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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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택한 길은 제1지대가 아닌 제3지대다. 러브콜을 받던 기존 정당에 참여하기보다 창당을 택했다. 버스를 타기보다 독자적으로 걸어가는 쪽을 택한 셈이다. 지난 10월 24일 신당 ‘새로운 물결’을 창당하는 자리에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몰려갔다. 그전부터 여야 가리지 않고 러브콜을 받았던 그의 이력이 드러나는 자리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에 있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국민의힘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사람을 모으고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며 기성 정치인과 겨뤘다. 반면 김 전 부총리는 경선 참여를 요청하는 민주당 측의 전화를 20여번이나 거절했다. 그는 여야, 혹은 진보와 보수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이냐를 묻는 그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최근 내놓았다. ‘새로운 물결’의 창당, 그리고 대선 캠프인 ‘경장(更張)포럼’을 등장시켰다.

연대가 절실한 안철수

캠프 이름은 그가 추구하는 길을 보여준다. 경장(更張)은 ‘누적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개혁한다’는 의미다. 누적된 모순은 정치와 관련된 문제다. 그는 경제부총리를 관두기 직전 “경제가 위기라기보다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위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정치판에 뛰어든 이유도 명확했다.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세력의 교체를 해야 한다”라는 게 출마의 변이다.

정치세력의 교체를 말한다는 점에서 김 전 부총리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맞닿은 점이 있다. 새로운 정치를 내건다는 점도 그렇다. 안철수 대표는 주간조선과 가진 인터뷰에서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정치하기 전부터 주장해왔던 건 진짜 물갈이다. 고기만 갈아서는 안 된다. 이 전체적인 제도나 시스템 문화를 그대로 두고 자꾸 고기갈이만 해서 문제인 거다. 고기를 갈아봤자 더러운 환경에 들어오면 그 환경에 적응해서 그냥 살든지 아니면 죽는다. 더러운 물을 맑은 물로 바꿔야 하고, 국민이 원하는 것도 그런 정치 개혁이다.”

여러 전망이 있었지만 결국 안 대표도 내년 대선에 나서기로 했다. 출마는 사실상 확정적이고 출마선언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언론에 나온 대로 출마는 사실상 확정인데, 언제 공식화할지 내부에서 아직 결정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치 입문 10년째지만 대선 도전만 이번이 세 번째다.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와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중도사퇴했다. 19대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후보로 독자 출마해 21.4%의 득표율을 보였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원직을 물러나 공석이 된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설도 제기됐지만 안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선”이라며 선을 그었다.

안 대표는 김 전 부총리와 자리한 지점이 다르다. 양당 주요 인사들의 방문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김 전 부총리와 달리 안 대표와 국민의당 쪽은 급한 처지에 놓였다. 국민의힘과 합당에 실패한 뒤 정치적 생존을 위해 갑이 아닌 을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그나마 나은 건 대선에서 흘러가는 구도가 빅2의 박빙이라는 점이다. 독자 출마를 하면 당선은 어렵다. 대신 안 대표가 갖고 있는 3~5%의 득표력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환경을 이 박빙의 구도가 제공한다.

양당뿐만 아니라 안 대표도 김 전 부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정치세력 교체를 연결고리로 삼아 제3지대에서 새로운 판을 만들고 그들만의 리그를 구성하려 했다.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해 판을 키우는 게 정치공학적으로는 여러모로 유리해서다. 반면 김 전 부총리는 이런 연대에 상대적으로 서두르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창당 이전부터 거대 양당과 정책연대 형태의 활동을 하는 데 좀 더 관심을 보여왔다.

김 전 부총리는 이미 ‘공통공약추진시민평의회’를 제안하며 대선판에 발을 들였다. “과거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경제 공약을 보니 약 80% 정도가 같더라”며 차기 대선후보들의 공통공약을 추려 누가 승자가 되더라도 이를 공동으로 추진하자는 안을 내놨다. 전문 관료 출신의 경제정책 전문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선점하는 제안이기도 했다. 김 전 부총리는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이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고 국민의힘의 후보들 중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책연대가 아니냐는 시선은 부인하지만 이 제안이 발전하면 ‘낮은 단계의 연정’까지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열어뒀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0월 24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새로운 물결’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0월 24일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새로운 물결’ 창당 발기인 대회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김동연, 이재명의 좋은 파트너 될 수 있다”

김 전 부총리와 안 대표를 향한 국민의 지지는 그리 높지 않다. 지난 10월 2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발표한 조사(10월 22~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 대상)를 보면 가상 다자대결 결과 안 대표는 2~3%, 김 전 부총리는 1~2%대의 지지율을 얻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작은 표라도 긁어모아야 하는 게 내년 대선이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또는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이들 제3후보의 지지층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작지만 영향력은 큰 ‘작은 거인’이다”라고 지적한다.

지지율과 인지도는 낮아도 잠재력을 더 높이 평가받는 쪽은 김 전 부총리다. 창당 행사장에 모인 여야의 대표들만 봐도 그렇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중 그 누구에게도 마음 줄 곳 없는 유권자들 5%만 이동해도 김 전 부총리의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재명 후보의 급진성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도 김 전 부총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10월 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여 성향 유권자 중 30%, 친야 성향 유권자 중 37%가 아직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게다가 유동층이 가장 많은 지역이 대전·충청(44%)이었는데, 김 전 부총리의 고향은 충북 음성으로 이 지역에 속한다.

다만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완주를 해야 증명할 수 있다. 지금은 양당의 구심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동한다. 중간지대가 사라질 가능성이 큰 선거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안 대표는 제3지대 인물로서 위상이나 기능, 신뢰를 모두 상실했고 막판에 국민의힘 후보와 연정 형태의 합의를 모색하려고 할 것이다. 김 전 부총리 역시 자신의 가치를 더 쳐주는 곳과 합종연횡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양당의 사이에 있는 또 다른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입장이 좀 다르다. 정의당은 선거철마다 후보 단일화 압박을 받아온 역사가 있다. 대선이 초박빙으로 치러질수록 진보정당 지지표는 ‘사표(死票)’로 규정됐고 당 안팎으로 단일화를 요구받는다. 2012년 대선은 ‘박근혜 대 문재인’의 대결로 박빙으로 흘렀다. 당시에도 대선에 출마했던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는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선거에서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겨우 3.53%포인트 차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눌렀다. 5년 뒤인 2017년 대선은 달랐는데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본선을 처음으로 완주했고, 6.17%라는 적지 않은 득표율을 얻었다.

초박빙이 예상되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정의당 경선에 출마했던 후보들은 모두 “민주당과 단일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심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8월 29일 대선 출마 선언에서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여부에 대한 질문에 “최근 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종합부동산세 등 정책 면에서 국민의힘과 큰 차이가 없다.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21대 총선 당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선거법을 개정했지만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그 취지를 퇴색시킨 뒤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틀어진 상태다.

이재명과 충돌한 심상정

민주당과의 관계를 넘어 진보야당으로의 면모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심 후보는 완주를 반드시 해야 한다. 민주당 2중대라는 지긋지긋한 꼬리표도 떼어내야 한다. 정의당 관계자는 “지난 재보궐선거 때 정의당의 노선을 이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대선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지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과는 분명하게 전선을 그었다. 정의당의 고정표가 절실했던 김태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모든 정당의 연대가 절실하다”며 성명을 냈으나 이를 정면에서 거부했다.

이번 대선에서 심 후보가 얻어야 할 것은 당의 독자적인 미래다. 사라진 존재감을 살려내는 게 가장 큰 목표다. 의미 있는 선거를 치러야 당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은 여의치 않다. 대선이 초박빙 구도로 치러질수록 심 후보에게 불리하다. ‘사표 방지 심리’ 탓에 양당 중심으로 지지층이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심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6%가 넘는 득표율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무난히 정권교체를 할 거라는 낙관적 인식이 작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주간조선·케이스탯리서치가 조사한 4자구도에서 심 후보는 6%의 지지를 받았는데, 만약 본선이라면 이재명 후보에게 패배를 가져올 수 있는 표심이다. 이 표를 너무 끌어안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멀어졌다.

지난 10월 2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충돌은 내년 대선 민주당과 정의당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심 후보는 이 후보가 대장동 사업을 자신이 설계했다고 언급했던 점을 들며 “설계자가 죄인”이라고 공격했고, 이 지사는 “공익환수는 착한 설계”라고 받아쳤다. 이런 분위기는 양당 지지층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의당에, 정의당 지지자들이 민주당에 보였던 호의는 이미 거부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회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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