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황제펭귄. ⓒphoto 뉴시스
남극의 황제펭귄. ⓒphoto 뉴시스

지난 4월 25일은 ‘세계 펭귄의 날’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혹한기를 피해 새끼에게 줄 먹이와 터전을 찾으려고 이동하는 펭귄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지정한 날이다. 그런데 가속화하는 온난화 앞에 황제펭귄이 지난 3년 사이 갑자기 1만마리 이상 줄면서 군집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받고 있다. 남극의 황제펭귄은 북극의 북극곰처럼 기후변화의 위협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이상기후로 3년째 새끼 길러내지 못해

황제펭귄은 펭귄 종류 중 가장 덩치가 크고 무거운 종이다. 평균 키 1.2m, 몸무게 35㎏의 당당한 몸체가 특징이다. 수명은 20년. 귀와 가슴 아랫부분을 노란색으로 장식해 황제로 불린다. 그런데 남극대륙의 주인인 이들이 수명을 채우지 못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 4월 25일자 국제학술지 ‘남극과학’은 ‘황제펭귄 군집이 최근 3년에 걸쳐 사라졌다’는 필 트라탄(Phil Trathan) 박사가 이끄는 영국남극조사단(BAS) 연구원팀의 논문을 실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9월 중순~12월 초에 남극 웨델해 근처 브런트 빙붕 핼리(Halley)만 지역의 펭귄 군집을 인공위성으로 추적해왔는데, 2016년부터 갑자기 황제펭귄 개체수가 절반 가까이로 급격히 줄어든 사실을 발견했다는 내용이다.

연구팀은 800㎞ 상공에서 관측한 인공위성 사진에서 ‘구아닌’이라고 불리는 황제펭귄 배설물을 찾아냈다. 남극을 촬영한 위성사진은 보통 흰색 얼음으로 가득하다. 이 중 큰 갈색 반점으로 나타나는 배설물 집합소는 쉽게 눈에 띈다. 이때 찍힌 황제펭귄의 배설물 숫자를 세는 방식으로 개체수를 파악한 것이다.

브런트 빙붕 핼리만의 황제펭귄 군집 숫자가 급격히 준 것은 관찰을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2016년 이전까지는 매년 평균 1만4000 ~2만3000마리의 개체수를 유지해왔다. 이는 남극 전체 황제펭귄의 약 6.5~8.5%에 해당하는 개체수로, 남극 전체 54개 군집 중 두 번째로 큰 군집이다.

갓 태어난 새끼펭귄의 천적은 도둑갈매기다. 도둑갈매기의 위협을 막기 위해 펭귄은 무리를 지어 산다. 이번 연구가 발표되기 전까지 황제펭귄은 남극 주변 54곳에서 60만마리가량이 집단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개체수가 줄어든 것일까. 연구팀은 이상기후와 기후변화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2015년 전 세계에 60년 만에 불어닥친 가장 심한 엘니뇨현상으로 태평양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져 바닷물의 증발량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태평양 동부에 폭우와 폭풍이 발생하면서 이 영향이 핼리만 근처까지 미쳐 황제펭귄의 새끼와 알을 위협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기후변화가 겹쳐 황제펭귄의 번식지인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까지 얇아지거나 떠내려가면서 황제펭귄의 서식 환경이 불안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팀은 분석한다.

황제펭귄 군집의 성장은 그들이 번식하고 새끼를 낳아 키우는 바다얼음의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 각각의 군집이 오랫동안 적응해온 균형 잡힌 바다얼음 상태가 어떤 방향으로든 급격히 변화하는 것은 군집 유지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연구팀은 해수온도 변화로 주변 빙하의 상태가 변해 2016〜2018년까지 3년 연속 황제펭귄이 번식에 실패한 것으로 진단했다. 황제펭귄은 펭귄 중에서 유일하게 남극의 혹독한 겨울에 번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황제펭귄 번식기인 남극의 겨울은 최저기온이 영하 40도 정도까지 내려가고 풍속은 시간당 약 144㎞에 달한다. 남극의 겨울이 시작되는 4월 험한 폭풍에 떠밀려 빙붕 주변에 형성되는 정착빙에 모여 5~6월경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새끼가 헤엄칠 수 있는 12월까지 보살펴 바다로 데려간다. 따라서 번식에 성공하려면 펭귄들이 도착하는 4월에서 새끼들의 깃털이 다 자라는 12월까지 해빙이 안전하게 유지돼야 한다.

그런데 핼리만의 황제펭귄 번식지는 2016년 단 한 마리의 새끼도 보호하지 못했다. 영국남극조사단이 밝힌 핼리만의 줄어든 개체는 대부분 어린 새끼들이었다. 엘니뇨현상으로 해빙이 너무 일찍 무너지면서 깃털이 채 자라지 않은 새끼 황제펭귄 수천 마리가 바닷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물론 다른 번식지에서도 황제펭귄의 번식률은 매년 들쭉날쭉했지만 핼리만의 경우처럼 3년씩이나 번식에 실패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금세기 말까지 최대 70% 감소 전망

황제펭귄 종족의 수가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기후변화다. 바다를 덮고 있는 얼음의 감소는 황제펭귄의 서식지 자체를 축소시킨다. 하지만 따뜻한 기온 자체가 펭귄에게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해빙이 너무 많이 녹으면서 주요 먹잇감인 크릴새우가 자취를 감춘 게 더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조그만 새우를 닮은 크릴새우는 남극의 남쪽 해양에 무리 지어 사는 갑각류로 고래, 바다표범, 그리고 펭귄들의 주식이다. 어린 크릴새우는 바다 빙산에 붙어 사는 말류를 먹고 산다. 그런데 기온이 올라가면 바다 빙산이 줄기 때문에 말류가 감소하면서 크릴새우가 굶어죽는다. 이에 따라 황제펭귄을 포함한 포식자들이 점차 감소하는 것이다.

사실 바다얼음이 너무 감소해도 문제지만 너무 증가해도 문제가 된다. 바다를 덮고 있는 얼음이 늘어나면 부모 펭귄이 먹잇감이나 최적의 번식 장소를 찾아 떠나는 길이 너무 길어져 생활이 힘들어진다. 이는 성체의 생존율과 새끼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빈도를 떨어뜨려 양육 성공률을 낮추는 쪽으로 작용한다.

이번의 영국남극조사단은 핼리만에 남은 어른 펭귄들이 부근의 다른 서식지로 이동한 사실도 밝혀냈다. 핼리만에서 약 50㎞ 떨어진 도슨-랜턴 빙하 근처 황제펭귄 군집의 개체수가 2015년에 약 1200쌍이던 것이 2016년 이후 갑자기 늘면서 2018년에는 1만4000마리 이상이나 되었다는 것. 얼음의 감소가 원래 서식지 자체를 축소시켜서 일어난 일이다. 번식에는 실패했어도 남은 황제펭귄이 이웃 번식지로 옮겨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남극의 환경이 전반적으로 나빠질 경우에는 대책이 없다. 연구팀이 기후변화 모델을 적용한 연구 결과를 보면, 지금처럼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황제펭귄이 다시 한 번 급격하게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극 바다와 얼음의 상태 등 생태적 불안정성이 계속 높아지고, 그 영향으로 2100년까지 세계의 황제펭귄이 50〜70%까지 줄어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기후변화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황제펭귄의 멸종을 막는 지름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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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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