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웬만큼 치는 사람이라면 버킷리스트에 ‘에이지 슈터’(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적은 타수를 기록하는 골퍼)를 당당히 적어 놓지 않을까. 이것은 싱글 핸디캐퍼들의 자존심이자 꿈이다.

에이지 슈터란 게 일흔이 넘은 70~80대의 나이에는 달성하기가 어렵다. 싱글 핸디캡(73~81타)은 40~50대라도 골프에 엄청난 투자와 열정을 쏟지 않으면 1년에 한두 번 기록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90대는 더욱 힘들다. 아흔 살이라면 ‘자치기’로 공을 굴리기도 바쁜 나이 아닌가.

지난 4월 20일 99세 미국 남성 골퍼가 생애 첫 홀인원에, 에이지 슈터까지 기록해 전 세계 골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99세라면 드라이버는 물론 아이언조차 휘두르기 힘든 연세인데 어떻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마린골프클럽 회원인 C. D. 매드센 옹. 58년째 이 클럽 회원으로 골프를 치는 그는 그날 평소처럼 친구들과 라운드했고, 108야드(약 99m)짜리 파3홀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공이 홀컵으로 빨려들어가는 짜릿한 에이스를 만끽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그는 평소 80~90타를 치는 탄탄한 실력을 갖췄다.(10여년 전에 이미 에이지 슈터 달성한 듯.) 매주 한 번 이상 라운드를 즐기고 클럽 골프코치를 찾아 샷 기술을 문의하는 등 골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홀인원보다 더 놀라운 건 자신의 나이보다 무려 14타나 적은 85타를 쳤다는 것. 공식기록엔 없지만 에이지 슈터 세계 최저타수(-14)로 보인다. 기네스북에는 103세 캐나다 노인이 최고령 에이지 슈터로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에이지 슈터 도전 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얼마 전 모 퍼블릭 골프장엘 가니 팔순의 노신사 네 분이 앞 조에서 라운드했다. 여든인 만큼 걸음걸이가 반듯하지 못했고 샷도 당연히 신통찮았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궁금해 캐디에게 물어보니 “자주 오시는 분들이라 잘 아는데, 100~130m밖에 못 나간다. 그냥 골프를 즐기시는 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별다른 체력 훈련 없이 그냥 늙으면 잘해야 드라이버 샷을 130m 정도 날리게 된다. 파3홀이 아니면 파온은 언감생심이니 보기 플레이 이하는 꿈도 꿀 수 없다.

80대에 에이지 슈터를 기록하려면 50대부터 철저한 관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필자가 최근에 만난 에이지 슈터는 이태섭(78) 전 과기처 장관과 어윤대(72) 전 고려대 총장이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평생 바르게 세상을 살아왔고, 등산을 포함해 하체 훈련과 스트레칭을 열심히 했고, 1주일에 두 번 정도의 라운드로 실전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것. 70대에 70대타를 치려면 얼마만큼 골프에 몰두해야 하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스웨덴 골프 국가대표 선수들은 골프화에 ‘58’을 새기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58타’는 아직 프로 세계에서 이루지 못한 꿈의 기록이어서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한 목표로 삼고 있는 것. 만약 에이지 슈터에 도전하는 이라면 골프화나 책상에 이들처럼 ‘꿈의 타수’를 새겨야 하지 않을까.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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