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하는 정경두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지난 7월 9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답변하는 정경두 국방장관. ⓒphoto 뉴시스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인사권자인 대통령께서 판단하고 조치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7월 9일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 질의에 정경두 국방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나라와 본인을 위해 좋지 않겠냐”는 야당 의원 주장에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이날 대정부 질문에선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의 호된 질타가 이어졌다. 일부 야당의원들은 이낙연 총리에게 국방·외교 장관 해임건의 의향을 묻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과 윤상현 의원 등이 이 총리에게 “국방·외교장관이 무능하다. 총리 권한에 따라 (대통령에게) 두 사람에 대한 해임건의를 할 생각이 없느냐” “외교·안보 라인의 전면 쇄신을 청와대에 건의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이 총리는 “의원님들의 뜻, 깊게 새기고 (청와대와) 상의하겠다”고 했다. 이는 7~8월 중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개각 때 문 대통령에게 외교·국방 장관 교체를 건의하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으로 해석됐다.

북한 목선 삼척항 입항 귀순 사건은 지난 7월 3일 정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 발표 및 책임자 문책 조치로 외형상 일단락되는 듯했다. 경계실패 책임을 물어 박한기 합참의장 등 군 고위 관계자들이 강력 경고를 받거나 보직해임, 징계위 회부 조치가 이뤄졌다. 하지만 정경두 장관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그 여진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경계실패와 함께 핵심 의혹이었던 축소은폐 부분에 대해 청와대와 국방부가 “은폐는 없었다”며 전면 부인하고, 정 장관 등 군 수뇌부도 면죄부를 받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자세한 이유는 공개하지 않은 채 “문재인 대통령이 목선 사건과 관련해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엄중 경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군 안팎에선 이번 사건의 축소 은폐에 청와대가 개입했음을 간접 인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런 문책도 받지 않아 여론의 눈총을 받고 있던 정 장관에게 지난 6월 3일의 국회 국방위는 큰 상처를 준 직격탄이 됐다. 정 장관이 “6·25전쟁은 김일성과 북한 노동당의 범죄인가”라는 질문에 7초가량 머뭇거리며 답하지 않아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정 장관은 이날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으로부터 “6·25전쟁은 김일성과 노동당이 벌인 전쟁범죄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 장관은 4초가량 대답하지 않았고, 백 의원이 “6·25가 전쟁범죄인가 아닌가”라고 다시 묻자 또다시 3초가량 침묵했다. 정 장관은 이후 “어떤 의미로 말씀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백 의원은 “(6·25가) 북한이 남침을 기획하고 침략한 전쟁이라는 것에 동의하는가”라고 하자 정 장관은 “북한이 남침 침략을 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최근 서훈 논란이 일었던 김원봉과 관련된 질문에서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 의원은 “6·25 당시 북한 검열상과 노동상으로 김일성을 도운 김원봉은 전쟁범죄의 책임이 있나, 없나”라고 물었고 정 장관은 자료를 뒤적거렸다. 백 의원이 다시 “김원봉이 범죄의 책임이 있나, 없나.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느냐”고 하자 정 장관은 자료를 내려다보며 “하여튼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고 적극 동조한 것으로 그렇게…”라고 했다.

6·25 질문에 7초간의 머뭇거림이 직격탄

이에 대해 군 안팎에선 “국방장관이라면 일말의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답변했어야 한다”며 여론이 들끓었다. 정 장관의 이런 태도에 대한 비판은 과거 국회 답변과 맞물려 증폭됐다. 정 장관은 지난 3월 20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천안함 폭침 사건과 제2연평해전, 연평도 포격도발 등을 추모하는 ‘서해 수호의 날’에 대한 백승주 의원의 질문에 “남북 간의 불미스러운 충돌들을 추모하는 날”이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정 장관에게 타격을 입힌 두 차례 질문 모두 백 의원에 의해 이뤄진 것이어서 그에게 ‘정경두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두 차례 모두 백 의원의 지극히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질문에 대해 정 장관이 머뭇거리다 낭패를 봤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런 정 장관의 모습에 대해 사회 일각에선 “통일부 장관도 아닌 국방부 장관이 어떻게 저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 “너무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부터 “원래 사상이 의심스러운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원래 정 장관이 국가관이나 안보관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아니다”라며 “오해받을 소지의 언행 때문에 의혹과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정 장관도 최근 논란을 빚은 사안에 대해 지난 7월 9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제 진의와 다르게 알려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서해 수호의 날이나 6·25전쟁을 북의 도발이나 침략이 아니라고 단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다”며 “(당시 야당 의원이) 너무나 명백한 사안을 갑자기 질문하니, 거기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북의 기습 도발과 침략이 있었다는 데 대해 이의 없다는 걸 분명히 말했다”고도 했다. 정 장관은 관련 질문 답변 과정에서 울컥하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 장관이 6·25전쟁 등 가장 기본적인 안보사안에 대해서도 머뭇거린 데 대해선 그의 오랜 지인들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예비역 공군 장성은 “이번 사안은 현 정부 핵심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정 장관이 너무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했다. 또 다른 예비역 장성은 “국방장관이 6·25가 북한의 전쟁범죄라고 했다고 현 정권이 국방장관을 자를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전직 장관 쓴소리에 대한 태도 달라져

일각에선 정 장관의 장점이 점차 희석되는 것 같다는 말들도 나온다. 정 장관은 임명된 뒤 한동안 정부나 군 정책에 비판적인 육군 출신 예비역 장성들의 쓴소리에 대해서도 일일이 문자로 답장하거나 직접 전화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점차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전직 국방장관은 “정 장관에게 쓴소리하는 문자를 보냈는데 ‘자꾸 이러시면 장관님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집니다’라는 답장을 받았다”며 “그뒤 정 장관에게 무슨 조언을 하거나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한 예비역 장성은 “정 장관이 계속 지나치게 정권의 눈치를 보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 근래 최악의 국방장관으로 평가받는 송영무 장관보다 더 나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정 장관이 국방장관으로서의 권위와 소신을 하루빨리 되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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