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후보의 대선 슬로건이 ‘억강부약(抑强扶弱)’이다. 강자에게 맞서 싸우고 약자를 돕는 로빈 후드 같은 이미지를 자신의 브랜드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에게 투사의 이미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이재명 후보는 15년이 넘는 자신의 정치적 여정에서 실제로 ‘강자’에게 도전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지 못하면서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이재명은 정치 활동 내내 적당히 강자에게 도전하는 이미지만 만들면서 실제로는 적당히 권력과 타협해 왔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꼽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 대통령 후보로서 사과까지 해가며 현 정부와 선을 그으면서도, 조금도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지 못한다. ‘4기 민주정부’가 아닌 ‘이재명 정부’를 고집하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계승하겠다며 친문 지지세에 편승하려고 안간힘이다. 차별화는 맞지만 비판은 못하겠다는 얘기다. ‘사이다’라 불릴 만큼 거침없는 언사로 인기를 끌었던 이재명 후보의 태도는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다.

강자에게 맞서는 이재명 후보의 이미지가 사실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은 잠깐만 돌이켜보아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부동산 정책이 28번 넘게 쏟아지는 동안 이재명은 경기도지사로서 어떤 목소리를 내왔는가. 경기도의 집값이 유례없이 폭등을 거듭하고,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그제야 이재명은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방향은 옳았지만 정부 관료들이 잘못”이라는 말로 몸을 사렸다. 지난해 말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갈등이 극에 달하며, 거의 모든 여당 의원들이 격분해서 메시지를 냈던 때에 이재명 지사는 침묵했다. 윤석열 총장의 직무정지가 과도한 처사라는 국민 다수의 여론을 의식하고도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에게 반기를 들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모든 사안에 관해 매일같이 소셜미디어(SNS)에 게시글을 올리는 ‘사이다’ 이재명이 유독 ‘추윤갈등’에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은 대다수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물론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의 정치인으로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보수정당의 정치인들과 싸워왔다. 상대 정치 진영을 향해 막말과 힐난을 쏟아가며 ‘사이다’라는 정치적 자산도 얻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이재명 후보가 강자에 대해 도전했다거나 권력에 대해 저항했다고 할 수는 없다. 야당의 정치인이 대통령과 여당에 쓴소리를 하는 것은 당위 정도가 아니라 의무다. 야당은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 그 존재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처럼 폭언으로 상대 정치 진영에 모멸감을 주는 것은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숙의로 완성되어야 할 민주주의 그 자체를 해치는 것이다. 정치적 상대방을 궤멸시켜야 할 악으로 상정하며 막말을 일삼는 것은, 권력에 저항하는 것과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지난 1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장동 원주민들이 국토교통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대장동 공공수용에 따른 토지 헐값 인수’를 주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장동 원주민들이 국토교통위원회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대장동 공공수용에 따른 토지 헐값 인수’를 주장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오히려 이재명 지사의 투사 이미지는 힘없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얻어 걸린 면이 크다. 이재명 후보가 가지는 ‘싸우는 사람’의 이미지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생각해보자. 이재명 후보는 자신을 비판하거나 의혹 제기를 하는 보도에 대해서 빈번히 소송으로 맞대응을 하며 ‘고소왕’ ‘싸움닭’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심지어 언론사, 기자, 정치인뿐 아니라 시정과 도정 활동에 민원을 제기하는 지역 유권자들에 대한 고소·고발도 불사한다고 한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이재명이 고압적인 태도로 언론 인터뷰를 강제로 끊어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재명 후보는 그의 셋째 형과 성남시 행정처리에 이의를 제기했던 김사랑씨에 대한 정신병원 강제감금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경기도 내에 코로나19 긴급병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험준비를 하는 학생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사실상 학생들을 내쫓으며 경기대학교 기숙사를 강제로 생활치료시설로 전환하려 했던 사례도 떠오른다. 장애인콜택시 요금 인상에 반대하기 위해 시청에 모여든 장애인 단체에 엄포를 놓으며 그들을 내쫓았던 일도 있다.

이재명 후보가 치러온 싸움은 과연 약자를 위한 싸움이었나, 아니면 약자를 향한 싸움이었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으로 청년들의 꿈이 좌절되는 동안 ‘투사 이재명’은 어디에서 누구랑 싸우고 있었는가. 2017년 민주당 경선과정을 빼면 이재명은 문재인 권력에 철저히 침묵했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으로 국민들이 신음하는 동안에도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성남시민과, 경기도민과 치열하게 싸웠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여 묵인했던 것이라면, 왜 대통령 후보가 된 지금에서야 그것을 문제삼고 나섰는가. ‘센 척’을 하고 있지만, 이재명 후보의 정의감은 약자와 싸울 때만 선택적으로 발동한다.

그래서 정치인 이재명의 삶은 강자를 억눌러 약자를 돕겠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를 억눌러 강자에게 봉사하는 ‘억약부강(抑弱扶强)’으로 점철된다. 그 완성판이 바로 대장동 개발이다. 성남시 주도로 이루어진 대장동 개발은 원주민의 땅을 헐값에 수용해, 결국 화천대유 일당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대장동 원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철거민의 삶을 대물림하는 동안 전직 대법관, 전직 특별검사, 정치인 가족 등은 수천억원의 돈잔치를 했다. 그 ‘설계’를 바로 이재명이 했다. 문제가 되는 대장동, 백현동 개발에서 서민들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을 크게 낮춘 것도 이재명 자신이다. 약자를 억압하여 강자를 도와준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이재명 후보는 억강부약이라는 강한 슬로건을 내세워 ‘센 척’을 하면서도 야당의 특검 요구에 대해서는 도망가는 모습을 보인다. 본인은 정면돌파라고 하지만 지난 국정감사 역시도 ‘방탄국감’이라 불릴 만큼, 경기도청은 야당의 자료제출 요구에 소극적이었다. 야당 의원들이 미진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사실이지만, 국정감사장에 나타난 이재명 후보는 다수의 여당 의원들의 비호를 받으며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했다. 현저히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말을 바꿔가며 위기를 모면하려 시도했고, 이재명의 정치 행보 내내 함께 꽃길을 걸었던 유동규와 김만배에 대한 꼬리 자르기도 불사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도봉갑 당협위원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