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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0호] 2022.01.03

미·러 틈에 낀 터키의 ‘균형외교’ 시험에 들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 2022-01-03 오후 2:10:36

▲ 지난 10월 31일 로마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에르도안. photo 뉴시스
러시아가 10만 대군을 우크라이나 인근에 집결하면서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터키의 향배에 국제적으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토 회원국인 터키의 에르도안 정권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로부터 S-400 지대공미사일을 구입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에는 공격용 드론을 판매하는 등 이른바 ‘독자노선’을 시도해왔다. 그런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협하며 미국과 충돌 위기로 치닫자 터키는 두 강대국 모두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다. 그동안의 독자노선이 오히려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지난 9월 29일 흑해 연안의 보카로프 루체이 리조트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만나 회담을 한 에르도안. photo 뉴시스

   에드로안의 친서방 탈피
   
   2차대전 때까지 중립국가였던 터키는 1949년에 나토에 가입하면서 친서방국가가 되었다. 구소련과 국경을 맞댄 터키는 서방 측의 가장 중요한 전진기지였다. 냉전 시절 인시르리크 공군기지에서 발진하는 미군의 정찰기는 소련 상공을 비행했다. 냉전 초기 서방 측의 소련 침투 작전도 대부분 터키 국경을 통해 이루어졌다. 1991년 걸프전쟁 등 미국의 이라크 공략 당시 인시르리크는 나토 공군기들의 가장 중요한 발진기지였다.
   
   그런데 2003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3년 총리로 집권한 에르도안은 2014년 국민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8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수십 년 지속돼온 터키의 친서방 노선에서 탈피했다. 터키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에 기반한 에르도안은 국내적으로는 권위주의체제를 강화했고, 대외적으로는 범터키주의를 바탕으로 독자외교를 펼치면서 지역강국으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동시에 국제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강대국들과 충돌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에르도안 정권 초창기 외무장관을 지낸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전 총리는 에르도안이 “인접국가들과 문제가 전혀 없게 하려는 기존 외교 정책을 모든 인접국들과 문제를 일으키는 정책으로 바꾸어놓았다. 일단 이렇게 되면 힘으로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에르도안의 외교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크게 변화했다. 에르도안은 서방 측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북쪽의 러시아를 바라봤다. 미 국무부 관리인 리치 아우첸은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서방의 유럽, 남쪽의 이슬람, 동쪽과 북쪽의 러시아 등 사방으로 균형을 맞추려 한다”며 “한 방향에서 위협을 느끼면 언제든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터키식 균형외교인 셈이다. 가장 좋은 사례는 러시아의 S-400을 구매한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 터키가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S-400 지대공미사일. photo 뉴시스

   러시아제 S-400 구매하며 푸틴과 유착
   
   2016년 7월 터키에서는 군사쿠데타 실패사건이 발생했다. 에르도안은 쿠데타의 배후에는 미국에 망명 중인 정적(政敵) 펫훌라흐 귈렌(이슬람 학자)이 있으며, 미국도 그의 음모를 묵인했다고 의심했다.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네르 카가프타이 터키연구국장은 당시 에르도안의 편집증이 도지는 순간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다렸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귈렌이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터키인 다수가 미국을 비난할 것임을 간파했다”는 것이다. 유혈 쿠데타 시도로 250명이 사망한 다음날 푸틴은 세계 지도자 중 처음으로 에르도안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초청했다. 반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화하지 않았다. 워싱턴에서는 쿠데타 4일 만에 존 케리 국무장관이 전화했을 뿐이다. 쿠데타 3주 후에 에르도안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푸틴을 만났다. 이때 푸틴과 에르도안은 러시아제 S-400 지대공미사일 거래를 밀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보도했다. S-400의 구매 발표는 2017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에르도안이 푸틴과 악수한 대가는 매우 컸다. S-400은 나토의 전투기들을 격추하기 위하여 정밀하게 설계된 무기체계다.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7월 터키를 최신예 전폭기인 F-35 공동개발프로그램에서 축출해버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에르도안과 푸틴 관계에서 세력 불균형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푸틴과 악수한 대가로 에르도안은 러시아로부터 멀어질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에 약점이 잡혔다”고 카가프타이는 설명했다. 만약 터키가 S-400 구매를 취소한다면, 러시아는 터키의 중요 수입원인 무역과 관광을 중단할 수 있다. 푸틴은 에르도안이 국제적으로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카가프타이는 푸틴이 하수인들을 동원하여 시리아, 리비아, 중앙아시아에 배치된 터키군에 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고 강조했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전 외무장관도 “푸틴이 에르도안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불행히도 터키·러시아 관계는 최근에는 대등한 나라 사이의 균형을 상실했다”고 이 견해에 동의했다. 그는 2020년 3월 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정상회담이 얼마나 굴욕적이었는지 강조했다. 에르도안은 푸틴을 만나기 전에 2분간 문앞에서 대기했는데, TV는 이 치욕스러운 장면을 중계했다. 푸틴을 만나러 가는 실내에는 터키를 모욕하는 기념물들이 배치돼 있기도 했다. 예컨대 터키에 승전을 거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장군 동상이 있었으며, 터키 대표단 뒤에는 크림반도를 빼앗은 캐서린 대제의 동상도 배치되었다.
   
   
   푸틴의 모욕도 감수한 에르도안
   
   에르도안은 2003년부터 이슬람세계의 지도자가 되려는 욕망에서 중동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에르도안은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테러조직 하마스를 지원했지만 아랍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무슬림형제단을 지원하는 그의 입장 때문에 아랍국 지도자들은 그를 더욱 조심스럽게 대했다. 2018년 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아랍국 정상은 카타르의 에미르뿐이었다. 서유럽 국가지도자들은 전혀 참석하지 않았고, 러시아에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참석했다. 유럽과 중동에서 소외당한 에르도안은 이때부터 유라시아에 터키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오스만제국의 유산을 함께하거나 터키와 인종적·언어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나라들인 중앙아시아의 22개국이 대상이었다. 에르도안은 또 아프리카의 30개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에르도안이 지향하는 ‘터키의 세계(Turkic world)’는 이란 북부, 중국 서부의 신장웨이우얼, 러시아 동부의 야쿠츠크 등도 포함되는 광활한 지역이다. 당연히 관련국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에르도안은 시리아에 군대를 파병하고, 리비아에 군사고문단을 보내는 한편 아르메니아와 교전한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여 국제적인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것이 터키가 직접 개발한 무인항공기(UAV) 바이락타르(Bayraktar) TB2의 활약상이다. 바이락타르 드론은 바이락타르 형제가 운영하는 바이카르사에서 생산된다. CEO 할루크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출신이고, 동생 셀주크는 기술책임자로 미국 MIT 출신이다. 그는 에르도안의 사위이기도 하다. 터키의 드론은 값싸고 효율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바이락타르는 300㎞ 거리에서도 통신이 가능하고 70~120노트로 비행한다. 27시간 동안 고도 1만8000~2만7000피트 높이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정찰용 및 공격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러시아 위협하는 터키제 드론
   
   터키는 시리아 및 이라크와의 국경 길이가 1200㎞에 달한다. 시리아, 이라크 등에 사는 쿠르드족이 자국으로 침투해 남동부의 쿠르드족과 합세하여 분리주의운동을 일으킬 것을 가장 우려한다. 이 쿠르드족을 상대로 드론을 사용하여 침투를 막고 사실상의 중립지대(buffer zone)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터키의 드론은 10여개국으로 수출되었으며 아제르바이잔, 리비아, 시리아에서의 군사적 분쟁에서는 승패를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특히 리비아에서는 지난 2019년 터키제 드론이 전세를 바꾸어 놓았다. 당시 리비아에서는 터키가 지원하며 국제적으로 승인받은 트리폴리 정부를 상대로 칼리파 하프타르의 리비아 국민군이 공격을 펼쳤다. 하프타르와 러시아 용병 연합세력은 개전 초반에는 수도를 향해 신속하게 진군했지만 바이락타르의 공중지원을 받은 트리폴리 정부군에 밀려났다.
   
   터키의 드론 바이락타르는 시리아에서도 러시아의 예봉을 꺾었다.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이 지난해 말 이들리브에서 반군들을 상대로 공격을 벌였지만 바이락타르 공격을 받고 인명피해를 입자 중단했다. 푸틴과 에르도안은 지난 3월 휴전에 합의했다.
   
   바이락타르는 2020년 9월 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발생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터키가 지원하는 아제르바이잔군은 바이락타르를 이용하여 아르메니아군 전차 수십 대를 파괴하였다. 이로 인해 결국 아르메니아는 휴전에 동의하고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불러들였다.
   
   미국 내 중동연구소의 러시아연구원인 안톤 마르다소프는 뉴스위크와의 회견에서 “터키 드론은 가격이 저렴하고 효율적이라서 인기가 높다”며 “전장에서 한 번에 많은 드론을 동시에 띄워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20년 시리아에서 터키가 드론을 공수 양면에서 화력지원, 정찰의 결정적인 요소로 사용했다.… 드론이 이 정도 규모의 작전에 직접 공중지원에 사용된 것은 처음이었으며 이는 세계 전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드론이 조종사가 탑승한 전투기나 정찰기를 완전히 대체했다”고 말했다.
   
   이들리브 상공에서 터키 드론 수십 대가 동시에 작전에 활용된 적도 있었는데, 이러한 전술을 이번에 우크라이나군이 차용하여 러시아가 지원하는 반군이 장악한 돈바스 지역에서 사용한다면 러시아에는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가 된다. 실제로 지난 10월 우크라이나군은 바이락타르를 동부에 투입하여 돈바스 지역에 야포진지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 우크라이나 동부에 러시아군의 10만 대군이 집결한 것이 발견되어, 지금까지 국제적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르다소프는 “드론은 대공 방어능력이 빈약한 적들을 상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터키의 바이락타르가 과대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터키가 우크라이나에 수출한 드론 바이락타르. photo 뉴시스

   푸틴 “드론 팔지 말라” 우크라이나 압박
   
   반면 러시아로서는 돈바스 지역 반군의 빈약한 무장이 큰 약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러시아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첨단 전자전 장비와 대공 방어시설을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마르다소프는 설명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터키의 드론 판매는 터키·러시아 관계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지난 12월 3일 푸틴은 에르도안에게 전화해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에서 터키제 바이락타르 드론을 ‘파괴적’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이는 에르도안에게 더 이상의 드론을 우크라이나에 팔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터키 외교분석가는 현재의 두 나라 관계를 ‘위태로운 우호관계(precarious friendship)’라고 설명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소원했던 에르도안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이스탄불에는 트럼프타워도 있다. 트럼프는 중국에 집중하는 한편 중동에서는 발을 빼려 했는데 미군이 빠져나간 공백을 터키에 맡겼다.
   
   이 때문에 군으로부터는 미국이 동맹인 쿠르드족을 배신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반면 민주당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에르도안과는 ‘케미’가 맞기가 어렵다. 지난 9월 중순 에르도안은 뉴욕에서 유엔 총회에 참석한 후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희망했지만 거부당했다. 묵살당한 에르도안은 CBS-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로부터 S-400 지대공 미사일을 추가로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나라도 어떤 종류의 방어체계를 갖추라고 간섭할 수 없다”고 외쳤다. 그리고 곧바로 러시아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회담하였다.
   
   에르도안은 당시 뉴욕에서 귀국한 직후부터 비정통적인 통화 실험을 벌였다. 지난 9월 23일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회에서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이자율을 18%로 낮추었다. 이자율은 이후 14%로 더욱 낮추었으며, 인플레율은 21%로 급등했다. 에르도안은 “높은 이자율이 높은 인플레를 유발한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경제교과서와는 반대되는 억지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바클레이투자사나 도이체방크는 2022년 상반기 터키의 인플레율이 3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10월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근방에 병력을 집결시키면서 터키의 전략적 위치가 미국에 다시 중요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터키 포용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만남 요청을 거절한 바이든은 11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G20회의에서 에르도안을 만났다. 두 정상의 안보보좌관들인 제이크 설리번과 이브라힘 칼린도 두 차례나 전화통화했다. 터키 측은 설리번이 정보교환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에르도안, 다시 친미로 선회하나
   
   미·러 갈등이 첨예화하면서 터키 측에서는 친미적인 메시지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터키의 메브루트 카부소글루 외무장관은 지난 12월 23일 터키 TRT-tv와의 회견에서 터키는 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관계를 무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원칙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와 광범위한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터키가 나토에서 두 번째로 대규모 군사력을 가진 나라이며 나토의 작전과 임무수행에는 다섯 번째로 공헌도가 높은 나라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나토 이외의 안보는 비현실적이라고 강조한 그는 “나토의 안보는 우리의 근본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한 터키 관리는 외신과의 익명 회견에서 터키가 중국이나 러시아에 밀착하려 한다는 견해를 반박하며 터키의 입장을 설명했다. “터키는 어디로 가지 않는다.… 러시아나 중국이 팔을 벌려 우리를 환영하는 것도 아니다.… 터키는 시리아, 리비아,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많은 현안에서 미국과 입장을 함께했다. 터키는 시리아 때문에 러시아와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으며, 리비아에서는 러시아 용병들과 대결했다. 터키가 러시아에 붙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터키는 세계의 구석구석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토의 중요 회원국이다. 우리는 단지 중요하게 대우를 받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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