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 ‘텍사스 심장박동법’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텍사스 주도인 오스틴의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1일 ‘텍사스 심장박동법’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텍사스 주도인 오스틴의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뉴시스

미국에서 낙태를 사실상 금지시키는 ‘텍사스 심장박동법(Texas Heartbeat Act)’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이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던 상황에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낙태 논쟁이 불거지자 민주당은 이를 성난 민심을 되돌릴 반전의 카드로 삼으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에서 낙태 문제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지난 9월 1일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효과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는 텍사스주의 새로운 조치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3~24주 이전에는 낙태가 가능하였다. 이는 1973년 1월 연방대법원이 ‘로 대(對) 웨이드(Roe v. Wade)’ 사건에서 7 대 2의 판결을 통해 확립되었다. 소송 당사자인 로와 검사 웨이드의 이름을 딴 이 사건의 판례는 그동안 낙태금지를 주장하는 보수진영과 낙태를 옹호하는 진보진영 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낙태에 대한 여론은 최근까지도 5 대 5로 갈려 있지만, 낙태를 허용한 대법원 판례를 현상유지하자는 의견은 7 대 3 정도로 다수를 이루고 있다. 민주당과 페미니스트들은 낙태를 여성의 기본권으로 간주한다.

낙태에 대한 입장은 주(州)별로도 정도 차이가 심하다. 민주당이 우세한 뉴욕주에서는 2019년 낙태를 여성의 기본권으로 보고 여성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임신 전체 기간 중에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에 앤드루 쿠오모 주지사가 서명했다.

반면 텍사스주에서는 지난 5월 그렉 애보트 주지사가 낙태를 효율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이른바 ‘심장박동법’에 서명했다. 9월 1일부터 시행되는 이 법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내용은 없다. 임신한 사람이 자기 뱃속의 아이를 지웠다고 감옥 갈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태아의 심장박동이 탐지된 이후에 낙태를 도와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누구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개인은 누구나 낙태 시술자나 낙태에 편의를 제공하는 자들에게 소송을 걸 수 있다. 만약 임신한 여성을 낙태클리닉까지 데려다주고 낙태가 시술될 경우 의료비 1만달러와 소송비용 등 최소 1만9000달러의 벌금을 물 수 있다.

이 법은 강간피해자나 근친상간의 경우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적용된다. 태아의 심장박동은 대략 수정 후 6주가 경과하면 탐지되는데, 이 시기에는 아직 대부분의 여성이 스스로 임신 여부를 모른다. 이 때문에 텍사스 심장박동법은 낙태를 인정한 1973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아주 효과적으로 뒤집는 조치라고 평가되고 있다. 낙태클리닉 등은 연방대법원에 심장박동법의 시행을 막아달라는 긴급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대법원은 지난 9월 1일 5 대 4의 판결로 소송을 기각했다.

민주당 ‘비미국적’이라며 총공세

그러자 바이든 대통령을 필두로 한 민주당 정치인들과 진보를 자임하는 미디어들이 총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바이든은 텍사스주의 심장박동법을 향해 ‘비미국적(un-American)’이라며 비판을 퍼부었다. “특히 텍사스의 여성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할 수 있고, 텍사스의 별난 법으로부터 여성들과 낙태 시술자들을 격리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법적 조치들을 마련하기 위해 법무부와 보건부 등 전 정부 차원의 노력을 시작한다.”

민주당 소속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곧바로 낙태를 허용한 1974년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법으로 제정하여 텍사스주법을 불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뉴욕주가 제정한 낙태법을 연방법으로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좌파의 선봉인 알렉산드라 오카시오 코르테즈 의원은 이참에 연방대법원의 구성을 바꿔야 한다(court packing)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보수파와 진보파 판사들이 5 대 4로 구성되어 있는 현 대법원에 진보파 2~3명을 더 임명하도록 입법하여 5 대 6 또는 5 대 7로 진보파가 다수가 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주요 좌파 미디어들은 메인 뉴스를 아프간 소식 대신 텍사스 심장박동법으로 채웠다. CBS 뉴스는 “심장박동법은 가장 엄격한 낙태금지법이다. 텍사스가 낙태의 85%를 금지시켰으며, 많은 낙태클리닉이 폐업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임신하게 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가장 좌파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msnbc 방송의 앵커 프랭크 섀퍼는 “텍사스에서 미국 복음주의 우파운동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텍사스는 중동의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여러모로 비슷한 미국 탈레반이다”라고 비난했다.

반면 보수적인 폭스뉴스의 터커 칼슨은 “심장박동법이 특별히 급진적인 법은 아니다”라고 옹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의 뛰는 심장을 의도적으로 멈추게 하는 행위는 살인이다. 정부는 이를 규제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법률을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근본적 차원에서 사람을 언제 죽여도 괜찮은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심장박동법은 미친 법은 아니다.”

논쟁 더 불붙인 사키 대변인

이런 공방 와중에 지난 9월 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여성인 젠 사키 대변인과 EWTN의 오웬 젠슨 기자의 짧지만 뜨거운 논쟁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기자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라면서 가톨릭에서 도덕적으로 잘못된 짓이라고 하는 낙태를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변인 “대통령은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고 믿는다. 여성의 몸은 여성이 선택한다고 믿는다.”

기자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누가 보호해야 한다고 대통령은 믿는가?”

대변인 “대통령은 그것은 여성이 하며, 여성이 의사와 상의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당신이 그러한 결정들에 직면한 적이 없었으며, 임신한 적도 없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을 해야 하는 저 바깥에 있는 여성들에게 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이다. 대통령은 여성들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낙태와 관련, 여성의 건강 및 태아의 생명 등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미국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평행선처럼 진행된다. 사키 대변인이 남성 기자에게 화풀이하듯 답했지만, 오히려 반대파들에 바이든을 비판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꼴이 돼버렸다. ‘생명을 보호하는 학생들’의 크리스 호킨스 회장은 “사키의 기준대로라면 바이든은 임신한 적 없는 남성이므로 낙태에 대해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고 쏘아붙였다. “사키의 성차별주의(sexism)와는 별도로, 가톨릭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사람은 바이든이다. 나는 임신 경험이 있는 가톨릭신자로서 대통령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의 가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데 대한 입장을 말해주기 바란다.… 바이든의 낙태 옹호는 그의 신앙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낙태에 관해 언제든, 원인이 뭐든, 얼마나 많든, 합법화되어야 하며 세금으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가장 급진적인 입장이다.”

생명운동가인 라일라 로즈도 지난 9월 3일 “나는 임신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아기를 죽일 권리는 나도, 다른 누구도 없다고 믿는다. 여성이거나 임신한다고 살인면허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입장은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도덕적이다. 그는 40년 동안 잘못을 고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5월 낙태를 효율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심장박동법에 서명한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photo 뉴시스
지난 5월 낙태를 효율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심장박동법에 서명한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 ⓒphoto 뉴시스

중간선거로 전선 확대되나

낙태 문제가 더 이상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남성은 임신하지 못하니 낙태는 여성의 문제이며 남성은 닥치고 있으라는 사키의 이야기는 시대에 뒤떨어진 주장이라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으로 남성들이 임산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낙태는 더 이상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지만 공화당이 우세한 남부의 주들은 텍사스 심장박동법과 유사한 입법을 검토하고 있다.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지난 9월 2일 심장박동법을 ‘생명보호입법’이라며 시행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인 윌슨 심슨 주상원의장도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낙태 제한에 관심이 있는 주정부들에 분명한 신호이다. 우리는 이를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아네트 타데오 상원의원은 이 법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며 “공화당이 원하는 것은 강간범들이 피해자들이 낙태하지 못하도록 소송할 권리를 부여하고, 낙태를 원하는 강간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낙태논쟁은 어디서나 뜨거운 이슈로 발전하고 있다.

저명한 정치분석가인 딕 모리스는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2022년 중간선거와 2024년 대선에서 승리를 노리는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9월 2일 뉴스맥스 기고문에서 “1974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효과적으로 뒤집는 이번 연방대법원 결정으로 낙태 문제가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조사 결과 미국인들의 74%는 낙태 합법화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같은 입장이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인들은 연방대법원이 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낙태 문제는 다르다. 기존 판례를 뒤엎는 이번 결정은 낙태옹호론자들을 자극하여 2022년, 2024년 선거에 투표장에 나가도록 자극할 가능성이 있고, 연방대법원 개혁 문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2일 실시된 NPR/PBS 조사 결과 바이든 지지율은 6%포인트가 하락한 43%, 반대율은 7%포인트 상승한 51%였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 지지도가 50% 이하로 떨어질 경우 중간선거에서 하원의석 37석을 잃었고, 50%를 넘어도 14석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가 40% 수준을 유지하던 201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의석 40석을 잃고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전망이 점차 커지는 민주당이 텍사스 심장박동법이 야기한 낙태 논쟁을 연방 차원의 낙태허용법 제정, 연방대법원 개혁 등으로 확대해나가려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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