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일본은행(BOJ) 건물. ⓒphoto 뉴시스
도쿄의 일본은행(BOJ) 건물. ⓒphoto 뉴시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자산이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 BOJ 자산은 지난 11월 말 사상 처음으로 700조엔(약 7364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553조엔이던 BOJ 자산이 1년 만에 27%가 늘어난 것이다.

BOJ 자산을 미 달러화로 환산하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을 압도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BOJ 자산은 일본 국내총생산(GDP) 의 130% 규모. FRB의 GDP 대비 보유 자산 비율이 20%, ECB는 40%인 것과 비교하면 JOB의 비대화(肥大化)는 심각한 수준이다.

중앙은행은 경제가 어려울 때 국채 등을 매입, 화폐 공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데 BOJ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자산이 대폭 늘어났다.

BOJ에서 올해 가장 증가한 것은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금이다. 올 초 48조엔의 2.3배가 늘어나 111조엔을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융자를 촉진하기 위해 금융기관에 유리한 조건으로 빌려주는 대출금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인 2월 말부터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금리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사들이는 국채도 늘었다. 국채는 올 초 492조엔에서 11월 말 539조엔으로 10% 증가했다.

BOJ는 2013년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가 부임하면서 역할이 통화 관리에서 ‘경기 부양기관’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BOJ는 구로다 총재 취임 이전에도 국채 매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양적 완화를 시행해왔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자산이 급격하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구로다 총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무한 확대’ 노선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 3월에도 “코로나19 상황을 주시하면서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선진국 중 유일하게 중앙은행이 주식투자

BOJ의 자산 팽창에 부정적인 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BOJ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기업의 도산(倒産)이 크게 늘어나지 않아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규모 자금공급으로 퇴출돼야 할 기업이 그대로 남아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금융시장의 BOJ에 대한 의존을 증폭시켜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의 구마노 히데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BOJ 정책이 시장 안정에 기여한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이 같은 긴급 정책이 장기간 유지돼 출구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향후 시장 기능에 대한 영향도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BOJ의 활동 중에서 가장 큰 논란은 주식투자다.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앙은행이 시장을 부양(浮揚)하기 위해 주식에 투자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BOJ는 2010년부터 ETF(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 Fund)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ETF는 여러 회사의 주식을 묶은 금융상품을 말한다. BOJ가 사들이는 ETF 중 대표 상품은 도쿄 증시를 대표하는 ‘닛케이 225’ 지수와 연동된 것이다.

BOJ가 ETF를 처음 매입할 때는 4500억엔을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구로다 총재가 취임하면서 큰 폭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ETF 매입 상한액은 1조엔→3조엔→6조엔으로 급증했다.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12조엔으로 대폭 늘렸다.

지금까지 BOJ가 매입한 ETF의 현재 가치는 약 40조엔으로 도쿄 증시 1부 시가 총액의 약 6%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본 안팎에서는 “일본 주식시장의 최대 주주는 BOJ”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연금적립금 관리운용 독립행정법인(GPIF)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큰손’이 됐다는 것이다. BOJ는 사채 기업(CP) 분야에서도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BOJ는 일본 언론에서 ‘연못 속의 고래’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photo 뉴시스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photo 뉴시스

10% 이상 지분 보유 기업 70개

BOJ가 사실상의 대주주 지위에 오른 기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BOJ가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의류업체 유니클로로 널리 알려진 패스트리테일링, ANA(전일본공수) 등 70개 회사에 이른다.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400개사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현재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일본 주식시장의 활황은 ‘관제 버블’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BOJ는 이들 회사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자본시장을 왜곡하고 기업의 경영 혁신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TF의 대량 구입이 결국은 자본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BOJ가 본래의 임무를 방기한 채 주가를 떠받치는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느냐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주가가 하락하면 당장 BOJ가 큰 손해를 입기에 이는 결국 일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BOJ가 ETF를 영원히 보유할 수는 없기에 언젠가는 이를 처분해야 한다. 이때 주식시장이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이제는 서서히 출구 전략을 논의해야 한다는 제언이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되지만, 자민당 정권은 못 들은 척하는 분위기다. 아베 전 총리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도 경제 위기 극복을 내세우며 귀를 막고 있는 분위기다. 일본은 ‘폭탄 돌리기’ 식으로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 전략을 계속 미루고 있는데,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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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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