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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7호]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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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혁명의 서막]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vs 2021 팬데믹 경제위기

홍익희  세종대 대우교수·‘월가이야기’ 저자  2021-12-15 오전 8:55:49

▲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15일 뉴욕 상품거래소 모습. photo 뉴시스
최근 변이 바이러스(오미크론) 사태를 맞아 가장 겁나는 것이 이른바 ‘더블딥’이다. 더블딥은 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침체 현상’을 뜻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블딥이 오더라도 쓸 카드가 별로 없다. 미국의 경우, 고공 행진하는 인플레이션으로 더 이상 돈을 풀기가 힘들다. 이른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 가속화할 수 있다.
   
   게다가 기업의 수익이 악화되어 기업부채가 많아지고 부도 도미노현상이 발생해서 관련 파생상품에 탈이 날 경우, 세계경제를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릴 위험성이 있다. 파생상품은 장외거래 상품이라 누가 얼마만큼의 부실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때문에 파생상품에 이상이 생기면 순식간에 신용경색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서 발생한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자본집적도
   
   1971년 닉슨쇼크로 촉발된 달러와 금과의 고리 단절 이후 달러는 근원인플레이션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무제한으로 발행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시작인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 뒤 10년 만인 1980년에 이르러 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두 배 이상 커져 세계 총생산 규모를 넘어섰다. 곧 금융자산을 GDP(국내총생산)로 나눈 ‘자본집적도(Financial Depth)’가 1971년 50%에서 1980년 109%가 되었다. 이후 세계 GDP는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자본집적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갔다.
   
   게다가 1980년대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부자감세 정책이 금융시장의 급팽창과 어우러져 ‘소득 불평등과 부의 편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자본주의 경제가 만들어졌다. 원래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교환의 매개체로 등장한 게 돈인데, 돈 스스로가 자가 증식을 통해 그 성장 속도가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곧 세계 GDP 성장 속도보다 몇 배 이상 빠르게 늘어났다. 불로소득(금융자산) 증가 속도가 땀 흘려 일해 버는 근로소득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빨라진 셈이다. 이것은 현대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다.
   
   그 결과 있는 자들의 부는 급속도로 불어났다. 또 10년 후인 1990년 자본집적도 비중은 무려 263%가 되었다. 불과 20년 만에 GDP 대비 금융자산의 규모가 50%에서 263%로 5배 이상 커진 것이다. 자본집적도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는 355%로 증가했다. 당시 선진국 평균은 417%였고 신흥국 평균은 199%였다.
   
   21세기를 전후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연 3~4%인 데 비해 세계 금융자산 증가율은 그 서너 배인 평균 15% 안팎이었다. 이로 인해 소득과 부가 일부 상류층에만 몰려 사회 전체의 소비를 확 낮춘 결과가 공황이라는 화를 부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월스트리트에서 대출을 거의 무한대로 해줄 수 있는 금융기법이 개발되었다. 이른바 ‘금융의 증권화(유동화)’다. ‘주택저당채권(Mortgage)’은 금융기관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고 그 저당권을 토대로 발행하는 만기 20~30년의 장기채권이다. 이러한 저당권들을 모아 금융상품화해서 자금을 환수하는 것을 ‘저당유동화’라 한다. 이렇게 하면 만기가 아직 많이 남은 채권들을 조기에 현금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투자은행들은 여러 모기지를 모아 이를 담보로 증권을 발행했다. 이렇게 위험을 분산하고, 만기를 조절하는 기법 덕분에 금융의 증권화가 이루어졌다.
   
   이것이 금융시장을 무한대로 키운 열쇠이자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였다. 최초의 금융 증권화는 미국의 주택 모기지 시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대에 주택저당채권을 담보로 이른바 ‘모기지저당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이 발행되었다.
   
   유동화증권들이 팔리면 은행으로서는 장기대출을 회수한 효과가 났다. 은행은 이 돈으로 다시 대출을 해줄 수 있었다. 더구나 은행은 이러한 대출을 대차대조표에 올리지 않고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지불준비금조차 축적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유동화증권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올리게 해주었다. 문제는 이로써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 극대화되어 유동성을 거의 무한대로 공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이제 소규모 예금유치에 주력할 필요 없이 투자은행을 통해 채권을 증권화시켜 주식시장에서 바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 미국 조지아주 로즈웰의 주택 매물. photo 뉴시스

   본격적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주택
   
   미국은 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 내외로 소비가 활발하게 살아나야 성장하는 나라다. 따라서 역대 정권들은 가장 손쉬운 부동산 경기 진작을 통한 경기 부흥에 열을 올렸다. 자기 집을 갖는 것은 모든 미국인의 꿈이었다. 소득세가 도입된 이래 주택 모기지 이자는 소득세 공제 대상이라 혜택이 컸다. 그래서 대부분 급여생활자는 소득세와 주택임차료 대신 모기지 이자를 활용해 집을 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자동차 구입과 신용카드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세 공제는 폐지하면서 주택 모기지 이자만은 소득세 공제를 유지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주택을 담보로 모기지를 얻어 자동차 등을 사는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1994년 주택담보의 68%가 자동차 구입 등 다른 목적에 사용되었다.
   
   게다가 1997년에 빌 클린턴 정부는 경기부양의 하나로 주택 건설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부부 합산의 경우 50만달러까지는 양도소득세를 폐지했다. 그러자 그때부터 미국인들은 주택을 투자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문제의 발단은 2000년 5월의 닷컴버블 붕괴와 2001년 9·11테러사건에 따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실시된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주택경기부양 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연준은 불황을 우려해 금리를 열세 차례나 급격하게 내려 2001년 6.5%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7월까지 1%로 끌어내렸다. 이러한 저금리 정책의 지속은 당연히 유동성 과잉을 불러왔다. 이에 따라 주택융자 금리가 파격적으로 인하되었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금융기관들은 경쟁적으로 대출을 늘렸다. 그러자 부동산 수요가 늘면서 주택가격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내 집 마련에 대거 나서면서 미국의 자가소유 비율은 1995년 64%에서 2005년에는 69%로 상승했다. 그러자 주택이 본격적인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2004년 10월 재선 운동에서 연거푸 내 집 마련을 강조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각종 정책지원이 뒤따랐다. 주택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자 2005년 중 구입한 주택의 40%는 1가구2주택이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종잣돈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어 50만달러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만~15만달러 정도의 자기 돈이 있어야 했지만 2006년 이런 규정 자체를 아예 없애버려 보증금 없이 집을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은행은 집값만 올라가면 아무 문제 없다는 이유로 주택구매자의 신용조사도 약식 처리하거나 생략했다. 이런 극단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서브프라임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묻지마 대출’의 기승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권은 대출경쟁에 혈안이 되었다. 게다가 장기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한 주택담보대출저당증권(MBS) 개발로 대출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로써 은행들은 주택대출자금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대출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이렇다 보니 소득, 직업, 재산이 없어도 대출이 되는 NINJA(No Income, No Job or Asset) 대출이 활개를 쳐 ‘묻지마 대출’이 기승을 부렸다. 금융위기의 시발탄 노릇을 했던 미국 2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 ‘뉴센트리파이낸셜’의 홍보문구는 ‘단 12초면 대출 여부를 알려드립니다’였다. 그 무렵 대출실적이 좋은 직원들은 큰 인센티브를 받다 보니 ‘묻지마 대출’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데다 금리가 낮아 중산층과 서민들이 내 집 마련 대열에 대거 동참해 여러 해 동안 주택건설 호황이 이어졌다. 그런데 머리 좋은 유대금융인들이 대출은행의 불안을 덜어줄 파생상품을 개발했는데, 바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신종 파생상품이었다.
   
   JP모건의 젊은 처자 블라이드 마스터스가 1995년 발명한 CDS는 금융시장 지형을 바꿔놓았다. 그녀가 개발한 CDS는 금융시장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 곧 돈 떼이는 두려움을 해소시킨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예를 들어 한 금융사가 한 기업의 회사채를 구입한다고 치자. 문제는 리스크다. 기업이 망하기라도 하면 채권매입 금융사는 막대한 손실을 본다. 이럴 때 다른 보험사나 은행이 보험료를 받고 원금을 보장해주는 상품이 바로 CDS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떨어지면 연쇄적으로 대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은행들은 위험을 덜어주는 파생상품 덕분에 큰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단지 그 위험을 떼어내어 위험에 투자하는 제3자에게 전가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파생상품 덕분에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지자, 은행들은 앞다투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 곧 프라임(우량)급 이하의 비우량등급인 ‘서브프라임(subprime)’에게조차도 담보가치 100%로 주택 대출을 해주었다. 이로써 수요가 폭증하면서 투기로 이어지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 나타나 5년 사이에 집값이 무려 75%나 올랐다.
   
   그때서야 연준은 무언가 시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졌다. 과잉유동성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게 된 연준은 2004년 6월 이후 매달 0.25%씩 한 달도 쉬지 않고 금리를 올려 2006년 8월 5.25%까지 인상했다. 금리를 내릴 적에도 쫓기듯 서둘렀는데, 이번에도 너무 단기간에 급격하게 끌어올렸다. 이것이 실책이었다. 당연히 부작용이 뒤따랐다.
   
   먼저 시장이 놀라 기준금리 인상 이상으로 모기지 금리가 올라 주택 수요가 줄어들며 주택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출받아서 산 주택을 다시 팔아 이윤을 얻으려 했던 사람들이 대출금조차 갚을 수 없을 만큼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 신용등급이 낮았던 서브프라임 대출에서부터 문제가 터졌다.
   
   
▲ 2008년 10월 2월 미 상원 원내총무 해리 리드가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킨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photo 뉴시스

   세계 GDP보다 많았던 파생상품 거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파생상품이었다. 2007년 장외거래 파생상품 중 CDS 거래 규모만도 약 62조달러로, 무려 그 무렵 세계 GDP 총액 54조달러보다도 많았다. 이를 그린스펀은 점잖게 ‘비이성적 과열’이라 불렀으나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특히 이런 파생상품들은 장외에서 거래되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한테 얼마나 팔았는지 알 수 없어 금융기관 간에 불신으로 돈거래가 막혔다. 이렇게 신용경색이 일어나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게 금융위기의 첫 단계였다.
   
   모든 금융위기의 원인은 ‘과잉유동성’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부르는 용어만 조금씩 달랐다. 1907년 공황의 원인은 ‘과잉자본’ 때문이라 했고, 1929년 대공항의 원인은 과도한 ‘통화팽창’ 정책의 결과라 했다. 결국 과잉유동성이 버블을 불러 도가 지나치자 터진 것으로 ‘과잉유동성’은 1907년, 1929년, 2008년 공황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통해 또 유동성으로 막았다. 부실채권을 처리하지 못하고 돈을 살포해 봉합한 것이다. 금융권에 돈을 풀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 자산 가격을 부풀려 나락에 떨어졌던 부실한 은행들과 한계기업들을 구해낸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팬데믹 공포가 진행 중인 지금 특히 시사하는 바가 많다. 팬데믹 경제위기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초저금리를 바탕으로 급격하게 늘어난 기업부채의 부실이기 때문이다. 기업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각국이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한 결과다. 미국의 기업부채는 2019년 9월 말 기준 약 16조달러로 가계부채 규모를 앞질렀다. 미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2020년 84.6%에 달했다. 중국은 팬데믹 사태로 4조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폈는데 그 결과 중국의 기업부채는 2008년 4조달러에서 2020년 20조달러로 불어났다. 중국의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62.3%에 달했다. 세계가 중국의 기업부채 부실 문제를 위험하게 보고 있는 이유이다.
   
   
▲ 지난 11월 15일 문을 연 베이징 증권거래소. photo 뉴시스

   팬데믹 속 시한폭탄 기업부실
   
   기업부채가 부도나면 이를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의 부실로 전이될 위험이 크다. 그래서 요즘 월가에서 가장 큰 시한폭탄으로 꼽히는 게 CLO이다. CLO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에 대한 은행의 대출채권을 묶어 이를 담보로 발행하는 증권으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CDO(부채담보부증권)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CDO는 우량과 비우량 채권을 뒤섞은 자산담보부증권의 하나로 여기에 부도 대비 보험인 신용디폴트스와프(CDS)라는 파생상품이 곁들여졌다. 이로써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이 섞인 CDO를 안전자산이라고 믿고 사들였다. CDO는 규모가 200억~300억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를 금융위기로 증폭시킨 주범이었다.
   
   CDO는 주택담보대출을 기초로 만든 파생상품인 반면 CLO는 투자부적격 기업, 곧 투기등급 기업의 대출채권 150~200개를 묶어 유동화시킨 파생상품이다. CLO 규모는 2018년 기준, 미국에서만 약 1300억달러 정도이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2012년 이후 신용도가 낮은 미국 셰일회사와 중국·터키 등 신흥국 기업에 뭉칫돈을 대출해줬다. 중국 기업이 2010~2017년 사이에 조달한 자금이 1조4000억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달러 채무다. CLO란 신종병기가 없었다면 빌려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CLO에는 여러 종류의 대출채권이 기초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실화되면 전체 CLO가 흔들릴 수 있다.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시장이 CDO란 파생상품에 요동쳤던 것과 같은 메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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