이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북 주민의 합의와 결단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무력 통일, 혹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체제를 흔들려거나 무너뜨리려는 노력은 배제돼야 한다. 그러한 시도를 국제사회, 주변 국가들이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문재인 정부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성과보다는 우려, 특히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사들은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거나, 이후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지지세력만 바라보고 달려온 이들이 이제 집권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그들이 결정하는 모든 정책은 운동권 시절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국민에게, 대한민국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집권하자마자 탈원전, 소득주도성장과 그에 기초한 최저임금 인상 등을 전격전처럼 밀어붙였다. 사회운동 하듯이 국정을 펼쳐서는 안 된다. 집권 50년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국가대계 50년을 걱정하면서 차근차근 정책을 펼쳐가는 것이 중요하다.”

- 현 정부가 통일 문제에서 꼬인 매듭을 풀어가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국내외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김정은에게 핵무기를 버리고 한반도에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김정은 역시 신년사에서 ‘인민의 리익을 최우선, 절대시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관계가 꼬일까 지레짐작해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전역에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의 실현에 관심이 없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국민들은 눈과 귀를 더욱 크게 열고 지켜보아야 한다.”

손기웅 원장은 “햇볕정책은 ‘이솝우화’처럼 나그네에게 따뜻한 볕만 주자는 내용은 아니다”라며 “햇볕정책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무언가의 변화를 위한 따뜻한 볕이어야 하고, 진정한 대북 햇볕정책의 목표는 북한에도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군사전문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