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후나바시 요이치 API 이사장. ⓒphoto 뉴시스
2018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후나바시 요이치 API 이사장. ⓒphoto 뉴시스

일본 아사히신문 주필을 지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API·www.apinitiative.org)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정확히 1년8개월 만이다. 지난해 2월에도 도쿄에서 인터뷰를 했었다. 당시 인터뷰의 주된 내용은 한국·미국·일본·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정세 전반에 대한 분석이었는데, 그때 후나바시는 ‘미·일 싱크로나이즈드 동맹체제(Synchronized Alliance)’를 예견했었다. 군사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와 IT, 심지어 자원과 우주 정책까지 일심동체로 엮어진 동맹의 출현을 내다봤었다. 이 동맹이 가상의 적으로 삼는 나라가 중국임은 물론이다.

후나바시의 예견처럼 현재 미·일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부상하고 있다. 무력을 통해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는, 방패와 칼과 같은 동맹이 견고하게 진화해나가고 있다. 공격 능력을 갖춘 미사일 체제도 서둘러 구축해가고 있다. 가상의 적은 북한과 중국이다. 일본은 자위대가 주력군인 나라다. 공격이 아니라 열도 방어가 자위대 존재의 근거다. 그런 나라가 미사일로 “적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말까지 사용하는 판이다.

현재 일본은 코로나19 비상시국에서 점차 벗어나는 분위기다. 새 총리 취임과 함께 내년 올림픽 개최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다. 역사의 교훈이지만 일본의 변화는 곧바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다. 전국통일이 이뤄진 뒤의 1592년 임진왜란, 페리의 흑선(黒船) 출몰 23년 뒤인 1876년 강화도조약, 영·일동맹 직후의 1905년 을사늑약, 일본 고도 경제성장기와 맞물린 한국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은 좋은 예다. 어제의 역사를 안다면 현재 일본에서 벌어지는 변화가 한반도에 어떤 식으로 밀려들지 전망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도쿄와 워싱턴, 베이징 그리고 유럽을 오가며 활동하는 후나바시 이사장은 그 같은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으로 베이징·워싱턴 특파원을 거치면서 중국과 미국을 모두 체험한 흔치 않은 배경이 장점이다. 후나바시는 2017년부터 싱크탱크인 아시아퍼시픽이니셔티브를 만들어 일본 정치권에 정책 제언을 하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줌(Zoom)을 통한 화상 대화로 이뤄졌다. 지난 10월 13일 아침 9시부터 1시간여에 걸쳐 일본어로 인터뷰를 했다.

-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이다. 국제안보라는 측면에서 트럼프가 이길 경우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가. “오바마 정권 당시 시작된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이 구체화될 것이다. 중동·유럽의 미군을 아시아로 이동시켜 아시아를 보다 중요한 지역으로 다루겠다는 구상이다. 오바마는 구상만 했고 트럼프 1기도 이를 본격화하지 못했다. 트럼프 2기가 될 경우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에서의 미군 철수는 본격화할 것이다. 유럽의 경우 독일을 비롯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 낮아질 것이다. 나토 내에서 미국에 도움이 되는 나라가 어디인지에 대한 선별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미국이 글로벌 파워로 존재하는 한, 나토의 약화는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시아의 경우 미국의 관심과 영향이 한층 커질 것이다.”

“미군의 재균형 정책 본격화 예상”

- 최근 일본에서 회의가 열린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는 재균형 정책의 구체적 시작이자 결과인가. “쿼드는 원래 2007년 제1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적극 추진했던 안보체제다. 그러나 인도와 호주가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결과가 없었다. 미국에서도 회의론이 일었다. 특히 백악관 안보 참모진의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일본 혼자 행하는 ‘1인 스모’처럼 되는 듯했다. 그러나 제2기 아베 집권과 함께 쿼드 논의가 급부상했다. 특히 코로나19 직전에 동아시아의 핫이슈로 등장했다. 일본의 끈질긴 외교력도 배경에 있지만, 인도가 가장 큰 동인이다. 쿼드에 적극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남중국해 항해의 자유가 인도의 생각과 통한다고 보면서 쿼드에 뛰어든다. 이후 일본이 중심이 된 상태에서 쿼드 대화가 구체화된다. 지난 10월 6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인도·호주 외무장관의 도쿄 방문은 그 같은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필연이겠지만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신임 총리의 외교안보 출발점이 쿼드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은 아주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스가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중국을 적으로 하는 아시아판 나토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스가가 총리로 있는 한 중국을 적으로 삼는 집단안보체제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토는 강제의무조약으로 묶인 안보체제다. 나토 협약 제5조를 보면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나토 30개 나라 모두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조약이 명문화돼 있다. 쿼드는 나토 같은 방식으로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란 게 스가의 생각이다.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애매하게 보일 듯한데, 당분간은 그 같은 불투명한 체제로 나아갈 것이다.”

- 한국은 쿼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 보는가. “한국에 대한 문제는, 현 상태에서는 미국·일본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안보 측면에서 일본과 한국은 서로 ‘필수불가(Essential)’ 관계에 있다. 현 시점에서 한국이 쿼드 밖에 서 있기는 하지만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한·미·일 3국 군사협력 문제를 통해 쿼드와 상호 협조하는 체제로 나아갈 것이다. 바이든은 한·미·일 3국 협조체제를 상당히 중시 여겨왔고,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렇게 여길 것이다.”

- 아세안도 언젠가 쿼드에 포함될 것으로 보나. “아세안 전체는 어렵다. 캄보디아나 미얀마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추가된다면 베트남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후나바시의 말을 듣다 보니 한국이 국제 정세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닭 쫓던 개’의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1950년 1월 10일 일본과 필리핀을 연결하는 애치슨라인이 그어진 것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였다고 본다. 두 눈을 뜬 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 인도는 멀게 느껴지는 나라다. 인도의 역할은 무엇인가. “일본인에게도 인도는 멀고도 먼 나라로 느껴진다. 인도는 관료주의의 폐해가 짙은 나라다. 일본과 여러 경제 문제를 논의해왔지만 대부분 결과가 좋지 못했다. 중국에 뒤처진 이유이기도 하지만, 지역주의도 강하고 변호사도 많은 대체로 느린 나라다. 그런 배경 때문에 일본은 인도가 아닌 중국을 통한 경제 운명공동체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 같은 (중국과의) 관계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인도는 느린 나라지만 해양안보선(Sea Lane) 확보가 국가 안위를 위한 ‘절체절명(indispensable)’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인도의 앞마당인 인도양을 중국에 넘길 수는 없다는 위기위식이 생긴 것이다. 올여름에 벌어진 인도·중국 사이의 국경분쟁은 그 같은 인도의 생각을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 중국과의 갈등을 비롯해 대만 문제는 쿼드와 어떻게 연결될 것으로 보나. “대만 문제가 쿼드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은 아직 없다. 이제 막 쿼드가 탄생한 상황에서 앞으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일본이 미국보다 앞장서서 대만 문제를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나아가자는 것이 스가의 생각이다. 일본은 홍콩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사표명은 피하고 있다.”

“트럼프 재선되면 동맹 선별화 이뤄질 듯”

- 대부분은 주한미군 철수를 우려하지만 한국에서는 철수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한미군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바이든이 당선되면 주한미군 철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되면 주한미군 철수가 있을지 여부는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재선되면) 동맹의 선별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물론 나토와 더불어 전 세계 각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동맹 선별화에 기초해 미군 주둔 규모나 책임·의무 등이 재조정될 것이다. 문제가 생길 경우 미국과 함께 최후까지 함께 싸우는 관계를 1등급 동맹이라 할 때 영국·캐나다·호주·일본 4개국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어 자문(Advisory) 관계로서의 2등급 동맹이다. 군사동맹 유무와 관계없이 미국과의 이해가 일체화된 나라들로 발칸 지역과 폴란드·대만·인도가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한국은 그다음에 해당하는 3등급 동맹관계로 분류될 듯하다. 파트너십(Partnership) 동맹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데,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없지만 필요할 경우 서로 도와주는 관계라 볼 수 있다. 독일도 한국과 비슷한 3등급 동맹관계로 규정될 것이다.”

2020년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보면 20세기 들어 부상한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1902년 영·일동맹과, 1930년대 일본의 만주침략이다. 영·일동맹은 동방정책을 적극화한 러시아를 막기 위한 외교안보 체제다. 일본의 만주침략은 결국 미국과 치른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영·일동맹이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은 쿼드, 만주침략은 중국의 태평양·인도양 무력진출에 비견될 수 있을 듯하다. 일본은 이미 20세기 전반,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을 체험한 나라다.

- 20세기 초 영·일동맹, 1930년대 일본의 만주침략 당시 상황을 2020년 동아시아와 비교해 볼 때 어떤 식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2020년 미·중 관계를 1930년대 미·일 관계에 비교한다는 것은, 일본인으로서 별로 내키지 않는 얘기다. 90여년 전 일본의 행위가 얼마나 바보스러운 것이었는지 재삼 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이 벌이는 힘을 통한 현상유지 파괴는 1930년대 일본이 행한 바보스러운 역사의 재판(再販)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 헨리 스팀슨은 이른바 스팀슨 독트린을 발표해 일본을 견제했다. 힘을 통한 현상유지 파괴를 인정치 않겠다는 발언이다. 이어 미국은 중국의 장제스 정부를 반일세력으로 규합해 공동 대응한다. 지금 미국의 중국에 대한 입장은 1930년대 스팀슨 독트린 발표 직후의 일본에 대한 대응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은 스팀슨 독트린의 부활이라 보면 된다. 당시의 역사적 교훈과 체험이 트럼프가 행하는 대중 정책의 근간이다. 1930년대는 중국을 통해 일본을 견제했지만, 2020년에는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고 볼 수 있다.”

“미·중 간 마지노선은 대만 문제”

- 2020년 미·중 관계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직전 상황까지 왔다고 보는가. 미·중 간의 최후의 마지노선은 무엇인가. “대만 문제다.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할 경우 1940년대 태평양전쟁 시대의 미·일 관계로 돌입할 것이다. 대만은 대중 관계만이 아니라 미국이 가진 전 세계 동맹국에 대한 약속이나 의무의 최종 결정판이다.”

- 중국은 그 같은 미국의 결의나 방침을 이해하고 있다고 보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오는 10월 26일 ‘킨 소드(Keen Sword)’라는 이름의 미·일 해상훈련이 벌어질 예정이다. 장소가 센카쿠(尖閣)열도 주변이라고 하는데, 일본이 중국의 침공 가능성을 곧 닥칠 현실로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이번 훈련은 다네가시마(種子島)를 비롯한 센카쿠열도를 시야에 둔 곳에서 이뤄진다. 1986년 이래 2년에 한 번씩 치르던 미·일 합동훈련으로 올해 15회째에 접어든다. 그러나 올해는 여러모로 기존의 훈련과 크게 구별된다. 2018년의 경우 미국 괌 주변에서 행해졌지만 올해는 중국의 해상 군사요새로 변한 난사군도(南沙群島)까지는 안 가지만 센카쿠를 시야에 둔 훈련이다. 이번에 주목할 부분은 이른바 ‘우주(宇宙) 사이버 전자파’에 관한 미·일 합동훈련이다. 이것이 처음으로 행해진다. 일본에서는 ‘우사텐’ 방어책으로 불리는 분야로 2018년 일본 방위백서에 처음 등장한 이래 불과 2년 만에 시행되는 대규모 훈련이다. 우주는 중국이 주력하는 새로운 전장(戰場)이다. 일본은 우주산업에 관한 노하우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동안 민간용에 국한되면서 활동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2018년 아베가 우주산업을 군수용으로 전환, 육성하면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주산업은 소위성을 비롯해 연간 3000억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급팽창할 전망이다. 이번 훈련을 통해서도 재확인되겠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중국이 센카쿠로 밀려올 것이란 판단을 일본 지도자들이 하고 있다. 한발 앞서 준비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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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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