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7일 선더랜드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는 이브라히모비치. ⓒphoto 뉴시스·AP
지난해 12월 27일 선더랜드전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는 이브라히모비치. ⓒphoto 뉴시스·AP

디에고 코스타, 에당 아자르, 세르히오 아구에로, 폴 포그바, 웨인 루니, 메수트 외질, 알렉시스 산체스….

이름만으로도 세계 축구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수퍼스타들의 격전장이 바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이다. 이런 EPL에 올 시즌 “왕을 넘어 신(神)이 되겠다”며 날아든 사나이가 있다. 2017년 한겨울 EPL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인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웨덴산(産) 득점기계 즐라탄이브라히모비치다.

서른여섯, 축구선수로는 벌써 환갑을 넘겼을 법한 나이지만 이브라히모비치 축구의 전성기는 현재진행형이다. 키 195㎝에 몸무게 95㎏의 탁월한 체격, 격한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투쟁심, 여기에 기막힌 위치선정 능력과 골대 앞에서 보여주는 순간판단력, 남미 출신 선수들을 능가하는 정교한 발기술까지 골잡이 스트라이커로서 가져야 할 거의 모든 재능으로 똘똘 뭉쳐진 사나이다. 이브라히모비치가 가진 이 재능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EPL 21라운드가 끝난 1월 17일 현재, 이브라히모비치는 20경기에 나서 14골 3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일곱 살이나 어린 첼시의 디에고 코스타, 아스널의 알렉시스 산체스와 득점 공동 1위다. 그라운드를 누빈 20경기에 총 89번의 슈팅을 날렸고, 이 중 골대를 향해 정확히 날아간 유효 슈팅이 36개다. 슈팅 정확도가 무려 40.45%다. 36개의 유효 슈팅 중 14개가 골로 연결됐으니 유효 슈팅 대비 골 결정력 또한 39%에 이른다. 195㎝ 키에 몸무게 95㎏의 거구 이브라히모비치가 뿜어내고 있는 강력한 유효 슈팅 3개 중 1개 이상이 골로 연결된 것이다. EPL 무대의 세계 최고 수비수와 골키퍼들조차 이브라히모비치를 경계 대상 1호로 꼽는 충분한 이유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요즘말로 2016-2017시즌 EPL 무대를 아주 잘근잘근 씹어 먹고 있는 중이다.

최소한 이번 시즌만큼은 최고

그동안 세계 축구판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조금 독특한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다. 축구 전문가나 팬 모두 꽤 오래전부터 그를 수퍼스타로 인정해왔다. 멋진 골을 수시로 만들어내는 ‘하이라이트 스타’로, 또 골 생산 능력에 있어서는 메시와 호날두에 비견되는 타고난 스트라이커로 각광받았다. 거치는 팀마다 리그 우승을 이끄는 우승 청부사 등 오랫동안 그는 유럽 축구판에서 스타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런데도 축구 전문가와 팬들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꼽을 때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이름은 그의 명성과 달리 늘 뒷전으로 밀렸다. 이브라히모비치가 세계 축구판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에는 세계 축구계를 휘어잡던 브라질의 간판 호나우두와 당시 다음 세대 브라질 에이스로 불리던 카카, 또 축구 인생 마지막을 불태우던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등에게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뺏겼다. 그들이 사라진 200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도 세계 축구판의 ‘최고’란 수식어는 그의 몫이 아니다. 스페인 라리가를 휩쓸고 있는 두 수퍼스타 FC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와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그늘에 가려 있는 게 사실이다. 그 둘에 밀리며 디에고 코스타나 루이스 수아레즈, 가레스 베일 등과 함께 세계 축구판의 3인자나 4인자쯤으로 평가돼온 게 현실이다.

이렇게 조금은 야박했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 대한 가치 평가가 EPL에 뛰어든 이번 시즌 달라지고 있다. 아직 EPL이 절반쯤 남았음에도 연일 골 폭풍을 몰아치며 드라마 같은 승부를 만들어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최소한 올 시즌 만큼은 최고’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9년 동안 리오넬 메시(5회)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4회), 두 선수가 나눠 가지고 있는 세계 축구계 최고의 상 ‘발롱도르’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선수들 상당수가 자의반 타의반 축구화를 벗고 심각하게 은퇴를 고민하는 서른여섯이란 나이에, 이브라히모비치만큼은 보란듯 세계 축구의 최고 자리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이브라히모비치의 인생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게 아니다. 그는 가난함과 좌절감 가득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복지천국 스웨덴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보스니아 출신 아버지와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를 둔 가난한 이민자 집안이 그의 배경이었다. 가난함에 더해 부모의 이혼이라는 혼란스러움이 그의 청소년기를 지배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이 축구다. 여섯 살 꼬맹이가 축구화를 선물받으면서 처음으로 황폐한 삶에 축구가 자리 잡았다. 어린 시절 고향 스웨덴의 말뫼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중학생이던 15살, 이브라히모비치는 축구 클럽 관계자로부터 부두에서 일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자칫 축구선수가 아닌 부두 노동자의 삶을 살아갈 뻔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축구선수로서 그의 재능을 아꼈던 당시 말뫼의 감독이 축구를 계속할 수 있게 배려해주면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중학생 시절 내내 축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맨유 감독 무리뉴(오른쪽)와 함께. ⓒphoto 뉴시스·AP
맨유 감독 무리뉴(오른쪽)와 함께. ⓒphoto 뉴시스·AP

축구로 이겨낸 소년의 가난과 좌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된 이브라히모비치가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결심을 했다. 축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한 것이다. 이렇게 축구에 인생을 걸며 재능을 폭발시켰다. 1999년 스웨덴리그 2부 리그로 추락했던 소속팀 말뫼를 1년 만에 다시 1부 리그로 끌어 올리는 1등 공신 역할을 했다. 축구 인재 발굴에 탁월한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를 지켜봤고, 그의 스카우트 레이더에 이브라히모비치가 포착됐다. 당시 아르센 벵거의 이브라히모비치 사랑은 지금도 꽤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이브라히모비치 영입을 위해 벵거와 아스널이 공을 들였지만, 이브라히모비치는 그의 우상이던 네덜란드의 마르코 판 바스턴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2001년 이브라히모비치는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널이 아닌 판 바스턴이 뛰었던 네덜란드 아약스로 진로를 결정했다. 이적 첫해 팀을 네덜란드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특히 2002년 챔피언스리그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04년 세계 최고의 무대 중 하나인 이탈리아 세리아A의 명문 유벤투스로 옮겼고, 2006년 인터밀란을 거치며 스타가 됐다. 그랬던 그가 오직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200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6900만유로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초반 이브라히모비치의 페이스는 무서웠다. 리오넬 메시와 이니에스타 등 스타들이 즐비한 바르셀로나에서마저 그들의 틈을 비집고 골 행진을 이어갔다. 스페인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16골을 작렬시키며 팀의 리그 우승에 일조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현 맨체스터 시티 감독)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극한 갈등을 빚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또다시 이적 결심을 하게 됐다.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갈등은 즉각 출전 기회 축소로 이어졌다. 그가 더 이상 바르셀로나에서 뛰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렇게 바르셀로나로 날아온 지 1년 만인 2010년 임대 형식으로 AC밀란에 새 둥지를 틀며 다시 세리아A로 돌아왔다. 2011년 AC밀란으로 완전히 이적했고, AC밀란에서 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두 시즌 동안 그는 무려 56골을 몰아넣으며 그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임을 확인해줬다.

그런 이브라히모비치를 프랑스 파리의 부자 구단 파리 생제르맹이 낚아챘다. 2012년부터 이브라히모비치가 파리 생제르맹에서 뛰며 이탈리아와 스페인, 네덜란드에서 뛰던 시절을 넘어서는 미친 듯한 골잡이 본능을 드러냈다. 세 시즌 동안 정규 리그에서만 83골을 작렬시켰다. 이렇게 프랑스 리그를 평정한 이브라히모비치이 2016년 가을 자신의 가치를 또 한 번 끌어올릴 새로운 무대를 찾아 EPL행을 선언했다. 쏟아지는 러브콜 속에 2008-2009시즌 인터밀란에서 감독과 스트라이커로 세리아A 우승을 합작했던 조세 무리뉴의 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EPL로 날아온 그가 골잡이 본능을 폭발시키며 득점 선두까지 치솟았다. 더욱이 2013년 마지막 우승 이후 추락을 거듭하던 맨유를 수렁에서 건져내며, 지난해 11월 7일 스완지시티와의 대결 이후 16경기 무패 행진 기록까지 이끌고 있다.

득점 1위 맨유 수렁에서 건지다

서른여섯에도 여전히 폭발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그의 경쟁력은 탁월한 체격과 체력이다. 특히 195㎝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시저스킥과 오버헤드킥 등 어떤 자세에서든 현란한 개인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이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스트라이커지만 2선까지 내려와 벌이는 적극적인 몸싸움, 슈팅뿐 아니라 어시스트까지 가담하는 등 팀플레이에도 능해 감독이 구사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을 넓혀주는 감각까지 지녔다. 특히 팀이 지고 있거나 침체돼 있을 때 상대 선수를 향한 거친 몸싸움과 언쟁까지 마다하지 않는 투쟁심은 그를 팀의 리더로 인정받게 하는 요인이다. 현재 EPL 득점 상위 20명 중 디에고 코스타와 함께 총 5회로 가장 많은 옐로카드(경고)를 받고 있을 만큼 그는 매 경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런 모습에 EPL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리그까지 그는 뛰었던 모든 리그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우승 청부업자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퍼거슨 감독이 떠난 이후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맨유, 그런 맨유에 나타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미친 활약은 더욱 빛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을 떠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행을 선언할 당시 이브라히모비치는 “왕이 아닌 신이 되기 위해 간다”고 외쳤다. 그렇게 EPL로 날아온 이브라히모비치. 2016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EPL 무대에서 지금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서른여섯 이브라히모비치가 이번 시즌 메시와 호날두의 탄탄한 아성을 넘어설 수 있을지 세계 축구 팬들이 주시하고 있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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